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코로나 확진자 급감한 일본, 송년·신년회로 북적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70호 27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코로나19 확산이 누그러진 일본 오사카의 관광명소 도톤보리 거리가 행인들로 활기를 띠고 있다. 일본에선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연말연시 모임이 부쩍 늘었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코로나19 확산이 누그러진 일본 오사카의 관광명소 도톤보리 거리가 행인들로 활기를 띠고 있다. 일본에선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연말연시 모임이 부쩍 늘었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일본에 일시 귀국해서 연말연시를 지내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쯤과 달리 송년회와 신년회를 포함한 술자리가 많아 오랜만에 영화 관계자나 신문사 선배, 친구들과 술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일본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많았을 때 음식점에서 주류 제공을 하지 않았다. 가을 이후 일본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감했고 여러 제한도 풀렸다. 요즘은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의 음식점은 많은 손님으로 북적이고 있다.

단골 이자카야, 코로나 전보다 바빠 보여

단골이었던 도쿄의 이자카야를 찾아갔더니 코로나19 전보다 바빠 보였다. 주인한테 물어보니까 주류 제공을 못 하는 동안은 휴업했다. 도쿄도에서 협력금을 받고 직원들 월급은 제대로 주면서 쉬었다가 최근 영업을 재개했다고 한다. 나는 폐업한 것 아닌지 걱정하면서 갔는데 “생각보다 타격이 없었다”며 밝게 이야기하는 주인의 표정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변화도 있었다. 일본에서 술을 먹으면 마지막에 ‘시메’로 밥 종류나 면 종류를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 단골 이자카야에서는 밥 종류 메뉴가 없어졌다. 주인한테 이유를 물어보니까 “올림픽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은 ‘흡연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음식점이 많았는데 도쿄 올림픽 전부터 원칙적으로 음식점에서 흡연을 금지했다. 예외로 바 같은 데는 흡연이 가능한데 이자카야와 바의 구별은 밥 종류 제공 여부가 하나의 기준이라고 한다. 주인 말로는 “밥 종류가 메뉴에서 없어진 것 때문에 안 오는 손님보다 금연 때문에 안 오는 손님이 훨씬 많다”고 한다. 나같이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한테는 흡연 손님은 많아지고 밥 종류는 없어지면 좋은 일이 없다. 물론 금연으로 하고 예전대로 밥 종류를 제공하는 이자카야도 많겠지만. 올림픽과 흡연과 밥 종류 제공의 상관관계는 알듯 말듯 하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가니까 이런 변화가 있었다.

‘관저’가 아닌 ‘관료’ 주도 정치 행보를 보이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기시다 정부에서 ‘탈아베’ 조짐도 보여 한·일 관계 개선 여지가 생길 거라는 예상도 나온다. [AP=연합뉴스]

‘관저’가 아닌 ‘관료’ 주도 정치 행보를 보이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기시다 정부에서 ‘탈아베’ 조짐도 보여 한·일 관계 개선 여지가 생길 거라는 예상도 나온다. [AP=연합뉴스]

신문사 선배와의 술자리에서는 한·일 관계에 대한 화제도 나왔는데 희망을 느낄 만한 이야기도 있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밑에서 ‘탈 아베(脱安倍)’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2012년 12월에 두 번째 총리가 된 후 2020년 9월까지 재임기간이 역대 최장 총리가 됐던 만큼 그동안 아베 색깔이 짙었다. 특징 중 하나는 ‘관저 주도’였다. 총리 중심으로 정권 핵심부가 정책 결정과 수행에 큰 힘을 가졌는데 그 폐해도 많이 지적돼 왔다. 아베의 후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도 관저 주도를 계승했는데 이번 기사다 총리는 조금 다르다고 한다. 아베, 스가 정부의 관저 주도에 불만을 가진 관료들도 적지 않았고 기시다 내각에서 조금씩 ‘관료 주도’로 방향을 되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화가 멈췄던 한·일 관계도 개선의 여지가 생길 거라는 이야기다.

