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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의 빈 자리, 중국 춘절 닥치면 더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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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 생활용품을 주로 미국에 수출하는 중소기업 G사는 요즘 배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이번 주에는 약속한 물량을 보내지 못했다. G사 관계자는 6일 “이달에 65대의 컨테이너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나마 정부 지원으로 10대 잡은 게 고작”이라며 답답해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2017년)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국적 선사가 얼마 없는 게 문제”라며 “중국에서 출발해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배는 중국 화주들의 횡포로 이미 약속된 물량도 한국에선 안 실어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해운운임이 치솟으면서 기업들은 해결책을 찾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글로벌 해운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해 12월 31일 사상 최고치인 5046.66을 기록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공식 선언한 시점(911.85·2020년 3월 13일)의 5배가 넘는다. SCFI는 세계 15개 주요 노선의 운임을 종합한 것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운임이 비싸다는 뜻이다.

특히 미국 서안의 항만은 여전히 꽉 막혀 있다. 항만노조 근로시간 계약 문제와 인력·장비 부족 등이 겹쳤다. 해운조사기관인 씨-인텔리전스는 “미국 서안의 항만 적체는 전 세계 선대 공급의 약 12%가 사라진 것과 같은 영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세계 3위 선사(CMA-CGM)가 사라진 것과 맞먹는 규모다.

치솟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

치솟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점이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글로벌 물류 적체 현상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라며 “항공운송 수요도 급증해 현재는 미국·유럽 등 주요국으로 운송 여력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춘절(설·2월 1일) 전후 중국 회사들이 장기 휴무에 들어가면 물류난은 더 심해질 수 있다.

이에 무역협회는 ‘긴급 수출물류 지원사업’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행 중이다. 국내 대기업·물류기업이 중소기업 등의 해상·항공 물류를 십시일반 지원하는 것이다.

한 예로 포스코와 현대글로비스는 중소기업의 벌크 화물을 각각 포스코 소유 선박, 자동차전용선에 합적·운송하기로 했다. 대한항공도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향하는 항공기에 중소기업 전용 화물 공간(3t)을 주 2회 제공한다. 해운사도 나섰다. SM상선은 매주 부산항에서 LA 롱비치항으로 가는 정기선박에 중소기업 전용 선복(선적 공간) 30TEU(길이 20피트, 약 6m 표준 컨테이너)를 지원한다. 고려해운은 동남아로 향하는 정기선박에 선복 120TEU를 지원한다. HMM은 3개월 장기운송 계약을 체결한 중소기업에 항차별 100TEU의 선복을 제공하고, 밸류링크유도 미국 서안으로 주 1회 6FEU(40피트 컨테이너 6개)의 중소기업 전용 선복을 지원한다.

하지만 이 정도론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다. 수출입·물류업계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해양수산부에 해운운임 지원 강화, 선적 공간 확보, 장기운송 계약 확대 등을 요청한 이유다. 이에 정부는 중소 화주 전용 선복량을 확대하고 월 4척 이상 임시 선박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정호상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최근 대만 선사인 에버그린은 어마어마한 이익이 나서 직원들에게 월급의 4000%를 성과급으로 지급해 화제였는데, 우리도 한진해운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며 “정부는 임시 지원보다는 중장기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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