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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앞 피 철철 흘리며 유산…"출산 늘 것" 예상 뒤엎은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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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태어나면 만나게 되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코로나19로 임신을 포기한 26세 멕시코 여성)

중국 임신부가 1일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의 한 병원 앞에서 PCR(유전자 증폭) 검사에 막혀 피를 흘리며 유산했다는 소식 퍼지면서 중국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다. 사진은 임신부 가족이 올린 폭로 영상 속 땅 위에 피가 흥건한 모습(왼쪽)과 사건이 벌어진 시안 가오신(高新) 병원 응급센터(오른쪽). [웨이보 캡처]

중국 임신부가 1일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의 한 병원 앞에서 PCR(유전자 증폭) 검사에 막혀 피를 흘리며 유산했다는 소식 퍼지면서 중국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다. 사진은 임신부 가족이 올린 폭로 영상 속 땅 위에 피가 흥건한 모습(왼쪽)과 사건이 벌어진 시안 가오신(高新) 병원 응급센터(오른쪽). [웨이보 캡처]

#1. 지난 1일(현지시간)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전면 봉쇄된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서 한 임신부가 코로나19 PCR(유전자 증폭) 검사를 기다리다 태아를 잃었다. 당시 병원 측은 PCR 검사 결과가 4시간 뒤에 나온다는 이유로 임부의 입원을 막고 작은 간이 의자에 앉혔다. 3시간이 지나고 피로 땅이 흥건해지자 병원 측은 임부를 급히 수술실로 옮겼지만, 아이는 이미 유산된 상태였다.

#2.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2020년 12월 화이자, 모더나 등 코로나19 백신을 긴급 승인했지만, 이로부터 8개월이 경과한 지난해 8월에야 임부와 산부를 대상으로 한 백신 접종 권고를 내놨다. 사라 크로스 미네소타 의대 산부인과 조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 기고를 통해 “이는 임산부들이 초기 임상시험 집단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됐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몇 달간 임산부 개개인에게 (백신 안정성)에 대한 증명 책임을 지게 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 개도국 모두 “코로나로 임신 포기”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자녀를 계획하는 여성에게 임신은 매일 감염에 대한 공포를 견디는 일이 됐다. 지난 3일 WP는 코로나19 때문에 임신을 포기하는 현 실태를 전했다.

4일(현지시간) 멕시코 시티에 마련된 코로나19 백신 접종소에서 주민들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부스터샷을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AFP=-뉴스1]

4일(현지시간) 멕시코 시티에 마련된 코로나19 백신 접종소에서 주민들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부스터샷을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AFP=-뉴스1]

이에 따르면 멕시코에선 2021년 상반기 출산 건수가 전년 동기보다 1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멕시코 인구 당국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늘고, 피임약에 대한 접근이 불편해지면서 약 12만 건의 추가 출산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현실을 정반대였다.

비단 멕시코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미국 인구조사국(USCB)에 따르면 지난 2020년 7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1년 동안 미국의 인구는 39만2665명이 늘며 인구 증가율이 0.1%에 그쳤다. 미국이 연간 인구 집계를 시작한 지난 1900년 이후 최소치다. 지난해 유엔인구기금(UNFPA)도 코로나19로 인해 개발도상국에서 계획되지 않은 추가 임신이 700만 건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지만, 지난달 22일 발표된 연구 자료에 따르면 몽골, 쿠바 등 각 대륙에 위치한 15개 개도국 중 출산이 늘어난 곳은 부탄과 방글라데시 단 두 나라뿐이었다. 선진국부터 개도국까지 코로나19로 인한 출산율 저하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린다 G. 칸 뉴욕대 랑곤헬스 메디컬센터 교수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시작 전 임신을 고려했던 여성 중 3분의 1 이상이 더는 임신을 고려하지 않는 상황이다.

접종은 두렵고, 미접종은 위험한 딜레마 

지난해 2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한 임신부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2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한 임신부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처럼 임신 계획을 미루게 되는 원인으론 코로나19 이후 어려워진 경제가 한 축으로 꼽힌다. 다만 임신부들은 코로나19의 공포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각국 정부의 대처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가족계획을 세우던 26세 멕시코 여성은 3일 WP와 인터뷰에서 “경제적 어려움도 (임신 포기의) 요소였다”면서도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가 만나게 될 세상이 어떤 곳일까. 코로나19 환자로 가득한 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을 생각하면 불안했다”고 토로했다.

또 임산부들은 백신 접종을 앞두고 불안해하고 있다. 백신의 위험성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고, 위험성에 대해 상반되는 정보들이 여기저기서 제시되면서 혼란을 겪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로셸 월렌스키 CDC 국장 명의의 임산부의 코로나19 예방접종 권고 성명이 나온 뒤, 지난해 9월 CDC의 임산부의 코로나19 백신 공식 접종 권고까지 나오면서 각국은 임산부에 예방접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CDC가 “백신 접종의 이익이 알려진, 또는 잠재적인 위험을 능가한다”고만 설명한 것이 태아의 건강을 생각하는 임부들에게 충분히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로셸 월렌스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왼쪽). 월렌스키 국장은 지난해 8월 "백신은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며 "우리가 전염성이 매우 높은 델타 변이에 직면해 있고,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임신부들 사이에서 코로나로 인한 심각한 결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백신 접종을 늘리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로셸 월렌스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왼쪽). 월렌스키 국장은 지난해 8월 "백신은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며 "우리가 전염성이 매우 높은 델타 변이에 직면해 있고,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임신부들 사이에서 코로나로 인한 심각한 결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백신 접종을 늘리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그 사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각종 소문이 돌면서 임부들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 지난달 23일 WP는 “임신‧육아 관련 애플리케이션(앱)에 백신 관련 음모론, 안전성에 대한 노골적인 거짓이 가득하다”며 여전히 임신부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돌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영국 가디언은 ‘임신부에 대한 더 정확한 백신 안정성 정보가 필요한 이유’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백신 접종을 고민하는 임신부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전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출산한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소속 의사인 니샤 프라사드는 “나도 백신을 접종하긴 했지만, 그 결정은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고 정보를 얻기 위한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며 “백신 접종에 대한 임신부들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임산부 중 코로나19로 인한 사망과 중증화를 겪는 것이 대부분 백신 미 접종자임에도 접종률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지난달 4일까지 미국의 18세에서 49세 사이 임산부 중 백신 접종을 완전히 마친 사람은 35%에 불과했다. 지난해 10월 기준 영국의 임산부 백신 접종률도 15% 수준이었다. 임신부들은 분만과 산후조리 과정에서도 방문 등에 심각한 제약을 받는다.

코로나에 감염된 중환자를 돌보는 미국 한 병원의 간호사의 모습. 지난해 8월 미국에선 백신을 맞지 않은 한 임신부가 코로나에 걸려 태아와 함께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AP=연합뉴스]

코로나에 감염된 중환자를 돌보는 미국 한 병원의 간호사의 모습. 지난해 8월 미국에선 백신을 맞지 않은 한 임신부가 코로나에 걸려 태아와 함께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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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에 대해 지난해 6월 세계경제포럼(WEF)는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출산율이 늘 것이라던 말은 농담이 됐다”며 “출산율 감소는 지구의 기후에는 좋을지 몰라도 경제에는 심각한 악영향을 준다. 이미 인류는 훨씬 적어지고, 늙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의 인구 증가율이 0.1%에 그친 것은 가장 우려되는 통계 중 하나”라며 “인구 증가의 정체는 국가의 경제 성장뿐만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준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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