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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환 曰] 광야(曠野)에서 헤매는 야(野)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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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호 30면

한경환 총괄 에디터

한경환 총괄 에디터

“이준석 대표, 우리가 뽑았잖나. 모두 힘을 합쳐서 승리로 이끌자.”(윤석열 후보) “실망스러운 모습 보인 것은 제가 사과드린다. 선거 승리로 보답하겠다.” (이준석 대표)

국민의힘이 지난 6일 밤 당 내홍을 극적으로 봉합했지만 뒷맛은 영 개운치 않다. 데자뷔를 보는 것 같아서다. 지난해 12월 3일 울산 회동에서도 윤 후보와 이 대표는 갈등을 풀고 ‘원팀’임을 강조했다.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사람 중에서는 이들의 재화해에 한편으로는 안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이 사람들이 쇼 하나’라며 힐난하기도 한다. 다 차려 놓은 밥상을 제 발로 걷어차 엎어 버린 사람들이 또다시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양치기 소년’에게는 감흥이 없을 뿐 아니라 괘씸한 생각마저 들기 마련이다.

국민의힘 내홍 또다시 봉합했지만
‘양치기 소년’되면 광야생활 길어질 것

실제로 6일 2차 갈등이 봉합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윤 후보 측과 이 대표 사이에는 뿌리 깊은 불신과 심지어 증오마저 느껴졌다. 이런 기류는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국민의힘이 처한 상황을 광야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정권교체와 새 시대를 외치는 그런 ‘호기로운 광야’라기보다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도 내분과 오만, 오판으로 ‘방황하는 광야’에 더 가깝다. 이집트에서 노예처럼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리더십으로 홍해를 건너 출애굽에 성공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이들은 걸어서 2주밖에 걸리지 않는 가나안까지의 지름길을 외면하고 40년 광야생활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맛봐야 했다. 정작 지도자 모세는 가나안에 입성하지도 못해 보고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국민의힘에는 도저히 위기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제 앞길만, 제 살길만 찾는 이기적인 집단처럼 보였다. 2017년 대선과 2020년 총선에서 대패한 후 가까스로 당을 추슬러 지난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기사회생했지만 사실 이때부터 문제가 더 커졌다. 당장에라도 정권교체가 눈앞에 온 것처럼 착각에 빠졌다. 갖은 오만에 빠져 험난한 광야생활이 펼쳐질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찾아온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배운 교훈이라고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6월 국회의원 배지도 달아 보지 못한 30대의 젊은 당 대표를 선출할 때만 해도 국민의힘엔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이번 대선의 캐스팅 보트를 쥔 2030에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대표와 윤 후보는 시너지를 내기는커녕 툭하면 기싸움을 벌이면서 엄청난 상처를 내며 자폭을 자초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자세히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준석 대표는 미래세대에 대한 기대를 결과적으로 저버린 셈이 됐다.

국민의힘은 LH 사건, 대장동 의혹 등 여권의 실책으로 찾아온 반사이익도 다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다. 가나안으로 들어가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걸까. 아니면 광야가 더 좋은 걸까.

만에 하나 천운이 따라 국민의힘이 집권을 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다. 그들의 형편없는 민낯을 만천하에 생생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승리한들 ‘윤핵관’을 자처하는 사람들끼리 자리다툼으로, 권력게임으로 5년을 허송세월할 게 뻔하다. 그런 정권교체가 무슨 의미가 있나. 누가 그런 정부를 지지하겠나.

이번에 또 어떻게 꾸역꾸역 수습한다고 하더라도 대선까지는 갈등의 가시밭길이 도처에서 드러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정말 대오각성하지 않는다면, 환골탈태지 않는다면 국민의힘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광야에 머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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