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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이룬 포스코 흑자 행진, 경쟁력 없는 한전 적자 수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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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호 16면

성과 엇갈린 포스코·한전

1960년대 비슷한 시기에 공기업으로 출발한 두 기업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경영 성과가 완전히 대비되는 회사로 변했다. 한국전력과 포스코다. 이 두 회사는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로 성장하는 데 초석을 놓은 곳이다. 두 회사가 없었다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달성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 곳은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반면, 다른 한 곳은 최악의 경영 성과를 기록 중이다. 이 두 회사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1960년대 정부는 정부 주도의 경제발전 전략을 채택하고 재정·조세·금융 수단을 동원해 주요 산업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다. 전력산업의 경우 해방 후 남한에 남아 있던 3개사(경성전기·남선전기·조선전업)를 통합해 1961년 7월 한국전력주식회사(한전)로 출범시켰다. 포스코의 경우 1960년대 초반 준비기를 거쳐 1968년 4월 출범했다. 이후 두 회사는 1980년대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따라 포스코가 국민주 1호(1988년 6월), 한전이 국민주 2호(1989년 8월)로 상장했다. 2000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포스코는 완전 민영화(2000년 10월)됐고, 한전은 발전부문을 6개사로 분할해 이들을 자회사화 했다(2001년 4월).

두 기업, 80년대 민영화 후 극과 극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러한 과정을 거친 두 회사의 경영 성적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추정 이익이 9조3500억원(연결기준)으로 창사 이래 ‘최대 이익’이 예상되지만, 한전은 발전 자회사 포함 약 4조 3000억원의 ‘최대 적자’가 예상된다. 물론 공기업의 존재 목적이 있기에 수익성 하나로 한전을 폄하해서는 안 되지만, 상장사인 관계로 재무상태는 중요하다. 왜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을까? ‘포스코는 시황이 좋았고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을 못해서 그렇다’고 간단하게 치부해버리면 미래를 위한 대책을 세울 수가 없다. 시황은 과거에도 좋았던 적이 있었고 전기요금 인상을 못하는 것도 그만한 구조적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두 회사가 가진 차이점을 분석해 대책의 줄기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시장의 특성에 있다. 포스코는 치열한 경쟁에 노출돼 있다. 철강 제품의 수출입이 자유롭다 보니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경쟁을 해야 한다. 특히 2010년부터 즉,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가동으로 국내에 경쟁사가 등장한 이후에는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포스코는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세계적 철강 평가 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s)에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 연속 ‘세계 최고의 경쟁력 있는 회사’로 인정받았다. 반면 한전은 전력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전기는 수입도 안된다.

둘째는 상품의 특성이다. 포스코는 국내외 다양한 고객으로부터 다양한 품질과 규격의 상품을 요청받고 있다. 고객의 요구 조건은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50년이 넘는 연구개발 성과가 누적되면서 매년 특허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매년 고객·상품별 품질과 가격이 다양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한전의 상품인 전기는 전기일 뿐이다. 정전 예방과 일정한 전압관리만 하면 된다. 즉, 모든 고객에게 제공하는 상품의 차별화 요인이 없다.

셋째는 소비자 구조에 있다. 포스코의 소비자는 모두 ‘중간 소비자’다. 포스코가 만든 소재(상품)를 구입해 가공한 후 자동차·선박·기계를 만든다. 한전의 소비자는 다양하다. 모든 산업과 모든 국민이 필요로 하고, 어디에나 항상 있어야 하는 게 한전의 상품인 전기다. 그렇다 보니 전기요금을 책정하는 고객 그룹도 다양하다. 산업용(기업), 일반용(빌딩·상가), 주택용(개인), 교육용, 농사용, 심지어 가로등용까지. 또 계절별로, 시간대별로도 다르다. 고객은 대기업부터 개별 소비자까지 다양한데 상품의 차별화 요인이 없다 보니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민원이 발생하게 된다. 그 결과 ‘전기요금’은 ‘정치요금’이 되었고 ‘전기세(稅)’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차이점은 혁신의 욕구(motivation)다. 포스코는 전 세계 철강사와 치열한 경쟁을 하다 보니 혁신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가 없는 구조다. 따라서 매년 IR 행사 때마다 신제품 개발이나 원가절감을 강조한다. 반면 한전은 판매단가 산정 시 총괄원가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전기를 생산, 판매하는데 들어간 모든 비용에 법인세와 적정이윤까지 포함된 원가를 말한다. 따라서 내부적으로 비용을 절감할 유인 동기가 없다. 전기요금 인상 발표 시 연료비 등 비용 증가만 호소하지, 원가절감 노력 같은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고 내부적으로 이를 유인하는 메커니즘도 없다.

