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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확실히 챙기는 공공부문 노조…노동계 요구 입법 전격전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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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열린 '한국노총 공공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노동이사제 쟁취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1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열린 '한국노총 공공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노동이사제 쟁취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김기찬 노동전문기자의 픽 : 노동이사제, 공무원 노조전임자 보수 

앞으로 일을 하지 않고 노조 활동에만 전념하는 공무원과 교사에게도 월급이 지급될 전망이다. 여기에 더해 공공부문에는 노동이사제가 도입돼 경영 개입까지 보장된다. 국회가 이 두 가지 사안을 강제 시행토록 법을 뜯어고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공공부문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제를, 기획재정위원회는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을 처리하고 나섰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격전의 양상이다. 11일 본회의 통과가 유력하다.

국회 기재위는 5일 전체회의를 열어 노동이사제를 담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처리했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이사로 선임돼 이사회에서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제도다.

한국에서 공공부문 노조의 힘은 막강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민간부문 노조조직률은 11.3%에 불과하다. 공공부문은 69.3%에 달한다. 공무원 노조조직률은 88.5%이고, 교원도 16.8%다. 한국 노사관계를 언급할 때 투쟁 중심의 노동운동은 늘 첫 손에 꼽힌다. 이런 노동운동의 중심에 공공부문이 있음을 짐작케하는 통계다. 막강한 조직력으로 투쟁을 통한 협상력의 우위에 있던 공공부문 노조가 이젠 경영상 결정을 내리는 이사회까지 진출하는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노동계는 당연히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노총은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는 노사 간 갈등을 줄이고 사회적 비용도 줄어드는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며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과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진짜 공공기관 개혁’을 견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도 "공공부문의 경우 노동이사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이 적지 않게 있지만 이를 법제화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며 "노동이사제가 노사가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적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사 협상을 넘어 경영 관련 공동 결정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공공 개혁은 물건너 간다"고 반박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5개 경제단체는 "갈등적 노사관계 환경에서 공공부문의 노동이사제 도입은 노사관계 힘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공공기관의 방만한 운영과 도덕적 해이가 더욱 조장될 것"이라며 "특히 민간기업에까지 확대될 경우 이사회 기능을 왜곡시키고 경영상 의사결정의 신속성을 저하하는 등 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수년 전부터 노동이사제에 목을 맸다. 경영에 직접 참여해 노동자의 권익을 챙기겠다고 했다. 노동자는 '기업의 이해 관계자'라는 논리를 내세우면서다. 이 주장대로라면 지역 주민이나 소비자 등 이해 관계자가 줄줄이 이사진에 포진해야 한다.

노동계가 내세운 '이해관계자' 논리는 유럽의 사례에서 따왔다. 노동이사제를 운용하는 독일 등의 경제체제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근간을 두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헌법은 제119조에 자유시장 경제와 시장 자본주의를 명시하고 있다. 주주를 기반으로 주주에게 책임을 지우는 주주 자본주의다. 노동계의 논리나 이를 국정과제로 택한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국가 경제체제와 괴리가 있는 셈이다.

노동계의 노동이사제 법제화 요구는 최근들어 거세졌다. 그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가 얼마 남지 않아 그 안에 속전속결로 처리하려는 속내도 있지만, 경영계가 의도치 않게 불을 지른 측면도 있다. 경영계가 화두로 꺼낸 ESG다. 환경(E)과 사회적 책임(S), 지배구조 개선(G)이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ESG를 꺼내며 기치를 들고, 기업이 호응했다. ESG가 경영의 대세라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문제는 정작 G(지배구조 개선)와 관련해선 별 말이 없다. 오로지 E(환경) 관련 사항만 얘기한다. 여기에 S(사회적 책임)가 곁들여졌을 뿐이다. 사실상 ESG가 아니라 ES만 주장하는 셈이다. "경영계가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다를 바 없는 화두를 ESG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주목을 끄는 행동을 할 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노동이사제는 따지고 보면 G와 관련된 것이다. 노동계가 이걸 포착해 건드리고 나온 것이다. ESG 논리에 따르면 경영계의 반발은 '이유없음'이 되는 꼴이어서 머쓱해지게 된다.

