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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도 물가 폭등 중…"카자흐 시위 격화에 푸틴도 긴장"

중앙일보

입력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의 시청 근처에 불탄 차량들. 연합뉴스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의 시청 근처에 불탄 차량들. 연합뉴스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된 카자흐스탄에서 군·경찰과 시위대 간에 유혈 충돌이 거세지자 러시아가 지난 6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에 긴급히 공수부대를 투입했다. 미국 CNN 방송과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바짝 긴장한 채 카자흐스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료 가격을 포함한 물가 급등으로 촉발된 카자흐스탄 소요 사태가 러시아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 때문이다.

카자흐 사태, 중앙아 '아랍의 봄' 부를 수도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급등이 도화선이 돼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카자흐스탄 시위는 현재 전국적으로 번져 곳곳에서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7일 AP통신은 이날까지 시위대 중 26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당했으며 300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카자흐스탄 내무부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시위대를 진압하던 경찰 측에서도 사망 18명에 7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시위 진압에는 러시아 등 옛 소련 6개국이 결성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의 평화유지군도 투입됐다. NYT는 평화유지군 가운데 체첸 1~2차 전쟁을 이끌었던 러시아의 악명 높은 최정예 공수부대가 포함됐다고 전했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7일 “대테러 작전이 시작됐다. 시위대가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 진압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카자흐스탄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CNN에 따르면 이미 카자흐스탄의 시위대는 “물가 인하”가 아니라 “정치 자유화”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2019년 취임한 토카예프 대통령 뿐 아니라 그의 전임자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 세력을 몰아내길 원한다. 정국 불안이 확대돼 카자흐스탄 독재 정부가 무너지면 2010년 중동에 확산됐던 ‘아랍의 봄’과 같은 사태가 중앙아시아 일대에 파급될 수 있다. WP는 “특정 국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며 특히 경제 불황이 유사한 러시아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도 물가 폭등…카자흐와 다를 바 없다"

WP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1년 전부터 가격 상한제, 수출 할당량 조정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해왔지만 식품과 주요 필수품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해 10~11월 러시아의 물가 상승률은 8%였다. 카자흐스탄의 연간 물가 상승률은 9%다.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가 지난해 3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58%가 가장 첨예한 사회 문제로 ‘물가 상승’을 꼽았다. WP는 “남쪽 이웃(카자흐스탄)과 러시아의 차이점은 시민들이 아직 거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WP는 카자흐스탄의 이번 시위를 ‘노보체르카스크 사태’에 빗댔다. 1962년 6월 당시 소련 정부가 급작스럽게 우유값 25%, 고기값 35%를 인상하자 노보체르카스크 지역 공장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에 나서면서 “우유와 고기를 달라. 임금을 인상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간이 지나자 시위대는 정부 청사를 급습하고 소련 정치 지도자들의 초상화를 찢는 등 정치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시위대 진압을 위해 크렘린궁에서 군대를 파견했고, 비무장 군중을 향해 발포해 최소 26명이 사망했다. WP는 “물가 상승으로 촉발된 노보체르카스크의 유혈 사태는 소련 지도자를 충격에 빠뜨렸고, 소련 붕괴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면서 “푸틴 역시 야당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의 주머니’가 자신을 끌어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카자흐스탄 사태가 중앙아시아 다른 국가나 러시아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외신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카자흐스탄 사태가 중앙아시아 다른 국가나 러시아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카자흐 시위대, 이미 경제 아닌 "정치자유" 외쳐

유라시아그룹의 수석애널리스트 재커리 위틀린은 “카자흐스탄 시위는 더 이상 경제적인 성격이 아니며, 공공연하게 정치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이 카자흐스탄과 같은 옛 소련 국가들이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민주화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도 러시아에 큰 부담이라고 전했다.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에 참여하는 카자흐스탄 시민들. 연합뉴스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에 참여하는 카자흐스탄 시민들. 연합뉴스

다만 CNN은 “상황이 푸틴에게 마냥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지만은 않다”고 봤다. 위틀린 수석애널리스트는 “현재 카자흐스탄에는 성난 시민들의 마음을 끌어모을 구심점 역할을 맡을만한 야당 지도자가 없다”며 “리더십을 갖추지 못한 시위대는 스스로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러시아의 평화유지군 파병에 대해 “미국과 세계는 (러시아의) 시위진압 과정에서 카자흐스탄에 대한 인권침해나 주요 기관을 점거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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