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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에 퍼지는 주 4.5일제…2년전 4일제 먼저한 기업 성과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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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 7일 오후 1시50분 서울 상암동 CJ ENM 본사 근무자의 컴퓨터에 업무 종료를 예고하는 메시지가 떠 있다. 이 회사는 올해부터 4.5일 근무제를 시행한다. [사진 CJ ENM]

지난 7일 오후 1시50분 서울 상암동 CJ ENM 본사 근무자의 컴퓨터에 업무 종료를 예고하는 메시지가 떠 있다. 이 회사는 올해부터 4.5일 근무제를 시행한다. [사진 CJ ENM]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CJ ENM 사옥. 오후 1시50분이 되자 일부 직원의 컴퓨터에 업무 종료를 예고하는 메시지가 떴다. 이어 PC 차단까지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타이머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오후 2시 정각, 파란 화면이 모니터 전체를 덮으면서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일찍 퇴근해 “가족여행” “어학공부”

CJ ENM 엔터테인먼트 부문 임직원 2200여 명에 새해부터 적용되는 ‘비아이 플러스(B.I+) 제도’의 첫날 모습이다. 매주 금요일 업무를 시작한지 4시간이 지나면 일괄적으로 업무용 PC가 꺼진다. 결과적으로 0.5일을 쉬게 되는 셈으로 사실상 주 4.5일(36시간)제다. 임금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 회사 직원 안모(31)씨는 “업무가 일찍 끝나 곧바로 2박3일 일정으로 가족여행을 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 박모(45)씨는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 때까지 여유가 생겨 그동안 미뤄왔던 외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할 생각”이라며 “퇴근시간이 당겨져 만족스럽다”고 했다.

지난 7일 주 4.5일제 실시로 텅 빈 CJ ENM 본사 사무실 모습. [사진 CJ ENM]

지난 7일 주 4.5일제 실시로 텅 빈 CJ ENM 본사 사무실 모습. [사진 CJ ENM]

“주 35시간도 많아…32시간으로”

9일 재계에 따르면 새해 들어 ‘주 4.5일제’ 또는 ‘주 36시간제’ ‘주 32시간제’ 등 근무시간 단축을 도입하는 기업이 속속 나오고 있다. CJ ENM은 주요 대기업 중 주 4.5일제를 시행하는 올해 첫 사례다.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올해부터 주 32시간제를 도입한다. 지난해 월요일 오전 근무를 없애 주 35시간 근무제를 실시했다가 이번에 3시간을 더 줄였다. 월요일에는 오후 1~5시 근무하고, 화~금요일은 기존보다 30분 일찍 끝내는 방식이다.

이 회사의 A임원은 “주 35시간제를 해도 업무 집중도가 높고, 성과가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근무시간을 더 줄인 것”이라며 “아직은 시행 초기지만 주 32시간제가 되니 직원들 업무 집중도가 더 올라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는 비용 부담이 늘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더 찾게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주요 기업 근무시간 단축 사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주요 기업 근무시간 단축 사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일찍 시작한 기업 “생산성 높다”

근무시간 단축은 테크 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 주로 활발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 문화가 확산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출·퇴근시간을 조정하는 유연근무가 보편화한 것도 영향이 있다. SK텔레콤, 여기어때컴퍼니 등은 2~3년 전 격주 4일제나 4.5일제 등을 채택했다. 카카오게임즈와 비바리퍼블리카(토스), 게임 스타트업 엔돌핀커넥트는 지난해 이런 제도를 도입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주 4일제를 시행하는 기업도 생겼다. 교육기업 에듀윌은 주말과 원하는 요일에 하루 더 쉬는 주 4일제를 2019년 6월 시작했다. 이 회사 어재원 파트장은 “사내에서 ‘꿈의 직장 프로젝트’를 공모했는데 직원들이 주 4일제 아이디어를 제안해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생산성은 어떨까. 이 회사는 매출은 2020년 1193억원으로 첫 시행연도인 2019년(952억원)보다 25% 늘었다. 같은 기간 인력은 126명(21.6%) 늘어나 2020년 기준으로 709명이다.