다시 코로나19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대도시와 지방은 상황이 아주 다르다. 나도 남편도 가족들이 지방에 사는데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후 2년 가까이 지방에 있는 가족과 못 만나고 있었다. 오지 말라고 해서다. 지방은 확진자가 적기 때문에 대도시에서 누가 오는 것에 민감하다. 가족 본인들보다 주변 눈치 때문에 불편하다고 한다. 2년이나 못 봤고 나도 항상 일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 확진자가 줄었으면 이번엔 당연히 보겠지 했는데 시부모님한테 연락해 보니까 아직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올 거면 코로나 PCR 검사를 받고 오라고 해서 검사소에 줄을 서서 검사를 받았다.

일본의 새해 음식인 오세치. [사진 나리카와 아야]

일본의 새해 음식인 오세치. [사진 나리카와 아야]

시부모님이 사는 곳은 도쿠시마현(徳島県)이다. 뉴스를 보니까 연말까지 최근 50일 정도 확진자가 제로였다. 이런 상황에서 확진자 1명이라도 나오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민감해지는 것도 이해가 간다. 덕분에 청정지역에서 마음 놓고 온천에 가서 목욕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신년을 맞이했다. 설날에 먹는 오세치(お節) 요리를 함께 먹으며 2년 치 못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건강하게 가족이 모일 수 있는 행복을 실감했다.

이번에 두 달 정도 일본에서 지내는 사이에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는 연극 공연을 보는 것이다. 영화는 개봉 시기를 놓쳐도 나중에 다른 방법으로 볼 수 있지만, 연극은 상연할 때 못 보면 영영 못 볼 가능성이 크다. 나는 아사히신문 기자로 도쿄본사 소속이었던 당시 연극·뮤지컬 담당으로 매일같이 무대 작품을 보고 다녔다. 그래서 그런지 도쿄에 있으면 무대가 그리워진다. 12월 도쿄에 있는 사이에 몇 작품을 봤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공연이 어려워지고 오랜만에 무대에 섰는지 끝나고 인사하는데 우는 배우들이 많았다. 절실함을 느꼈다. 감염병이 퍼진 상황에서 특히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했을 것이고 공연 중지로 인한 경제적 부담도 컸을 것이다. 내가 본 몇 작품은 모두 만석이었다. 공연계도 조금씩 코로나19 이전에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무대선 배우들 눈물 흘리기도

무용가 최승희에 관한 일인 연극 ‘어머니 My Mother’의 공연 장면. [사진 요코타 아츠시]

무용가 최승희에 관한 일인 연극 ‘어머니 My Mother’의 공연 장면. [사진 요코타 아츠시]

이번에 본 한 작품은 무용가 최승희에 관한 일인극 ‘어머니 My Mother’다. 출연한 배우는 ‘명화(みょんふぁ)’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일코리안 배우 홍명화다. 각본·연출도 재일코리안 정의신이 맡았다. 정의신은 ‘야키니쿠 드래곤(焼肉ドラゴン)’이라는 연극의 각본·연출로 알려져 있다.

최승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도 주목받는 무용가였다. [사진 요코타 아츠시]

최승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도 주목받는 무용가였다. [사진 요코타 아츠시]

최승희는 1911년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에 건너가서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漠)한테 춤을 배우며 조선의 민족무용을 토대로 한 창작무용으로 주목을 받았다. 소설 ‘설국’으로 알려진 노벨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를 비롯해 그녀의 미모와 춤에 매료된 일본 문화인도 많았다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공연하고 다녔는데 태평양전쟁 중엔 일본군 위문공연에 출연하기도 했다. 해방 후 월북해서 북한에서도 활약하지만 1958년에 문학가인 남편 안막이 체포되고 최승희도 60년대 후반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

홍명화가 연기한 역할은 최승희의 딸 안성희다. 안성희가 어머니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춤을 추는 장면도 있었다. 홍명화는 어렸을 때 재일한국무용단에서 활동했고 그때부터 최승희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최승희에 대해 연극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꿈을 정의신에게 제안하고 일인극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에서 잊혔던 최승희는 이번 일인극이 신문, 라디오 등에서 소개되면서 재조명됐다. 최승희에 관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문도 들었다.

식민지배, 태평양전쟁, 냉전에 휘말리면서도 무대에 서서 춤을 추고 싶어 했던 최승희의 모습은 코로나19로 인해 무대에 서기가 어려워진 현재 배우들의 절실함과도 겹쳐 보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