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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세계최대 독수리 월동지 장단반도…'독수리가 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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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 내 장단반도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독수리(천연기념물 제243-1호) 월동지였다. 겨울이면 ‘독수리 천국’을 이뤘던 곳이다. 지난 2000년 말부터 20여 년째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독수리 700∼1000마리가 몽골에서 대규모로 날아와 겨울을 났었다.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내 장단반도 독수리 월동지에서 지난 2011년 12월 10일 겨울을 나고 있는 독수리들. 중앙포토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내 장단반도 독수리 월동지에서 지난 2011년 12월 10일 겨울을 나고 있는 독수리들. 중앙포토

먹이 주기 행사 중단으로 독수리 사라져  

7일 한국조류보호협회에 따르면 이번 겨울에는 장단반도 일대에서 독수리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2주일에 한 차례씩 협회 측에서 2.5t씩 돼지고기와 닭고기 먹이를 가져다줄 때만 예년 겨울의 절반 이하인 300여 마리가 잠시 모여들었다가 이내 멀리 흩어져 버린다.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내 장단반도 독수리 월동지에서 지난 2018년 2월 3일 겨울을 나고 있는 독수리들. 한국조류보호협회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내 장단반도 독수리 월동지에서 지난 2018년 2월 3일 겨울을 나고 있는 독수리들. 한국조류보호협회

월동지를 떠난 독수리들은 민통선 바깥인 파주시 적성, 파평 등지의 축산 농가 인근과 들녘에서 목격되고 있다. 조류보호협회가 탈진 또는 부상, 독극물 중독 등으로 쓰러진 독수리를 구조해 보호 중인 민통선 바깥 적성면 마지리 조류방사장에도 하루 평균 10여 마리의 독수리가 먹잇감을 찾아 날아들고 있다. 이곳과 월동지의 거리는 25㎞다.

흩어진 독수리, 축산농가 인근과 두루미 월동지서 출몰  

파주 장단반도 월동지를 떠난 독수리 가운데 20여 마리는 60여㎞ 동쪽 중부전선 민통선 내 임진강 빙애여울 두루미 월동지 일대에서도 목격되고 있다. 이석우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대표는 “두루미 월동지에서는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데도 지난겨울에 이어 이번 겨울에도 독수리 20여 마리가 이례적으로 날아들어 의아스럽게 생각한다”며 “때때로 조류 사체를 놓고 독수리와 흰꼬리수리, 까마귀가 먹이 경쟁을 하는 모습까지 눈에 띈다”고 했다.

한국조류학회 등에 따르면 민통선 안은 독수리가 가장 안전하게 겨울을 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독수리 월동지는 군사분계선과 3㎞ 떨어진 수확이 끝난 논과 구릉지여서 독수리가 겨울을 나기에 최적의 장소다.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군 작전 지역인 데다 겨울에는 출입영농인도 거의 없고 생태계가 잘 보전돼 있어 독수리가 겨울나기에 안전한 곳이다. 더욱이 인근에 조류 사체 등 독수리의 먹잇감이 풍부한 임진강 하류가 있어 독수리의 월동 환경이 우수한 지역이다.

파주 민통선 독수리 월동지는 안전한 최적의 공간    

한국조류보호협회 한갑수 파주시지회장은 “700마리 이상의 독수리가 월동지에서 머물며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선 매주 한 차례 이상 2.5t씩 돼지고기와 닭고기 먹이를 충분히 가져다줘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재청과 파주시로부터 지원받는 먹이 주기 예산이 한정된 데다 먹이값도 계속 올라 먹이가 늘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러다 보니 이달 들어서는 먹이 부족으로 인한 탈진으로 쓰러진 독수리 2마리를 구조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조류인플루엔자(AI),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되던 각급 기관·단체 등이 참여하는 ‘독수리 먹이 주기 행사’가 뚝 끊기는 바람에 월동지 독수리가 배를 곯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파주 장단반도 독수리 월동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파주 장단반도 독수리 월동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파주 민통선 독수리 월동지 먹이 주기 정기적으로 이뤄져야”    

백운기(동물학 박사) 한국조류학회 전 회장은 “독수리 월동지인 파주 장단반도에서의 독수리 먹이 주기가 정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최대 규모인 파주 월동지에 먹이를 정기적으로 공급하지 않으면 독수리가 전국 양계, 양돈 농장 주변으로 흩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간인 출입이 없는 안전한 민통선 내에서 먹이 주기를 지속하며 독수리가 민통선 내에 머물게 하는 게 독수리와 축산농가를 보호하고 ASF·AI 등의 확산 우려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독수리=한국과 몽골을 오가며 서식한다. 동물의 사체를 먹어 ‘야생의 청소부’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수릿과 조류 중 덩치가 큰 맹금류를 흔히 ‘독수리’로 통칭하지만, 엄밀하게는 서로 다른 종(種)이다. 가령 ‘미국 독수리’는 흰머리수리를 말한다. 수릿과 조류 중 독수리·검독수리·참수리·흰꼬리수리 등 4종류가 천연기념물(제243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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