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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인생 후반 첫 홀 시작, 아직 보여주고 싶은 것 많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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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호 25면

여자골프 세계 2위 고진영의 꿈 

2022시즌을 앞둔 고진영은 "목표했던 걸 다 보여주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사진 JTBC골프매거진]

2022시즌을 앞둔 고진영은 "목표했던 걸 다 보여주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사진 JTBC골프매거진]

여자 골프 세계 2위 고진영(27)은 휴식기에도 바쁜 나날을 보냈다. 지난해 11월 말 귀국해 한 달 반 가량 국내에 있으면서 각종 행사와 광고 촬영 등으로 바쁘게 지냈다. 휴식기에 스키를 배워보고 싶단 생각도 했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상황과 부상 우려 등으로 주변에서 만류해 타지 못했다. 그래도 짬을 내 보낸 소소한 일상은 그에게 활력소가 됐다.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고, 새해 첫날 바닷가에서 일출을 보면서 새 시즌 각오를 다졌다.

화려했던 2021년 시즌을 보내고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고진영을 만났다. 고진영은 지난해 쉼 없이 달렸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19개 대회에 출전했고, 올림픽에도 난생 처음 나갔다.

그의 지난해 시즌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스릴 있었다. 고진영은 상반기에 우승 없이 조용한 시즌을 보냈다. 그러다 7월 이후 하반기에만 5승을 거뒀다. LPGA 투어 상금왕(350만2161 달러)과 올해의 선수(211점), 레이스 투 CME 글로브(3520점)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시즌 4승을 거둔 넬리 코다(미국)에게 여자 골프 세계 1위를 내줬지만, 웬만한 타이틀은 고진영이 대부분 챙겼다. 2018년 LPGA 투어에 데뷔한 지 4시즌 만에 어느새 투어 통산 12승을 거둔 골퍼가 됐다.

지난 시즌 LPGA 투어 상금왕, 올해의 선수

고진영은 지난해를 날씨에 비유했다. “상반기는 구름이 많이 끼었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천둥·번개가 가끔 치는 날씨와 같았죠. 그러다 하반기에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어요. 햇볕이 완전 따스하게 비춘 덕에 상반기에 비로 흠뻑 젖었던 걸 말릴 수 있었어요.”

그는 지난해 상반기를 보내면서 “골프 사춘기를 겪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아꼈던 할머니가 지난해 3월 세상을 떠나면서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 때문에 한국에 올 수 없어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못했다. 고진영은 “당시엔 골프에 대한 동기를 찾기 힘들었다. 처음으로 미국 투어에서 뛰는 게 싫었다”고 말했다. 그새 4월 말엔 훈련 도중 손목 통증까지 생겼다. 7월 초, 발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클래식에서 우승했지만, 8월 의욕적으로 준비했던 도쿄올림픽에서는 공동 9위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지난해 LPGA 투어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고진영. 그는 다양한 개인 타이틀을 땄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LPGA 투어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고진영. 그는 다양한 개인 타이틀을 땄다. [AFP=연합뉴스]

고진영은 도쿄올림픽을 마친 뒤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AIG여자오픈을 앞두고 마음을 다 잡았다. AIG여자오픈에 출전하지 않고 한국에서 다시 스윙을 가다듬기로 했다. 그는 “4년에 한 번 뿐인 올림픽만을 보고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결과가 좋지 않아 힘들었다. 수개월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서 2019년 자신의 한 시즌 4승을 이끌었던 교습가 이시우 프로를 다시 찾아 갔다. 일관성이 줄었던 기존 스윙의 문제점을 찾아낸 그는 큰 근육을 활용한 스윙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췄다. 고진영은 “주니어 시절 마음가짐으로 했다”고 할 만큼 5주 동안 혹독하게 자신을 다스렸다. 그리고 달라졌다. 고진영은 이후 열린 LPGA 투어 7개 대회에서 모두 톱10에 들었다. 우승 4회, 준우승 1회를 거두면서 대반전에 성공했다. 그는 “미치광이처럼 스윙을 잘 하려고 집착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걸 느꼈다. 심리적으로도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고진영의 놀라운 반전에는 강한 멘털이 큰 몫을 차지했다는 평가가 많다. 그의 멘털은 중·고교생 때부터 유명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할 말을 다 한다고 해 ‘고선배’ ‘고선생’으로 불렸다. 2018년 8월부터 고진영의 멘털 트레이닝을 담당하고 있는 정그린 그린코칭솔루션 대표는 “순간 딛고 일어서는 회복 탄력성이 매우 좋다. 본인이 배우고 성장하려는 의지도 강하다. 멘털은 고진영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고진영은 평소 정 대표와 멘털 코칭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을 크게 얻는다고 했다. 그는 “상담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매일같이 울었다. 미국 투어가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걸 느껴서였던 것 같다. 그래도 멘털 코칭을 받는 시간이 쌓이니까 골프가 더 재미있어졌다. 골프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삶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지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중학생 때 공동묘지서 훈련하며 멘털 키워

