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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실패할지도…”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왠지 불길한 예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99)

상당히 오랫동안 논의되어 오던 퇴직연금제도 확정기여형(DC) 및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를 대상으로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 옵션)이 2022년 6월에 도입된다. 사전지정운용제도란 ‘가입자(근로자)의 운용지시가 없을 경우 가입자가 사전에 정해 놓은 방법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이 제도의 목적은 퇴직연금의 효율적 운용과 수익률 제고를 통해 노후소득확충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배경으로는 〈그림1〉에서 나와 있는 퇴직연금 전체 가입자의 39.6%를 차지하는 DC형 및 IRP 가입자의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료 고용노동부]

[자료 고용노동부]

퇴직연금제도의 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과도한(89%) 원리금 보장상품 중심으로 자산운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데 반해 금리가 너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입자 입장에서 중요한 수익률은 확정급여형(DB형)에서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지만, DC형과 IRP에서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DC형과 IRP의 원리금보장상품 비중을 보면 아래 〈그림2〉와 같이 각각 83.3%, 73.3%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러므로 사전지정운용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원리금보장상품 비중은 낮추고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실적배당형상품 비중을 높여 균형을 맞추어 장기적으로 제도성과를 높이고자 한 것이다.

사전지정운용제도는 퇴직연금제도 운영경험이 풍부한 미국, 호주, 영국 등 선진국에서 가입자의 적절한 선택을 유도하여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미 시행된 지 오래되었다. 미국 2006년, 영국 2012년, 호주 2013년, 그리고 일본은 2018년 각각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자료 고용노동부]

[자료 고용노동부]

사전지정운용제도의 운영방법은 퇴직연금사업자는 고용노동부 장관 소속 심의위원회의 사전심의와 고용노동부 승인을 거쳐 사전지정운용방법을 마련하며, 특히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원리금보장상품 혹은 집합투자증권(펀드)으로 구성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원리금보장형 상품과 펀드를 혼합한 상품도 가능하며 펀드는 TDF(Target Date Fund), BF(Balanced Fund), 장기 가치상승 추구펀드, 머니마켓펀드(MMF), 인프라펀드 등 법령상 규정되어 있는 운용 내용이 명시되도록 할 예정이다.

DC형 가입 기업은 퇴직연금사업자가 제시한 사전지정운용방법을 근로자대표 동의를 거쳐(퇴직연금규약 반영) 도입하고, 근로자는 퇴직연금사업자로부터 사전지정운용방법 관련 정보를 제공 받아 그중 하나의 상품을 본인의 사전지정운용방법으로 지정하게 된다. 이때, 퇴직연금사업자는 근로자 의사 반복 확인 및 손실 가능성 등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는 등 근로자 보호 절차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현재 도입하려고 하는 사전지정운용제도의 가장 걸림돌은 가입자의 운용방식 선택에 ‘원리금보장상품’ 방식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만약 가입자가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사전지정 운용지시를 하게 되면 현재의 운용지시와 별반 차이가 없다. 이 점이 원리금보장상품이 옵션으로 들어가 있지 않은 연금 선진국과 가장 차이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원리금보장상품을 편입할 수 있게 한 일본은 실패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은 디폴트옵션을 도입하기 전인 2014년 96.1%였던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율이 디폴트옵션을 도입 이후 2018년 76.3%, 그 다음해엔 76.0%를 기록했다. 많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여전히 높은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도 이 추세를 따른다면 사전지정운용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수익률 개선이 상당히 느리게 나타날 수 있어 사전지정운용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제도 실패라고 평가받는 일본보다 더 우려되는 점이 있다. 일본의 경우는 비록 원리금보장상품이 포함되더라도 특정 운용상품만 지정하거나 제외하지 않도록 상품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단서가 있다. 원리금보장 상품 비중이 100%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100% 원리금보장상품 지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한가지 상품으로 100% 지정할 수 없게 유도한다면 100% 원금보장형 펀드보다 덜 위험하면서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사전지장운용제도가 도입되면 가입자가 자산운용 중요성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가입자를 어떻게 이해시키고 설득을 구하느냐다. 사전지정운용제도를 가입자가 선택한다고 해도 운용권이 사업자에게로 넘어가기 때문에 자기 의사결정권이 어느 정도 제한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가입자 보호를 위한 특별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전지정운용 상품이 가입자 본인이 운용지시를 한 것으로 간주해 운용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려면 가입자에게 단순히 설명의무나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사진 Tech Daily on Unsplash]

사전지정운용 상품이 가입자 본인이 운용지시를 한 것으로 간주해 운용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려면 가입자에게 단순히 설명의무나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사진 Tech Daily on Unsplash]

즉 사전지정운용 상품이 가입자 본인이 운용지시를 한 것으로 간주해 운용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려면 가입자에게 단순히 설명의무나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운용 중에도 상품을 변경할 수 있으므로 계속적인 가입자의 관여가 필요하다. 따라서 퇴직연금 가입자 교육의 현실화와 실용화와 참여증대를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퇴직연금 가입자 교육이 부실한 상황에서는 사전지정운용제도의 도입에 대한 거부감이나 발생할 수도 있는 (-)수익률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의 자산에 대한 운용을 어느 정도 강제한다면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병행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하겠다. 단순히 복잡한 서류에 사인만 했다고 해서 사용자나 퇴직연금사업자의 추가 정보 제공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제32조) 및 시행령(제32조)에는 분명히 DC형 및 IRP에 대해 적립금 운용에 대한 가입자 교육이 포함되어 있다. 사전지정운용제도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을 계기로 퇴직연금제가 명실상부하게 가입자의 노후복지에 도움이 되는 제도로 거듭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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