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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인터뷰] 이창용 IMF 국장의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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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여력 있으니 더 써도 된다? 부작용 간과한 무책임한 주장" 

* 이 기사는 1월6일자 중앙일보 1, 8면에 게재된 인터뷰 기사의 전문(全文)입니다.

이창용 IMF 아태국장

이창용 IMF 아태국장

“2040년보다 더 빠른 시점에 국가부채비율이 100%를 넘어설 수도 있다. 재정 여력이 있으니 더 써도 된다는 주장은 앞으로 몇 년 뒤에는 하기 힘들 것이다.”

"시장금리 올라가 민간투자 위축 # 경제위기 때 대처 힘들어져"

이창용(사진)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한국의 국가부채비율이 2030년 75%, 2040년 104%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2020년). 이 국장은 예산정책처의 전망보다 더 빨리 국가부채비율이 100%를 넘어설 것으로 봤다. 코로나19처럼 큰 위기가 올 때 반드시 써야 하는 재량적 지출 증가를 예산정책처는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국장은 “국가부채비율 40%를 마지노선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지나치게 경직적이지만 미국·일본처럼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비율이 100% 가깝게 단기간에 급증해도 아무런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부채가 급증하는 가운데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했고 이탈리아는 줄곧 국가부도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며 “우리도 선진국이 됐으니 국가부채를 크게 늘려도 문제없다는 주장은 너무 안이해 보인다”고 했다.

이 국장은 세계경제의 위협 요인으로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 미국 금리 상승의 파급 효과, 미·중 갈등 악화, 중국 경제의 둔화세를 꼽았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아시아에서 금융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아시아 경제의 회복세를 둔화시킬 수는 있다고 분석했다.

이창용 “매년 세수 0.5%씩 10년간 늘려 복지재원 쓰자” 

지난해 연말 미국 워싱턴 국제통화기금(IMF)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이창용 국장.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새해 들어 IMF 직원들도 대부분 다시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이 국장은 요즘 포퓰리즘 관련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고 했다. [사진 이광조]

지난해 연말 미국 워싱턴 국제통화기금(IMF)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이창용 국장.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새해 들어 IMF 직원들도 대부분 다시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이 국장은 요즘 포퓰리즘 관련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고 했다. [사진 이광조]

한국의 재정 여력은 충분한가. 국가부채의 급증세는 지속 가능한 건가.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의 생각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00%를 넘어서는 시기가 국내 전망보다 빨리 올 수 있다. 미국을 제외하면 선진국조차 국가부채 급증으로 고생했다. 부채비율이 높아져도 한국이 괜찮을지는 우리가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이 판단할 것이다.’ 지난 연말과 연초 두 차례에 걸쳐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이 국장과 화상으로 만났다.

2022년 세계경제가 궁금하다.
"IMF는 지난해 10월 세계경제가 2021년 5.9%, 2022년 4.9%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최근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되고 물가상승률이 높아져 주요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거둬 들이고 있다. 1월 중순 발표될 전망치는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나라별로 온도 차가 있을 것 같은데.
"백신 접종률이 높고 아직 재정·통화정책 여력이 있는 선진국에서는 경기 회복세가 지속돼 국내총생산(GDP)이 2023년까지 코로나19 이전 추세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정책 여력과 백신 보급이 부족한 개도국에서는 델타 변이에 이은 오미크론 피해로 선진국과의 격차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아시아 개도국의 경우 2026년이 돼도 GDP가 코로나 이전 추세에 비해 10% 이상 낮은 수준에 머물 것 같다. 이런 양극화는 비단 국가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산업·계층·성별·업종간에 걸쳐 심화되고 있다. 향후 지속가능한 성장에 큰 장애요인이 될 위험이 커졌다."  
나라 안팎에 인플레이션 걱정이 많다.  
"물가도 선진국과 개도국 차이가 크다. 유가 상승, 코로나 사태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 등으로 전세계적으로 공급 여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경기회복과 함께 선진국 소비수요가 증가하면서 물가가 예상밖으로 상승하고 있다. 봉쇄기간 동안 눌려왔던 소비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지난해 12월 미국 소비자물가는 6.8% 급등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코로나로 서비스 수요는 침체된 가운데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도가 높은 재화의 수요는 늘어나 인플레이션이 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헬스장이나 식당에 가기보다 헬스기구를 집에 장만하고 식재료를 택배로 받으려는 수요가 급증한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앞으로 1~2년 내로 글로벌 공급망이 회복되고 선진국 재정·통화정책이 정상화됨에 따라 물가상승률이 안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오미크론 등의 변수로 이를 확신하기 힘든 상황이다. 터키·브라질 등 국내 정치상황으로 인해 물가상승률이 예외적으로 높은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개도국 물가상승률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 비해 높지 않은 수준이다. 선진국에 비해 유동성 공급이 적었고 성공적 방역정책으로 인해 봉쇄기간이 짧았던 아시아에서는 소비수요가 급등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어 아직까지 전세계적으로 가장 안정된 물가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새해 세계 경제전망