마지막 차이점은 최고경영자(CEO)다. 포스코는 창사이래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사 출신이 CEO를 역임했다. 반면 한전은 거의 모두 정부에서 낙하산으로 임명되고 있다. 이 같은 큰 차이가 지금의 경영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 두 회사가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2050 탄소중립(탄소 배출 제로)의 대표 주자라는 점이다. 포스코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2050 탄소중립은 물론 우리나라 모든 산업의 경쟁력, 모든 사람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한전은 앞서 설명한 다섯 가지 구조상 자기 진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도 한전의 전력원(源) 포트폴리오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한전, 포스코 성공 타산지석 삼아야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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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중요한 전력산업을 지금과 같은 상태로 둘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전력산업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포스코와 같은 완전 민영화도 쉽지는 않다. 차선책으로 포스코의 성공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시장이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기저발전과 송전은 지금처럼 한전이 독점해 공적인 역할을 하고, 배전 이하 부문은 전력시장을 개방해 소매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내부 원가절감을 유인하는 시스템도 도입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한 전력 수요 유연성 자원개발도 시장 참여자들이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소매경쟁을 통해 다양한 옵션의 상품을 개발하고 소비자들에게도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국가 안보 및 기간산업의 대표 격인 한국통신을 민영화시키고(1994년), 신규 사업자를 개방해 오늘날 우리나라의 이동통신 산업은 세계를 리딩하는 수준이 됐다. 이러한 기술력이 앞으로 경쟁적 전력시장과 융합돼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고, 신산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확실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정부 정책의 목표(분산전력·탄소중립·에너지효율성 향상)도 달성할 수 있다.

부조리 제거, 품질 향상, 지주사 전환…포스코 혁신 밑거름

포스코가 완전 민영화된 2000년 10월 이후의 과정은 철저한 몸부림(Self Evolution)이었다. 다른 회사의 벤치마킹을 고려해 대표적인 몇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다. 우선 PI(Process Innovation)가 있다. 광양제철소 완공(1999)으로 ‘1사 2제철소’ 체제가 되자 고객 만족에 초점을 둔 강력한 업무 재설계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것은 이러한 시스템을 활용해 포스코에 기생하던 각종 부조리를 해소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파이넥스(FINEX) 공법 추진이다. 쇳물을 생산할 때 용광로에는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석탄을 덩어리로 만들어 투입해야 하는데, 파이넥스 공법은 별도의 가공 공정을 거치지 않고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일반 석탄을 이용해 쇳물을 만드는 것이다. 용광로 내부 연소에 공기 대신 산소를 사용해 기존 공법보다 황산화물(SOx)·질소산화물(NOx)을 대폭 줄일 수 있는 공법이었다. 문제는 경제성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포스코는 이를 과감히 상용화했다. 유럽에서 시작돼 산업혁명의 기폭제가 된 ‘200년 쇳물’의 역사를 다시 쓴 것이다. 이 공법은 최근 2050 탄소중립(탄소 배출 제로) 달성의 궁극적 목표인 수소환원제철로 가는 중간 단계 공법으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지주사 전환이다. ‘철강을 넘어 전기차, 2차전지 소재, 수소 등 친환경 사업 선도 기업으로 발돋움해야 한다’고 선언한 뒤 포스코는 지주사(포스코 홀딩스)를 설립하고 기존 포스코 등은 물적분할해 자회사로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이러한 발표에 대해 시장에서는 ‘자회사 포스코를 비상장으로 두겠다고 하는데 50조원 이상 소요되는 수소환원제철 투자 자금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안전·보건·환경, 비정규직 보호 등 ESG 경영이 후퇴하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포스코의 스스로 진화하려는 노력은 평가 받을 만한 일이다.

반면 한전은 걱정이다. 현 전력산업 구조에서는 CEO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2분기부터는 연료비 인상분을 반영해 킬로와트시(kwh)당 9.8원을 인상한다고 발표했지만, 그렇다고 적자가 해소되는 게 아니다. 지난 20년간 산업용 전기요금은 80% 이상 인상했고 일반용 전기요금도 지속적으로 인상해 원가회수율이 100%를 넘어섰다. 이 문제를 바로 잡으려면 적자로 판매하고 있는 주택·농사·심야용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전기요금은 이미 ‘정치요금’으로 변질돼 한전 CEO의 손을 벗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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