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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영환의 지방시대

수도권 일극 체제를 ‘3+2 자립권역’으로 재편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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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광주전남·대구경북연구원의 지역발전 제안

3 2 자립 권역 구상도

3 2 자립 권역 구상도

지난 연말 개최된 지방 관련 두 행사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지역 정책 구상을 비교할 좋은 기회였다. 하나는 27일 서울서 열린 한국지방자치대상 시상식이다. 두 후보는 축사에서 국가 균형발전과 지방 자치·분권에 관한 생각을 밝혔다.

이 후보는 “자원이 부족한 시절, 효율성을 위해 수도권과 특정 소수의 기업을 골라 집중적으로 지원한 결과 재벌 체제가 생겨나는 동시에 수도권 1극 체제가 형성됐다”며 “균형발전은 이제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을 위한 핵심 전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 균형발전 전략을 실제로 집행하기 위해선 자치와 분권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지방은 인구 감소로 소멸의 위기를, 수도권은 과밀로 폭발의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지 않으면 국가 미래가 없다”고 강조했다.

호남·TK·부울경 등 남부권 3곳
재정 적극 투입해 자립 다져야

수도권·강원, 충청 등 중부권 2곳
규제완화로 글로벌 경쟁력 제고

정책전환 없으면 지방소멸 가속
균형발전 맡을 부총리 신설해야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정책 비교

박재영 광주전남연구원장

박재영 광주전남연구원장

윤 후보는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문제는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고, 지방소멸 위기까지 현실화하고 있다”며 “기존 정책으론 심화하는 지역 간 불균형을 막기 어렵고, 국가적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책으론 지역 접근성 제고, 재정 권한과 자립도 강화, 지역 특성화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제시했다. 이어 “지역 문제와 해결책은 지역 주민이 제일 잘 안다”며 “중앙정부 권한을 지방으로 많이 이양해 충분한 자율성을 부여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 지역별 특성에 맞는 새 성장동력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 지방소멸의 폐해에 대한 두 후보의 인식은 엇비슷하지만, 해결 방향에선 미묘한 차이가 묻어났다. 이는 다음날 열린 ‘지방소멸대응 특별법안 국회 발의 간담회’에서도 확인됐다. 이 후보는 인사말에서 거듭 “국가의 장기적 성장과 발전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국가 균형발전이 매우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됐다”고 했다. 균형발전을 성장 전략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구상이다. 윤 후보는 “중앙정부의 하향식 계획이 아니라 권한을 지방정부에 더욱 폭넓게 이양해 지방 스스로 발전 전략을 마련하고 경쟁력을 키울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지역 균형발전의 핵심이고 중앙정부의 역할”이라고 했다. 균형 발전과 지방자치 분야에서 여전한 ‘큰 중앙 정부’ ‘작은 지방 정부’의 관행을 깨겠다는 생각이 엿보인다.

이 후보 언급은 지난해 8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발표한 ‘국가균형발전 및 자치분권 공약’을 압축한 것으로, 향후 새 버전이 나올지 궁금하다. 당시 공약은 역대 민주당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의 강화·발전을 내걸고 세종특별자치시와 제주특별자치도 완성, 수도권 공공기관 추가 이전, 자치분권 개헌 등을 제시했다. 윤 후보는 아직 지역 정책에 관한 포괄적 공약을 발표하지 않은 만큼 앞으로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유력 후보가 중심과 주변 관계로 전락한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 해소에 적극적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균형발전은 헌법상 책무이고, 통일 이후 북한 지역 개발 청사진과도 맞물려 있다. 무엇보다 수도권 과밀과 지방 공동화가 빚은 일그러진 국토는 한국병의 하나다. 출생아 수의 급감 구조도 그 파생물이다. 2020년 전국 합계출산율은 0.84명이지만, 서울은 0.64명이다.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서울이나 대도시로 지방 젊은이 유출이 계속되면 출생아 급감의 악순환을 빠져나올 수 없다. 수도권은 비워서 살리고 지방은 채워서 살리는 균형 정책과 더불어 젊은이의 댐 역할을 하는 지방의 매력 도시 조성이 불가결하다는 얘기다. 감염병 팬데믹 시대의 도래는 분산형 사회 구축의 호기이기도 하다.

