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 후 검정고시로 고졸, 대입 정시 노려 수능에 올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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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호 12면

학교 떠나는 고교생 증가 왜

성북구 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에서 학교 밖 청소년들이 검정고시를 공부하고 있다. 전국 220개 꿈드림센터는 학교 밖 청소년에게 상담, 학습 동아리, 검정고시 강의 등을 지원한다. [사진 성북구 청소년지원센터]

성북구 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에서 학교 밖 청소년들이 검정고시를 공부하고 있다. 전국 220개 꿈드림센터는 학교 밖 청소년에게 상담, 학습 동아리, 검정고시 강의 등을 지원한다. [사진 성북구 청소년지원센터]

고등학교가 겨울방학을 맞이한 지금, 김주형(18)군의 하루는 오전 10시에 시작된다. 김군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집에서 검정고시 인터넷 강의를 켠다. 매일 모든 과목의 강의를 하나씩 듣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오후 6시 무렵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한다. 이후에는 1대1 기타 레슨(화·목)을 받거나, 기타 연습에 매진한다. 오후 10시부터는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며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자정 무렵 잠든다. 방학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그는 지난 10월에 자퇴한 ‘학교 밖 청소년’이다. 학교 밖 청소년은 학교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제적·퇴학 처분을 받았거나, 자퇴한 청소년을 이르는 말이다.

“상위권 아니면 내신 성적 큰 의미없어”

김군이 고등학교 진학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자퇴를 결정한 이유는 내신 성적 때문이다. “성적이 어중간했어요. 상위권이 아닌 이상 내신을 준비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라리 검정고시 점수를 높게 받고 그 점수로 대학에 지원하거나 정시준비를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어요.” 김군은 자퇴 이후 실용음악과 기타 전공으로 진학하기 위해 매일 기타 연습을 병행하며, 검정고시 및 수능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자퇴 결정에 대해 “학교에 다녔으면 매일 오후 4시30분까지 수업을 듣고도 수행평가를 준비하느라 바빴을 텐데 지금은 전공과 관계없는 과목은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그 시간에 기타 연습을 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자퇴 후 검정고시를 응시하는 사례는 김군만의 얘기가 아니다. 학교 정규교육 과정을 이수하는 대신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학교를 떠나는 학생 비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2020학년도(2020년 3월부터 2021년 2월까지)에 자퇴한 고등학생은 1만4140명이다. 이 중 8903명이 ‘기타’ 이유로 자퇴를 선택했다. ‘기타’는 검정고시 준비, 대안 교육, 방송 활동 등 다양한 사유를 포함한다. 통상 검정고시 등 다른 형태로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들은 기타로 분류된다. 자퇴 이유 중 기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3학년도 22.7%에서 2014학년도 36.3%, 2018학년도 50.3%로 지속적으로 상승하다 2020학년도엔 63%에 달했다. 기타 자퇴자는 검정고시로 고졸 학력을 취득한 후 입시 준비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검정고시 점수를 내신으로 환산해 수시 전형에 지원하거나, 정시에 ‘올인’하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접수자 중 ‘검정고시 등 기타’ 수험생 비율은 증가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수능 접수 인원 중 ‘검정고시 등 기타’ 비중은 2018년(1.87%) 이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 11월에 치러진 2022학년도 수능 응시자 50만9821명 중 ‘기타’ 수험생 비율은 전체 응시자의 2.8%(1만4277명)에 달한다. 이는 1996년 이후 27년 만에 최고치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이사는 “고등학교 자퇴 후에 수능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학생과 자퇴 후 정시 준비에 대한 문의가 늘었다”며 “예전에는 자퇴가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였다면 이제는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런 선택이 가능해진 주요 원인은 주요 대학의 정시모집 인원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시모집은 대부분 수능 성적 위주로 선발한다. 27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따르면, 전국 198개 4년제 대학의 전체 모집인원은 34만6553명으로 지난해보다 894명 줄어든 반면, 정시 모집 인원은 8만4175명으로 지난해보다 4102명 늘었다. 특히 고려대, 연세대, 한국외대, 경희대 등 서울 주요 대학이 정시 비중을 대폭 확대했다. 이는 교육부가 발표한 ‘2022학년도 대입개편 방안’과 ‘대입공정성 제고 방안’에 따른 결정이다.

