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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오는 미접종자 왠지 불안” 문전박대하는 식당·카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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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호 03면

방역패스 적용 논란 

서울의 한 식당에 백신 미접종자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서울의 한 식당에 백신 미접종자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지난 23일 전모(23)씨는 자주 방문했던 전북 전주의 한 카페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전씨는 혼자 방문하면서도 PCR 음성 확인 문자를 받았지만 직원은 “백신 미접종자는 입장이 어렵다”고 말했다. 매장 앞에는 ‘미접종자 매장 이용 불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전씨는 1차 접종 후 부정출혈, 호흡 곤란, 두드러기 등 부작용을 겪고 있는 부모님의 권유로 백신 접종을 미루고 있다.

1인 미접종자의 이용이 가능한 정부의 방역 지침에도 불구하고, 백신 미접종자의 이용을 금지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현재 방역 지침에 따르면 미접종자는 혼자인 경우 방역패스(2차 접종 완료, PCR 음성 확인 문자) 없이 식당과 카페 이용이 가능하고, 일행이 있을 경우에는 48시간 내 PCR 음성확인서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방역 강화’를 내세워 자체적으로 미접종자 입장을 거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PCR 확인서도 안 통하는 업소 있어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는 SNS에 “백신 미접종자분들은 테이크 아웃을 부탁드립니다. 개인적인 이유로 백신 접종을 미루고 계시다면 좌석을 내어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카페 주인은 48시간 내 PCR 음성확인서를 소지한 손님의 입장은 거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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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의 한 식당도 SNS를 통해 “돌파감염도 있을 수 있지만, 미접종의 불안 요소가 조금 더 크다”며 “1인도 접종완료 혹은 PCR 음성확인서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인천 소재 한 식당 관계자는 “혼자라고 입장했다가 지인을 만났다며 합석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며 “적발될 경우 수백만원의 과태료까지 감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당 식당 출입문에는 ‘미접종자는 받지 않습니다. PCR 음성, 코로나19 완치자, 18세 미만 예외’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정부는 현재 방역패스를 제시하지 않은 이용자와 확인하지 않은 업소 운영자 모두에게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용자는 10만원, 운영자는 1차 위반 시 150만원, 2차 위반 시 3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반면 미접종자의 입장을 거부한 업장에 대해서는 “감염병예방법 위반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20일 “음성확인서가 있거나 혼자 이용하려는 미접종자의 입장을 금지하는 경우를 감염병예방법으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소비자 보호규약이나 차별에 대한 부분들로 조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마트폰으로 ‘미접종 식당 가이드’를 검색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스마트폰으로 ‘미접종 식당 가이드’를 검색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미접종자는 미접종자를 바이러스 보균자로 보는 시선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전씨는 “혹시 다른 손님에게 피해가 갈까봐 증상이 없는데도 PCR 검사를 받고 갔지만 매장을 이용할 수 없어 속상했다”며 “확진자를 줄여야하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는 되지만 미접종자를 잠정적 확진자, 전파자로 바라보는 정책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미접종자 백모(27)씨는 “지침이 바뀌고 나서 집에서만 밥을 먹고 있다”며 “정부가 미접종자 거부에 대한 지침을 마련해주면 좋겠는데 그럴 생각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점이 불편하면 빨리 접종하라고 강요하는 걸로만 보인다”고 덧붙였다. 30대 주부 박모씨는 “세살 아이와 외출하면 함께 밥도 먹을 수 없는 것이 정상인가”라고 반문했다.

미접종자의 출입을 거부하는 업장을 공유하는 SNS 계정도 생겼다. 현재 ‘공익을 위한 리스트’라는 이름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매일 미접종자의 입장을 거부한 영업장 명이 업데이트된다. 팔로워는 3500명이고, 게시 업장은 수백 곳이다. 네이버 카페 ‘비접종 차별 업장’에는 “보건소로부터 받은 PCR 음성 문자와 신분증을 보여줬지만 인정을 안해주더라” “백신패스 대상이 아닌 18세 미만 청소년도 거부했다” 등 전국 각지 미접종자 거부 업장에 대한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카페 회원은 1만 명이다.

급기야 최근에는 백신 미접종자가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을 안내하는 온라인 사이트 ‘미접종 식당 가이드’가 등장했다. 이용자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지도 위에 ‘이용 가능 식당’과 ‘궁금 식당’을 보여준다. ‘이용 가능 식당’은 미접종자가 출입할 수 있는 식당이고, ‘궁금 식당’은 정보를 알고 싶다는 의미로 사실상 미접종자의 입장이 불가능한 식당까지 포함한다. 하지만 누구나 식당 정보를 등록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사례가 보도되자 개발자는 7일 사과문과 함께 서비스를 종료했다.

백신패스를 둘러싼 갈등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는 이미 12세 이상 시민을 대상으로 백신패스를 시행하고 있다. 독일, 벨기에, 뉴질랜드 등에서도 백신패스가 없는 사람들은 다중이용시설 이용이 불가능하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직장 내 방역패스를 의무화했다. 10월 15일부터 모든 근로자는 업무공간에 출입할 때 그린패스를 제시해야 한다. 그린패스는 접종완료자, 48시간 내 PCR 음성 확인자, 완치자에게 부여된다.

유럽 여러 나라서도 방역패스 갈등

미국은 주마다 백신패스 유무가 다르다. 바이든 행정부가 연방 정부와 계약한 업체 및 직원 100명 이상인 기업에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조치를 내렸으나 잇따른 반대 소송으로 백신 의무화 행정명령이 중단되면서다. 하지만 구글 등 기업에서 미접종 직원들에 대한 급여 삭감, 해고 등 조치를 예고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 CNBC에 따르면 18일까지 백신 접종을 안 한 구글 직원들은 30일간 유급 행정 휴가를 받는다. 이후 6개월간 무급 휴가를 부여하고 이 기간에도 백신을 맞지 않으면 해고된다.

1인 미접종자 이용 거부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시각차가 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3차 접종 이후에도 돌파 감염 사례가 지속되고 있다”며 “미접종자가 더 많이 감염된다고만 볼 수 없기 때문에 1인 미접종자나 PCR 음성이 확인된 미접종자를 거부하는 식당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남중 서울대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접종이 확진율을 줄여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환자를 보는 의사로서 많은 사람이 백신을 맞는 것이 좋다고 본다”면서도 “미접종자 1인의 이용이나, PCR 검사 음성인 사람의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과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익명을 요청한 한 감염병 전문가는 “개인적인 사정이나 신념으로 백신을 접종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은 존중하지만, 그만큼 불편을 감수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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