미국 골프계에선 고진영에 대해 ‘볼 스트라이킹 머신’ ‘로봇’ 같은 수식어를 붙인다. 고진영은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낯간지럽지만, 여기까지 올라오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고진영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2005년에 1998 US여자오픈 대회에서 우승한 박세리의 맨발의 샷을 우연히 TV 재방송으로 접한 뒤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남에게 지기 싫은 승부욕은 골퍼가 되기로 마음먹은 고진영을 더 자극했다. 중학생 때는 말로만 듣던 ‘공동묘지 담력 훈련’을 한 사실도 털어놨다. 고진영은 “중학생 때 정말로 공동묘지에서 연습 스윙을 했다. 더운 날 한밤에 아빠가 나만 공동묘지에 올려놓고 내려갔다가 30분 정도 뒤에 다시 데리러 왔다. 정말 무서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과거 복싱 선수를 했던 아버지 고성태 씨는 고진영에게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진영은 아버지에게 줄넘기, 로드워크 운동을 배웠다. 그는 “격투기 선수가 타이틀전을 준비하는 것처럼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힘든 훈련 과정은 고진영의 기술은 물론 멘털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단단한 기본기는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고진영은 고2, 고3이 되면서 각종 전국 대회를 연이어 제패했다. 이어 정규 투어에 입성한 2014년부터 매년 국내외 대회에서 우승했다.

고진영 선수의 메세지.

고진영 선수의 메세지.

매년 우승하는 골퍼였지만 스포트라이트는 다른 선수들의 몫이었다. 데뷔 초에는 동기인 김효주, 백규정, 김민선이 고진영보다 더 주목받았다. 2016년엔 고진영이 대상을 받았지만, 그해에만 7승을 거둬 당시 최다 상금(13억3309만원)을 획득한 박성현에게 시선이 쏠렸다. 2017년엔 대상, 상금왕 등 6관왕을 달성한 이정은이 있었다.

오해도 샀다. 2015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올해는 다 해먹겠다”고 당차게 포부를 밝혔다가 뭇매를 맞았다. 일부 동료 골퍼와 팬들이 ‘거만하고 건방져 보인다’며 고진영에게 악플과 비난을 퍼부어댔다.

힘든 순간도 있었다. 2015년 처음 외국으로 나가 치른 브리티시여자오픈(현 AIG여자오픈)에서는 몇 홀을 남기고 박인비에게 역전패했다. 최종 라운드 12번 홀까지 단독 선두를 달리다 16번 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이 그린 앞 해저드에 빠지면서 더블 보기를 기록한 게 뼈아팠다. 고진영과 경쟁을 이겨낸 박인비는 이 대회 우승으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고진영은 “그때가 프로 되고서 가장 힘들었다. 대회가 끝난 뒤 영국에서 2번, 한국에서 2번 등 총 4차례 비행기를 타는 고된 일정이 이어졌다. 비행기를 4번 타는 동안 해저드에 빠지는 꿈만 4~5번 꿨다. 한동안 잠도 많이 못 잤다”고 했다.

그래도 고진영은 곧장 자신의 모습을 찾았다. 2017년 10월,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우승으로 LPGA 투어 직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가족들과 상의 끝에 미국 무대 도전을 선택했다. 미국 무대 도전은 첫 해부터 성공적이었다. 고진영은 2018년 LPGA 투어 공식 데뷔전이었던 호주여자오픈에서 우승하고 그해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이어 2019년 메이저 2승을 포함해 4승을 거두고 생애 첫 여자 골프 세계 1위로도 올라섰다. 여자 골프 세계 랭킹에서 그는 총 106주 간 1위를 달려 로레나 오초아(멕시코·158주), 청야니(대만·109주) 다음으로 최장 세계 1위를 지켰다.

고진영은 이제껏 이룬 다양한 성과를 두고 재치 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골프를 할 때는 진짜 제가 봐도 평소와는 다른 사람 같아요. 독하고, 강한 성격을 가진 성격의 소유자랄까요. 만약 제가 다른 사람 입장에서 저를 보면 무서울 것 같아요. 하하”

고진영은 “(프로에 입문하고 지금까지) 전반 9개 홀을 마친 기분이다. 이제 반 정도 왔다”고 말했다. 2022 시즌이 그에겐 후반 첫 홀을 시작하는 셈이다. 그만큼 아직 보여주고 싶은 게 많다. 그는 “프로 골퍼로서 목표했던 걸 다 보여주고 이 세계를 떠나고 싶다. 그래야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미련 없이 육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프로에 입문했을 당시 KLPGA 투어에 소개한 ‘골퍼로서 최종 목표’는 ‘미국 명예의 전당’ 입성이었다. 프로골퍼로서 후반 첫 홀을 곧 시작하는 고진영은 12일 미국으로 출국해 새 시즌을 본격 준비한다.

※ 고진영에 대한 더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프리미엄 골프 전문지 JTBC골프매거진 1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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