IMF, 경제성장률 4.9% 예상했지만

오미크론 확산에 전망치 낮출 듯

지난해 12월 중국 국무원 산하 최대 싱크탱크인 중국 사회과학원이 새해의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5.3%로 제시했다. 중국 성장률이 6% 아래로 내려간 건 코로나19 충격을 겪은 2020년(2.3%)을 제외하면 1990년(3.8%)이 마지막이다.  
"5% 중반 성장률이 낮아 보일 수 있으나 잠재성장률을 생각해보면 그리 낮은 수준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IMF도 올해 중국 성장률을 5.6%로 예상했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 성장세가 눈에 띄게 둔화돼 이달에 전망치를 상당폭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성장세 둔화의 원인은 글로벌 요인 외에 내부에서도 찾을 수 있다. 헝다그룹 부채위기를 시작으로 부동산시장 경색이 심화됐고 제로 코로나 방역정책으로 민간소비가 더디게 회복되고 있으며, 과도한 부채를 줄이기 위해 시작된 재정정책이 예상보다 긴축적으로 운영됐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경기 둔화가 심화될 경우 중국 경제가 5%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중국정부의 경기부양 의지에 달려 있다. 성장률 유지를 위해 재정·통화정책 기조를 완화할 수 있지만 그 경우 부채비율을 낮추려는 중장기 목표가 희생될 것이다."  
반도체 등 첨단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미·중 갈등이 중국 경제에 중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부동산 시장 경색이나 코로나 사태보다 첨단산업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중국 정부에 더 큰 고민거리일 수 있다. 30년간 고속성장해 G2가 됐지만 앞으로의 성장 동력이 불투명하다. ‘한가정 한자녀’ 정책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이미 줄어들기 시작했고, 투자위주 성장정책으로 부채 의존도가 높아지고 소득 분배가 악화되면서 과거 성장 프레임을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생산성 향상을 통해 질적성장으로의 전환이 필요한데 미·중갈등으로 인해 첨단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하락했다. 공기업 의존도가 매우 높은 중국이 자생적으로 첨단산업을 육성할 수 있을지 의견이 분분하다."  
Asia and Pacific Department Director Changyong Rhee poses for a photo at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Photo/Cory Hancock 21 September 2021 Washington, DC, United States Photo ref: CH210921055.arw

Asia and Pacific Department Director Changyong Rhee poses for a photo at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Photo/Cory Hancock 21 September 2021 Washington, DC, United States Photo ref: CH210921055.arw