그렇다고 노동이사제를 둘러싼 경영계의 걱정이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경영계가 ESG를 들고 나와 스스로 발목을 잡은 꼴이지만, 경영은 급변하는 환경에 즉각 대응해야 기업을 살리고 성장할 수 있다. 경영계가 특히 걱정하는 건 바로 이부분이다. 이사회가 임금인상과 같은 근로조건 개선에만 몰두하는 또 다른 노사 협상장으로 변질하지 않을까, 중요한 경영상 결정을 해야 하는 이사회마저 노조에 휘둘릴까 우려하는 것이다.

학계도 경영계와 같은 걱정을 한다. 지난해 5월 전국 4년제 대학 경제·경영학과 교수 200명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한 결과 61.5%가 '노동이사제가 민간기업에 적용되면 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 '우리 경제 시스템과 맞지 않는다'는 응답도 57%에 달했다. 44%는 공공부문 노동이사제가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방만 경영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고 봤다. 공기업이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으면서 민간기업에 비해 임금 등 높은 수준의 근로조건을 누리고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걱정이 현실화한 사례도 있다.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에서다. 이 항공사는 2002년 파산신청을 했다. 당시 이 회사에는 기능직 노조와 조종사 노조가 각각 선출한 근로자 이사 2명이 이사회(총12명)에 참여했다. 미국의 다른 회사와 달리 유나이티드 항공이 근로자 이사를 선임한 이유는 직원들이 지분의 55%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주 자본주의에 따른 조치인 셈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사회가 수익창출보다는 임금인상 등에 중점을 두는 의사결정을 하고, 경영위기 상황에서도 구조조정과 인력감축, 임금인하 등을 회피하면서 위기극복에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LA타임스도 "기업의 중요한 결정에 대해 노동계가 거부권을 가지는 강력한 이사회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2016년 산하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서울시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서울시 산하 재단 관계자는 "근로자(노동) 이사는 근로자의 권익을 얻기 위한 요구를 많이 한다. 규정에 합당한 요구인지 등을 따져보고 결정할 사항들인데, 근로자 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한 이후로는 재단 전체의 발전이나 위상보다는 근로자의 이익 실현이 우선이다 보니 세부적인 문제가 이슈가 되는 경우가 있다"(서울시 사례집)고 지적했다. 노동이사제를 두고 "공공부문 개혁은 물건너 갔다"는 비판이 나오는 건 이런 맥락에서다.

노동계가 모범사례로 꼽는 독일에서도 노동이사제는 계륵형 제도로 치부되곤 한다. 독일 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노동이사제가 의사결정을 더디게 만드는 것(48.8%)으로 나타났다. 의사결정을 가속화한다(11.3%)는 응답의 4배가 넘는다. 기업 인수(긍정적 영향 22.4%, 부정적 영향 42.1%)나 합병(긍정적 영향 5%, 부정적 영향 52.2%)에도 걸림돌이라는 반응이다.

한편 공무원과 교원 노조 전임자가 일 하지 않고 노조활동만 해도 보수를 지급하는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제도 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를 통과했다. 지금까지 공무원이나 교원은 노조전임자일 경우 휴직해야 했다. 보수도 지급되지 않았다. 국민의 공복으로서 수행해야 할 대민 또는 정책 업무를 하지 않는데 국민이 세금으로 돈을 줄 이유가 없어서다. 따라서 공무원·교원 노조전임자의 보수는 노조가 조합비로 자체 해결해야 했다. 자치의 원리이자 세금의 쓰임새와 부합하는 원칙이다.

이 원칙이 대선을 앞두고 뒤집혔다. 일부 지역 교육청 등이 반대의견을 냈지만, 공론화 과정 없이 전격적으로 처리됐다. 공무원노조를 비롯한 노동계는 "합리적인 노사관계 정착을 위한 조치"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경제단체는 "노사 자치를 독려하지는 못할망정, 혈세로 노조를 지원한다"며 비판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행정자치부와 지자체, 각 교육청 등은 노조전임자에게 줄 임금을 별도 예산으로 편성해야 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보수를 지급할 노조전임자의 규모도 정해야 한다. 노사 간의 일전이 불가피하다. 당장 공무원노조는 "반노동 경사노위에 공무원·교원 타임오프를 맡길 수 없다"며 "온전한 노동기본권 보장과 정치자유 쟁취를 위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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