권역내 거미줄식 공간 재편

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장

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장

지역 현장에선 어떤 청사진을 갖고 있을까. 광주전남연구원과 대구경북연구원이 지난해 말 공동으로 내놓은 3+2 자립형 국토 공간 재편 방안은 흥미롭다. ‘차기 정부의 지역발전 정책 방향’ 보고서를 통해서다. 요체는 호남·제주, 대구경북, 동남권(부산·울산·경남)의 남부권 3곳과 수도권·강원, 충청권의 중부권 2곳을 자립 권역으로 정해 5개 강소국을 만들자는 얘기다. 〈그래픽 참조〉. 남부권은 국가 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살리고, 중부권은 시장 친화적 규제 완화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충청권 행정수도를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수도권 일극(一極) 체제를 다핵(多核) 체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두 연구원은 권역 내 거미줄식 공간 재편도 내놓았다. 권역 내 다수의 도시와 지역이 하나의 거대 도시로 작동하도록 대도시·중소도시·농산어촌 간 기능을 분담하고, 연계를 높이는 전략이다. 도시 간 네트워크로 지방소멸을 헤쳐나가자는 것이다. 남부 3개 권역에는 4차산업 중심의 국가전략산업단지 조성 계획도 담았다. 분권형 광역 시·도 통합과 지역 부총리직 신설 제언도 눈에 띈다. 박재영 광주전남연구원장과 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장을 서면 인터뷰했다.

이번 제언이 역대 정부 정책과 다른 점은.
▶오창균 원장=먼저 실효성 측면에서 지역 자립을 강화하는 접근이라는 점에서 과거 정책과 다르다. 절차 면에서 보면 지역 주도의 국가 균형발전 정책이다(of, by, for the region). 그동안 지역 정책은 하향식 접근이어서 지역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도권 자원의 비수도권 배분 등 시혜적 정책으로 지역 주도의 자립적 발전 노력도 부족했다. 이번 보고서는 경쟁력 약화와 지방소멸 위기에 내몰린 비수도권 싱크탱크와 다수 학자가 고민 끝에 낸 결과물이다. 정책 수립 주체와 관점의 전환이 차별화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지역 주권 도입과 지역 부총리 신설 제안 배경은.
▶박재영 원장=지역 주권적 중앙-지방 관계는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가 해당 지역 문제 해결에 독립적 의사결정권을 갖는 것을 말한다. 그런 만큼 지역 주권은 자치 분권형 국가의 핵심 요소다. 지역 부총리 제도는 자치 분권과 균형발전을 책임지고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자치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있지만, 실질적 권한과 역할은 제한적이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역 부총리를 겸임해 자치 분권을 선도하고, 지역발전 정책을 책임지고 수행할 필요가 있다.

행정통합 논의 단계적 추진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은 행정통합에 적극적이었는데 현재 상황은.
▶오 원장=대구경북은 광역 행정통합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민간 중심의 공론화위원회를 2020년 9월 출범시켰다. 지방소멸 위기 극복과 수도권 집중 대응, 균형발전 견인,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였다. 행정통합 논의는 현재 잠정 보류된 상태다. 위원회가 지난해 시·도민 의견을 바탕으로 “올해 지방선거 이후 행정통합을 재논의하자”고 건의한 데 대해 시·도가 수용하면서다. 앞으로 1단계 ‘(가칭) 대구경북광역협력추진단’ 설치, 2단계 ‘(가칭) 대구경북특별지방자치단체’ 설립·운용, 3단계 ‘대구경북특별광역시’ 체제의 단계적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박 원장=광주전남연구원이 광주시와 전남도와 협약을 체결해 행정통합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올해 2월과 5월에 중간보고를 할 예정이다. 연구 내용은 광주전남의 상생발전 협력, 경제통합, 행정통합, 공론화, 시·도민 의견조사 등 크게 다섯 가지다. 부산·울산·경남 특별지방자치단체가 올해 상반기에 출범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당초 계획보다 앞서 광주전남의 초광역 협력 방안을 내놓을 생각이다.

차기 정부의 지역 정책과 관련한 제언이 있다면.
▶오 원장=지난 15년간 정부 예산 15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국토 양극화 해소는 요원하고 지방소멸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역 정책의 대전환이 없으면 수도권은 과밀 혼잡과 부동산 대란, 지방은 대도시 침체와 소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역의 자립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대타협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수도권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인식을 비수도권이 공유하고, 비수도권 자립적 발전의 발판 마련을 위해 정부 재정은 비수도권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대타협이 절실하다.

▶박 원장=국가재정 투입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제도는 경제성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비수도권 지역은 경제성만으로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면 안 된다. 예컨대 호남선 KTX는 수요가 없다는 이유로 경부선보다 11년이나 늦은 2015년에 오송∼광주송정 구간이 개통됐다. 이후 여객 수요는 타당성 분석 때의 예상을 뛰어넘어 매일 만석을 이루고 있다. 비수도권 지역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사업도 있는 만큼 전면적인 개혁이 시급하다. 지역 간 과다 경쟁을 유발하고, 비수도권에 매우 불리한 정부의 공모사업 선정 방식도 대폭 개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