올해 한국 경제는 어떨까. 민간 경제연구소는 대략 2%대 후반, 정부와 국책 연구소는 3%대 성장을 전망한다.  
"IMF의 지난해 10월 전망은 3.3%였다.  그 이후 자료를 보면 수출과 제조업 성장세는 유지되고 있으나 서비스 산업 회복세는 더딘 편이다. 무엇보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돼 1월에 전망치를 낮출 것 같다."
세계 경제의 위협요인 가운데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뭔가.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 미국 금리상승의 파급효과, 미·중 갈등 악화, 중국경제의 둔화세 등이 주요 위험요인이다. 특히 한국은 코로나 위기로부터 출구전략을 시작했다.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 가격 및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금리인상을 선제적으로 시작한 몇 안되는 선진국 중 하나이며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 정도도 작년에 비해 줄어들 전망이다. 오미크론으로 인한 경기상황 변화를 보면서 금융시장 연착륙을 위해 재정과 통화정책을 어떻게 미세조정할지가 주요 과제다."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본격적인 긴축 시그널을 던졌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전처럼 개도국의 긴축발작을 초래할 위험은 어느 정도인가.    
"미 연준의 12월 발표는 일단 미국 주식시장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올해 1%내의 금리 인상으로 성장동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시장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연준의 이러한 정책이 개도국에 미칠 파급효과는 아직 단정하기 이르다. 금리 인상의 원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의 물가상승과 금리인상이 총수요증가보다 공급 요인, 즉 글로벌 공급망 개선 지연이나 기대인플레이션 상승 때문이라면 부정적 효과가 커질 것이다. 대미 수출 여력은 늘어나지 않으면서 자본유출과 환율 변동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2013년 긴축발작(Taper Tantrum) 시기에 비하면 연준이 시장과 투명하게 소통하고 있고 경상수지, 외환보유액에서 아시아 개도국들의 상황도 나아졌기에 미국의 금리인상이 아시아에서 금융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아시아 부채가 크게 증가한 것은 새로운 불안요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만 해도 전세계 부채의 23% 정도였던 아시아 부채는 최근 37%까지 증가했다. 늘어난 부채가 국가부채, 회사채, 가계부채인지는 나라별로 차이가 나지만 급증한 부채비율을 고려할 때 국제 금리 인상이 아시아 경제 회복세를 둔화시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내 재정 상황

코로나 대응 과정서 재정 지출 급증

국가부채비율 100% 지점 빨라질 것

한국도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재정을 많이 투입해 부채비율이 증가했다. 여야 모두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거론하고 있는데 한국의 재정여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2020년말 미국과 일본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각각 128%와 247%인 반면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이 45% 정도이니 재정여력이 있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 더 길게 보면 사정이 녹녹치 않다. 국회 예산정책처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부채 비율은 2030년 75%, 2040년 104%로 급증한다. 복지정책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더라도 급격한 고령화로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성 기금 지출이 급증해 재정적자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전망은 앞으로 코로나 사태처럼 큰 위기가 다시 찾아 왔을 때 자영업자 손실보상금과 같이 불가피하게 허용해야 하는 재량적 지출증가를 고려하지 않은 숫자다. 이를 고려하면 2040년보다 더 빠른 시점에 국가부채비율이 100%를 넘어설 수도 있다.  재정여력이 있으니 더 써도 된다는 주장은 앞으로 몇 년 뒤에는 하기 힘들 것이다."  
고령화 추세 등을 감안하면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급속도로 증가한다는 얘기는 별로 새롭지 않다. 과거 재정당국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던 국가부채비율 40% 마지노선은 이제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국가부채비율을 선진국은 60%, 개도국은 50% 이하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져왔다. 이론적 근거는 약하지만 과거 국가부도 사례를 통해 얻은 경험법칙 중 하나였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 사태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선진국 국가부채비율이 100% 넘는 수준으로 크게 증가하면서 적어도 선진국에 관한 한 이 준칙이 유명무실하게 됐었다. 높아진 국가채무 비율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의 양적 팽창정책으로 이자율이 낮아져 정부의 이자 부담이 감소하자 적정 부채비율이 높아졌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개도국에 대해서는 이전 준칙에 대한 믿음이 계속 되고 있는 듯하다.    
선진국 금리가 크게 낮아진 현실을 반영하여 모든 국가에 적용될 수 있는 공통된 기준을 찾기보다 개별 국가 상황을 반영해 적정 국가부채비율을 찾으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부채비율이 증가할 때 조세수입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민간저축이 늘어난 국채를 소화하기 충분한지, 해외신인도나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할지 등이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상황에 적용해보면 국가부채비율 40%를 마지노선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지나치게 경직적이지만 미국·일본처럼 우리나라 국가부채비율이 100% 가깝게 단기간에 급증해도 아무런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 주장하는 것도 무책임해보인다."  

