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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행 vs 심쿵약속…"가려운곳 긁어준다"는 미세공약,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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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중앙포토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중앙포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온라인 게임 규제’를 놓고 정책 경쟁이 뜨겁다. 윤 후보는 9일 ‘석열씨의 심쿵약속(이하 심쿵약속)’의 네 번째로 “온라인 게임을 쉽게 즐길 수 있는 나라”를 제시하며 “전체 이용가 게임물은 청소년 본인인증 의무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온라인 게임의 본인 인증 절차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경쟁자인 이 후보가 지난달 13일 25번째 ‘소확행 공약’을 통해 “게임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자”고 게이머 표심을 파고든 데 대한 맞불 성격이다. 지난 2일 윤 후보가 심쿵약속 시리즈를 시작하자, 이 후보가 ‘미세먼지 안전망 구축’(7일), ‘대중골프장 운영 건전화’(8일), ‘생활용품 수명연장 및 소비자 수리권 확대’(9일) 등 주목도 높은 소확행 발표의 속도를 높이며 맞불을 놓은 형국이다.

소확행과 심쿵약속은 공통적으로 유권자의 일상을 겨냥한다. 출범 시기는 민주당이 두 달 빨랐지만 “국민의 삶을 바꾸는 작지만 알찬 공약 시리즈”(이 후보, 지난해 11월 11일), “내 삶, 내 가족과 이어지는 생활 공약”(윤 후보, 지난 7일)이라는 설명이 비슷하다.

불붙은 여야 마이크로타겟팅.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불붙은 여야 마이크로타겟팅.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처럼 경제 성장, 외교·안보 등 중·대형 공약 경쟁이 미뤄지는 상황에서 이른바 ‘마이크로타겟팅(microtargeting·세부 공략)’이 양당의 격전장으로 부상했다. 마이크로타겟팅은 세분화된 개별 유권자를 추적, 설득하는 선거 기법이다. 이 후보는 두 달간 43개의 소확행 공약을 냈고, 후발주자인 윤 후보도 선대위 내홍 수습 직후인 7일부터 ‘1일 1심쿵’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안병진 경희대 교수는 “1996년 미국 대선때 빌 클린턴 측 전략기획가 마크 펜이 기업의 ‘라이프스타일(생활양식) 조사’를 선거에 도입, 극도로 작은 ‘이티비티(itty-bitty)’ 공약들을 개발한 게 마이크로타겟팅의 시초”라며 “이후 2012년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빅데이터 분석을 접목해 효과를 입증했지만 그동안은 국내에 제대로 도입된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과거 오바마 캠프는 대선 2년 전부터 ‘나월스(Narwhals·일각고래)’, ‘드림캐처(Dreamcatcher·꿈 수집가)’라는 이름의 빅데이터팀을 운영했다. 이들은 소유 차량과 구독 신문·선호 브랜드 등 유권자 성향을 드러내는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선거운동에서 톡톡히 재미를 봤다. 경쟁자였던 밋 롬니 캠프가 대선 7개월 전 부랴부랴 ‘ORCA(범고래: 일각고래의 포식자)’란 이름의 대응팀을 꾸렸지만 데이터 분석·활용 시간에서 밀려 패할 정도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뉴스1

다만 지금의 소확행·심쿵약속은 제대로 된 빅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단순히 캠프 내부의 아이디어 제안이란 한계가 있다. 민주당 선대위 정책본부 관계자는 “지난해 9월부터 내부 공모전을 통해 쓸만한 아이디어를 수집, 취사선택하는 방식으로 소확행을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선대위도 “태스크포스(TF)팀에서 1차로 100여개의 심쿵 아이디어를 냈고, 당 정책국과 함게 오디션 프로그램 방식으로 검토한 결과 현재까지 10여개의 아이템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코로나 사태가 생활밀착형 공약 경쟁을 불러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선대위에서 정무·전략을 맡은 의원은 “코로나19 장기화로 답답하고 불편한 생활 속 장애물들이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문제가 됐고, 특히 개인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생겼다”면서 “비대면 선거운동이란 제한된 환경 속에서는 가려운 곳을 짚어 긁어주는 게 가장 유효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전문위원은 “과거처럼 거대 담론이나 대표 상품만으로는 개개인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맞춤형 공약으로 특정 집단의 표심을 확보하는 전략이 불가피해졌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붓으로 틀을 깨다, 한국 발달장애 아티스트 특별초대전'을 찾아 작품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붓으로 틀을 깨다, 한국 발달장애 아티스트 특별초대전'을 찾아 작품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다만 배 위원은 “미세 공약이라도 하나의 담론으로 묶여 양당의 시대정신 대결로 이어지는 게 바람직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럴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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