교육부 방침에 따라 대학은 2022학년도부터 수능 위주 정시 전형으로 모집 인원의 30% 이상을 뽑아야 한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과 논술 전형 비중이 45%인 서울 소재 16개 대학은 2023년까지 수능 전형 비중을 40%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이미 11개 대학이 2022학년도 대입부터 정시 비중을 40% 이상으로 확대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수능만 봐서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가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한 이유는 그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며 “만약에 수능 비율이 낮아졌더라면 어떤 상황이더라도 학교에 남으려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2년간 비대면 수업이 보편화하며 학생들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등 공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진 점도 자퇴를 고민하는 원인 중 하나다.  자퇴를 고려하고 있다는 김모(18)씨는 “원격 수업은 실제 수업보다 집중도 안 될뿐더러 선생님이 잠자는 친구, 화면에 얼굴을 안 비추는 친구를 지도하면서 수업하다 보니 더 산만하다”며 “차라리 학원에서 1년 동안 바짝 공부해 대학을 빨리 가는 게 낫지 않나 고민중”이라고 토로했다. 이투스 교육 관계자는 “학원 선발 기준이 있어 문의에 비해 실제 등록생이 많은 건 아니지만, 확실히 코로나19 이전보다 고등학교 자퇴 후 학원 등록에 대한 문의가 2~3배 늘었다”고 말했다.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코로나19 발생 후 2년이 지났으면 선생님들이 원격이든 대면이든 수업과 생활지도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이 굉장히 미흡했다”며 “전면등교가 학습 결손이나 정서 결손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에서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문을 열었을 때 선생님들이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조 대변인은 “첫 해는 몰라도 두 해가 다 되도록 아직도 선생님들이 학교 방역을 위해 신경 쓸 부분이 많아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능이 아닌 자신만의 진로를 준비하는 사례도 있다. 이다은(18)양은 지난 10월에 인문계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검정고시와 함께 제과제빵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이양은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보다는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저에게 맞는 공부를 해서 조금 더 일찍 대학에 가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자퇴를 결심했다”며 “인터넷 강의로 하루 4~5시간씩 검정고시를 공부하고, 1시간씩 제과제빵 자격증 필기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울증 증세로 자퇴한 윤지민(19)양도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윤양은 “자퇴 후 더 행복하게 살고 있고 조울증 증상도 없어졌다”고 밝혔다.

“정시 망치면 다른 방법 없어 큰 압박감”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 후 독학재수학원에서 공부해 서울 주요 사립대학에 합격한 대학생 장모(22)씨는 어떤 이유로든 자퇴는 신중하게 결정할 것을 권고했다. 장씨는 “하나에 올인하면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시를 망치면 다른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압박감이 커졌다”며 “방학 때 자퇴했다고 생각하고 혼자 공부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확실한 목적과 계획을 세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퇴생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고려할 점이다. 정시로 대학에 합격한 장씨 역시 자퇴생임을 밝힌 후 학교 폭력 가해자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던 적이 있다. 특히, 막연히 잘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도피성 자퇴는 금물이다. 도피성 자퇴를 하면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생활이 느슨해지고, 성적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역시 자퇴를 심사숙고할 것을 당부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입시 문제를 빼놓을 수는 없겠지만 학교에서 또래와 어울리며 타인에 대한 배려, 공감, 소통, 갈등 해결력 등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을 기를 수 있다”며 “특히 고등학교 때는 힘든 시기를 함께 보내며 친구를 깊게 사귈 수 있는 시기인 만큼 자퇴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역시 “수능 한 번으로 인생 역전이 가능하고, 명문대 졸업장의 파워가 센 나라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다”면서도 “자퇴를 하면 친구들과 교류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협동하면서 사회성이 발달할 수 없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부득이하게 개인적인 이유로 자퇴를 결정하더라도 청소년 지원센터 등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지속해서 다른 사람과 교류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교 밖 청소년은 지역별 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꿈드림은 개별 상황을 고려해 상담, 교육, 직업체험, 동아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이곳에서 한 활동으로 일부 대학 학생부종합전형도 지원할 수 있다. 이은선 성북구 청소년지원센터장은 “청소년들의 동아리, 프로그램 활동 내용을 생활기록부처럼 작성하고 있다”며 “이번 입시에서도 학생 한 명이 센터 활동 내용으로 학생부종합전형에 지원해 서울내 4년제 대학에 합격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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