국가부채 증가 위험성

선진국 됐으니 빚 늘려도 문제없다?

이탈리아는 국가부도 위기 시달려

Changyong Rhee, Director of the Asia and Pacific Department of the IMF speaks during the Asia and Pacific Department press briefing during the 2014 IMF/World Bank Annual Meetings in Washington, D.C. on Friday October 10th. This press briefing by the Asia and Pacific Department addresses issues related to the Regional Economic Outlook. Photo by Ryan Rayburn/IMF

Changyong Rhee, Director of the Asia and Pacific Department of the IMF speaks during the Asia and Pacific Department press briefing during the 2014 IMF/World Bank Annual Meetings in Washington, D.C. on Friday October 10th. This press briefing by the Asia and Pacific Department addresses issues related to the Regional Economic Outlook. Photo by Ryan Rayburn/IMF

한국이 국가부채비율 100%를 넘으면 생길 수 있는 위험은.  
"국가부채가 빠르게 늘어나면 발행이자율이 높아져 정부의 이자지급 부담이 커진다. 은행·증권사·보험사·연기금 등이 신인도와 유동성이 높은 국채를 우선적으로 인수하겠지만, 그만큼 주식이나 회사채 매입이 줄어들어 시장이자율이 상승하고 민간투자가 구축된다. 이러한 구축효과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진국처럼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주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중앙은행은 파산위험이 없으니 매입한 국채를 탕감시켜주면 어떠냐는 극단적 견해까지 나왔다. 
그러나 중앙은행을 동원해 국채를 매입하면 유동성 증가로 인플레이션 및 부동산 가격 상승, 환율 평가절하 등 다른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 또한 국가부채비율이 높아지면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이 큰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정부의 대처 능력이 제한되어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줄 것이다. 민간 금융기관의 국채보유량이 크게 늘어났을 때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국채가격이 떨어지면 민간금융기관의 건전성도 동시에 하락해 위기를 상호 증폭시킬 수 있다. 이미 최근 국채금리 상승으로 인한 평가손때문에 국내 보험사들이 자본확충에 나서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중요한 문제다. 더 설명해달라.      
"미국의 국가부채비율은 2010년 50% 수준에서 2020년 128%로 급격히 증가했지만 큰 부작용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보유한 특권 때문에 국채발행이 늘어나도 투자자 찾는 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이탈리아도 국제화된 통화를 보유한 선진국이지만 미국만큼의 특권을 누리지 못했다. 국가부채가 급증하는 가운데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했고 이탈리아는 줄곧 국가부도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보면 우리도 선진국이 되었으니 남미사례에 매달리지 말고 다른 선진국처럼 국가부채를 크게 늘려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너무 안이해 보인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이 60-70% 이상으로 빠르게 증가할 때 국제금융시장이 한국을 미국, 일본과 같이 취급해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 아니면 OECD 국가이긴 하지만 기축통화를 보유하지 못한 터키, 멕시코와 같은 그룹이라 생각해 투자자금을 회수할지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원화가 국제통화가 아니기에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IMF 2022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

IMF 2022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재정지출의 우선 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나누어준 재난지원금을 처음부터 자영업자에 대한 손실보상금으로 선별해 사용했다면 같은 재정적자로도 더욱 효율적인 위기대응이 가능했을 것이다. 둘째, 중장기적으로 세수증대에 대한 합의가 불가피하다. 현재 우리의 복지수준이 선진국 평균에 비해 높은 편이 아니기에 복지지출은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 따라서 부채비율 증가속도를 조절하려면 GDP 대비 23% 수준인 총수입 비중을 선진국 평균 수준인 30% 정도까지 늘리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어느 정부도 세금증가가 가져올 정치적 부담을 지려하지 않을 것이니 그 부담을 미래로 분산시키기 위해 앞으로 10년간 매년 GDP 대비 0.5%씩 세수(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장기여금 포함)를 증가시키고 이를 복지지출 재원로 연계시키는 방안을 제안해본다."

