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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디즈니 부러워하던 김정주의 상상, 현실이 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블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엔드게임’ 등을 연출한 루소 형제(왼쪽부터 앤소니, 조 루소). [사진 AGBO]

마블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엔드게임’ 등을 연출한 루소 형제(왼쪽부터 앤소니, 조 루소). [사진 AGBO]

한국의 디즈니를 꿈꾸던 넥슨 김정주 창업자의 상상은 현실이 될까. 넥슨이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를 연출한 루소 형제의 영화 제작사에 최대 6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무슨 일이야

넥슨은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 있는 AGBO 스튜디오에 4억 달러(4794억원) 규모 전략적 투자를 진행한다고 6일 밝혔다. 이번 투자로 넥슨은 AGBO지분 38% 이상을 확보한다. 이 회사 경영진을 제외하고는 두 번째로 지분이 많은 단일 투자자다. 올 상반기 중 최대 1억 달러(1198억원)도 추가 투자한다. 오웬 마호니 넥슨 대표이사는 “AGBO와 넥슨은 다양한 플랫폼과 시장을 아우르는 콘텐트로 전 세계 고객을 감동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오웬 마호니 넥슨 대표이사. [사진 넥슨]

오웬 마호니 넥슨 대표이사. [사진 넥슨]

AGBO와 넥슨에 무슨 일이

AGBO는 안소니 루소, 조 루소 형제 감독이 2017년 LA에 설립한 스튜디오다. 루소 형제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등 마블의 최고 흥행작을 연출한 감독. 넷플릭스 인기 영화 ‘익스트랙션’ 등도 제작했고, 현재 넷플릭스·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애플TV+ 등 OTT와 극장용 디지털 콘텐트를 두루 제작한다. AGBO는 지난해 30대 한인인 앨버트 김을 지식재산(IP) 개발 부사장으로 선임하기도 했다.

● 디즈니 출신 IP 전문가가 주도: 이번 투자는 지난해 7월 넥슨이 영입한 닉 반 다이크 최고전략책임자(CSO) 겸 수석 부사장이 이끄는 넥슨 필름&텔레비전(Film and Television) 조직이 주도했다. 다이크 부사장은 월트 디즈니에서 10년 간 일한 글로벌 IP 비즈니스 전문가다.
● 공통점은 가상세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다이크 부사장은 지난해 여름 LA의 호텔 벨에어에서 AGBO 최고경영자(CEO) 제이슨 벅스맨을 만나 거래 논의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에픽게임즈의 언리얼엔진 같은 기술을 사용해 몰입형 가상 세계를 만드는 비전에 대해 양측이 공감했고 이번 투자로 이어졌다.
●게임+프랜차이즈 영화의 결합: AGBO 공동 창업자 겸 회장인 루소 형제는 “프랜차이즈 영화와 게임의 융합을 전 세계적인 영향권으로 넓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며 “이번 협업을 통해 직원들은 미래 스토리텔링 분야에서 남다른 역량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AGBO는 크리스 햄스워스가 출연한 넷플릭스 영화 익스트랙션을 만들었고 익스트랙션2를 제작중이다.[사진 AGBO]

AGBO는 크리스 햄스워스가 출연한 넷플릭스 영화 익스트랙션을 만들었고 익스트랙션2를 제작중이다.[사진 AGBO]

넥슨은 왜?

2019년 김정주 창업자의 매각 시도가 무산된 후 넥슨은 가상세계에 집중했다. 규모 있는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가상 세계를 만들고, 기반을 미래형 플랫폼으로 확장하고, 넥슨이 보유한 IP 자원을 키우겠다는 의미. 지난 3년간 가상세계 구축에 한장 한장 벽돌을 쌓은 넥슨이 AGBO의 손을 잡은 건, 주춧돌을 찾아낸 수준의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넥슨의 전략을 뜯어보니.

① 게임IP→영화·드라마·굿즈: 국내 매출 1위 게임사인 넥슨은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를 비롯해 최근 V4에 이르기까지 많은 IP를 축적했다. 하지만 IP의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AGBO와 협업은 게임에 국한된 넥슨 IP를 종합 엔터테인먼트로 격상할 기회. AGBO를 창업한 루소 형제는 수십년 전 만화책 마블 IP를 영상화해 대형 프랜차이즈 IP로 재창조한 주역이다. 투자 발표후 닉 반 다이크 넥슨 CSO는 “게임 IP 기반 영화와 TV 콘텐트는 이용자 참여도를 높이고, 게임의 라이프 사이클을 연장하는 효과를 증명해낸 바 있다”며 “AGBO와 함께 글로벌 이용자들에게 게임, 영화, TV, 상품 판매 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돼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넥슨의 주요 지식재산. [사진 넥슨 IR보고서]

넥슨의 주요 지식재산. [사진 넥슨 IR보고서]

② 가상 세계 핵심도 IP: 메타버스가 대세가 된 시대지만 만들어 놓는다고 다 잘되는건 아니다.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한 핵심은 재미. 재미를 담보하기 위해선 인기 IP가 필수다. 지난해 넥슨이 해즈브로, 반다이남코, 코나미, 세가 등 미국·일본의 유력 엔터테인먼트 기업 4곳에 8억7400만 달러(9870억원)를 투자한 것도 같은 맥락의 일. 때마침 AGBO도 IP를 영화·드라마 외 가상세계로 확장하려했기에 두 회사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AGBO 조 루소 감독은 WSJ과의 인터뷰에서 “자녀들 취향을 보니 영화관이 그들에게 주된 오락의 원천이 아니었다”며 “비디오 게임 회사와 협업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③ 할리우드 파트너 확보:  상호작용적인 게임과 일방향적인 영화·드라마는 문법이 다르다. 성공한 게임 IP로 만든 영화·드라마의 실패담이 차고 넘치는 이유. 넥슨은 직접 영상을 만들기보단 유능한 파트너를 찾는 전략을 택했다. 2020년 월트디즈니 최고전략책임자였던 케빈 메이어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지난해 닉 반 다이크 수석 부사장을 영입한 것은 게임의 영화화에 적절한 파트너를 찾기 위한 기초작업이었던 셈.

앞으로는

김정주 넥슨 창업자. [사진 NXC]

김정주 넥슨 창업자. [사진 NXC]

김정주 넥슨 창업자는 오래 전부터 디즈니 같은 글로벌 IP 회사를 만들고 싶어했다. 2015년 한 인터뷰에선 “디즈니가 부러운건 아이들을 쥐어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며 “아이들과 부모들이 스스로 돈을 싸 들고 와서 한참 줄 서서 기다리며 디즈니 콘텐트를 즐긴다”고 말하기도. 이번 AGBO 투자가 넥슨의 오랜 꿈에 이를 징검다리가 될까. 지켜봐야할 포인트는.

아시아IP, 한계 넘을까 : 현재까지 넥슨이 성공시킨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등의 IP는 국내와 중국 등 아시아권에선 큰 인기다. 하지만 북미와 유럽 등 서구권에선 낯설다.
게임 IP 확장, 모두의 꿈 : 인기 IP에서 미래를 찾는 게임사들이 넥슨 말고도 많다. 배틀그라운드 개발사 크래프톤, 크로스파이어와 로스트 아크 개발사인 스마일게이트도 영화·드라마를 제작했고 일부 좋은 성과도 거두고 있다. 국내 게임사 한 관계자는 “넥슨 IP가 글로벌에서 얼마나 통할지는 실제 성과를 두고 봐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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