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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탈모를 건보에? 이재명 포퓰리즘 멈춰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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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탈모치료제 건보 적용'을 공약했다. [유튜브 캡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탈모치료제 건보 적용'을 공약했다. [유튜브 캡처]

암 환자도 최신 치료제 건보 적용 못 받는데

우선순위 안 따지고, 표만 의식해 약속 남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건보)을 적용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탈모인 커뮤니티에서 호응이 잇따르자 민주당은 신났다. ‘이재명은 심는 겁니다’라는 영상을 만들어 홍보에 열을 올린다. 탈모인이 1000만 명에 달하고, 캐스팅보트인 2030 세대에도 탈모를 걱정하는 이가 많다고 하니 ‘대박’을 터뜨렸다고 여기는 듯하다.

현재 탈모 치료제로 허가가 난 성분은 두 가지인데, 전립샘 치료제로 쓰이던 성분이다. 약값 부담 때문에 많은 탈모 환자가 전립샘 치료용으로 고용량 약을 처방받아 쪼개 먹는 불법이 일어나고 있다. 탈모 스트레스가 크니 건보 적용을 해줄 수만 있다면 뭐가 문제이겠나. 하지만 건보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건보 대상 확대는 우선순위를 잘 따져야 한다.

건보 재정적자 때문에 암 환자조차 최신 항암제 치료 때 엄청난 의료비를 감당하고 있다. 바뀐 신포괄수가제에 따라 올해부터 신규 암 환자는 2군 항암제 치료 때 본인부담률이 크게 늘어난다. 3세대 면역항암제로 치료받으려면 1회 500만원씩, 3주에 한 번을 맞아야 한다. 이러니 현장 의사들이 “돈 없으면 죽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인 상황을 모르고 탈모에 건보를 적용한다고 하느냐”고 반발하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추계에 따르면 2023년 건보 부채비율은 132%로 급증할 전망이다. ‘문재인 케어’로 보장성 항목이 늘어난 데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로 건보 진료비는 계속 늘 수밖에 없다. 2030년 노인 1인당 의료비는 760만원으로, 2015년의 두 배가량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임플란트 건보 적용 확대 공약도 검토 중이라며 한술 더 뜨고 있다.

선거철마다 정치권은 표가 된다 싶으면 지르고 보는 포퓰리즘 구태를 보여 왔다. ‘모(毛)퓰리즘’ ‘치(齒)퓰리즘’ 논란을 낳고 있는 이 후보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 그러다 보니 말 바꾸기도 비일비재하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내걸었다가 비판을 받자 “국민 동의를 받지 못하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설 연휴 전 전 국민 재난지원금 얘기를 꺼냈다가 어제는 “당장은 심각한 소상공인 문제에 집중하자”고 했는데, 진의를 알 수 없다. 국토보유세에 대해서도 국민 동의를 전제로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하겠다는 건지, 안 하겠다는 건지 모를 일이다.

사탕발림 공약을 남발하면서 재정 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국가를 운영해 보겠다는 리더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대선후보들은 재원 마련 방안은 말하지 않는다. 납세 인구는 주는데 혜택을 늘리려면 증세가 불가피하지만 그걸 말하면 표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국민을 속일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선 안 된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