한국의 갈 길

재정 지출 우선순위 명확히 하고  

부동산 잡으려 조세 동원 말아야  

유력 후보들이 연금개혁과 같이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공약은 내걸지 않는다. 10년간 세수 증가에 합의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일본도 10년이 넘는 논란 끝에 2014년에야 부가가치세 인상에 합의했다. 그렇다고 세수 증가 없이 국가부채비율을 100% 이하로 관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는 청년실업만큼이나 노인빈곤이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그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복지지출과 세수 증가를 연계시키고 특정 정부의 부담이 되지 않게 세수 증가를 다년에 걸쳐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아파트 가격이 안정되고 있다는 지표가 나오고 있지만 새해에도 주택가격이 오른다는 전망도 많다.    
"특정지역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 거시경제 전체에 영향을 주는 조세·금리 정책을 동원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서울 강남 요지의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세율이나 이자율을 올리면 그 부작용으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것이다. 부동산 세제는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접근하고 부동산 정책은 서민주택의 안정적 공급이 주목적임을 명확히 해야만 이념이나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고 그 결과 부동산 가격도 안정될 것이다. 물론 그 경우에도 서울 강남 지역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정치적 이유로 서울 강남 등 특정 부동산 가격을 반드시 안정시켜야 한다면 다른 지역의 교육, 의료, 교통, 문화 등 주거환경 인프라를 강남 수준으로 올리는 방법밖에 없다. 미국과 영국 정부가 뉴욕과 런던 부동산 가격을 세제로 잡았거나 잡으려 한 사례를 알지 못한다.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명확히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주택 분야 민간연구기관인 주택산업연구원이 지난 연말 보고서에서 “주택시장 수요·공급량 판단 오류와 이념에 치우친 비전문가들이 주도한 정책으로 주택시장 안정화에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지역균형 발전과 다양성 강화를 위한 교육정책이지만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제안이 있다. 전국 주요 대학, 특히 수도권 소재 대학이 신입생을 선발할 때 비수도권 지역 출신 인재들을 일정 수준 이상 확보하도록 의무화하는 정책이다. 현재 서울, 경기, 인천 지역 학생들이 고등학교 재학생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수도권 이외 지역 인재를 절반 이상 신입생으로 선발하도록 의무화하고 각 대학들이 지역별 쿼터 안에서 성적과 잠재력을 기준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도록 하자. 이렇게 하면 다양한 지역적 배경을 가진 인재를 육성하는 장점이 있고 현재 소규모로 운용되고 있는 학교장 추천제나 지역할당제에 비해 선택된 학생들이 특혜를 받았다는 시비를 피할 수 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수도권으로 이주하려는 수요가 줄고 오히려 유명대학에 가기 위해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려는 유인도 생겨 지방경제 활성화와 지방 명문고 부활도 기대할 수 있다.  
1970~80년대 서울 주요대학 캠퍼스에 전국 방방곡곡 고등학교들의 동문회 포스터가 곳곳에 나붙어 있던 모습이 재현될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좋은 일이며 서울 집값을 안정시키는데도 종부세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오해의 소지가 없게 나는 조세형평성을 위해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 정책에 찬성하는 입장임을 분명히 해둔다."

이창용 IMF 국장

1960년생.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교수를 하다가 2008년 관료로 변신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G20 기획조정단장을 지냈다. ADB 수석이코노미스트로 3년간 일하고, 2014년 IMF로 옮겨 8년째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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