교육기업 휴넷은 이달부터 주 4일제를 시범 운영한다. 지난 2년간 운영해온 주 4.5일제 경험을 바탕으로 6개월간 시범 적용한 뒤 확대할 방침이다. 이 회사 직원 김도영씨는 “휴식이 길어지니 업무시간에 더 몰입할 수 있다”며 “일하는 시간이 줄어도 직원들이 책임감 있게 해낼 거라고 믿는 회사의 신뢰, 직원 성숙도가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외부 고객을 만나야 하는 부서에 대해선 “서로 번갈아가면서 일하거나 인력을 충원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11월 16일 에듀윌 사무실 곳곳에 빈 자리가 눈에 띈다. 에듀윌은 2019년 6월부터 주4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윤혜인 기자

지난해 11월 16일 에듀윌 사무실 곳곳에 빈 자리가 눈에 띈다. 에듀윌은 2019년 6월부터 주4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윤혜인 기자

주 4일 근무제를 시행하는 에듀윌의 '드림데이' 대한 내부 평가 자료. [자료 에듀윌]

주 4일 근무제를 시행하는 에듀윌의 '드림데이' 대한 내부 평가 자료. [자료 에듀윌]

미국 기업 네 곳 중 한 곳은 주 4일제 

근무시간을 줄이는 시도는 해외에서도 활발하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지난 1일부터 연방정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주 4.5일제를 시작했다. “생산성을 높이고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것”(아랍뉴스), “사업과 관광에서 매력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된 조치”(AP통신)라는 분석이다.

미국 인사관리협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미국 기업의 27%가 주 4일제를 도입했다. 아이슬란드에선 노조와 시민사회단체가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면서 2015~19년 시범 운영을 거쳐 현재는 약 85%의 기업이 주 4일제를 실시하고 있다.

스페인은 정부가 나선 사례다. 지난해 가을부터 희망 기업 200곳을 대상으로 3년간 주 4일제 실험 중이다. 정부가 기업 손해액을 일부 보전해주기 위해 5000만 유로(약 68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다만 희망 직원에 대해선 임금 15%를 삭감하는데, 스페인 1위 통신사인 텔레포니카의 경우 직원 2만여 명 중 0.75%(150여 명)만 주 4일 근무를 희망했다. 이처럼 주 4일제 시행엔 임금 보전 문제가 따라붙는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지난해 11월 서울 신촌 스타광장에서 열린 '주4일은 던져졌다' 주4일제 도입 캠페인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지난해 11월 서울 신촌 스타광장에서 열린 '주4일은 던져졌다' 주4일제 도입 캠페인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임금 보전, 노동양극화가 보완 과제” 

최근 ‘영미권 국가들의 주4일 근무제 현황 및 사례’ 보고서를 낸 오민 국회도서관 해외자료조사관은 “주 4일제는 휴식권이 보장되면서, 육아 시간이 늘고 내수가 진작된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임금 보전 문제, 산업별 노동 형태 차이점으로 인한 노동 양극화, 단위 시간당 인건비 상승 등의 보완 과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대 간 가치관 차이도 드러난다.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태어난 젊은 세대)는 주 4일만 일하고 3일은 쉬고 싶다는 경향이 짙지만, 기성세대들은 월급 보전, 인력 충원 문제를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교대제나 산재 위험 높은 곳 우선 고려해야”

이른바 ‘노동양극화’ 문제도 제기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비대면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과 다른 사람을 대면해야만 하는 직업 간 간극이 커진 상황”이라며 “주 4.5일제 등 근무시간 단축은 이런 차이를 더 크게 벌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근무시간 단축은 상대적으로 보수가 후하고, 근무여건이 좋은 기업에서 주로 도입하고 있다”며 “그러나 불규칙한 교대 근무나 장시간 근무가 필요한 사업장, 산업재해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 등에 대해 우선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슬란드 사례처럼 보듯 국가·사회 차원의 실험을 거쳐 도입·지원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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