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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1200원 시대…수출 ‘양날의 칼’, 수입 물가 비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달러값 1200원대 시대가 열렸다.

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가 업무를 보고 있다. 뉴스1

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가 업무를 보고 있다. 뉴스1

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4.1원 내린(환율은 상승) 1201원에 마감했다. 불과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에도 장중 1200원 선을 뚫은 적이 있지만 외환 당국의 경계감은 그때와 차원이 다르다. 단발성이 아니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어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눌러도 눌러도 다시 떠오르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5일(현지시간) 공개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이 결정적 한 방 역할을 했다. 시중에 풀린 달러를 회수하고 기준금리 인상 시점도 당길 수 있다는 문구가 담겼기 때문이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15년째 이어졌던 유동성 파티가 드디어 끝나간다는 신호다.

한층 빨라진 미국의 긴축 시계만 문제가 아니다. 여전한 국외 투자 수요, 수출보다 더 빨리 늘고 있는 수입, 수출기업의 달러 보유 선호 등 원화가치를 더 끌어내릴 요인은 한가득이다. 원화가치 추가 하락 전망에 따른 외국인 투자 자금 유출이 외환시장 불안을 더 가중시키는 ‘악순환’도 우려된다.

외환당국 외환 순거래액.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외환당국 외환 순거래액.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기재부와 한국은행이 지난해 3분기(7~9월) 순매도한 외환은 71억4200만 달러(약 8조6000억원)에 이른다. 원화가치가 치솟는 걸 막으려 추가로 시장에 푼 달러 규모를 뜻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외환시장 불안이 극에 달했던 2020년 1분기(58억5100만 달러)보다도 많았다. 지난해 4분기 이후에도 이런 기조가 이어졌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날도 외환 당국은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환율 1200원대 진입을 막지 못했다. 이억원 기재부 제1차관은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브리핑에서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에 따라 대외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시장 동향을 보다 면밀히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할 생각”이라며 “시장의 쏠림이라든지 급격한 변동성 확대가 발생할 경우에는 시장 안정 노력을 강화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환율 못지않게 금리도 요동치는 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공약한 25조~30조원 추가경정예산이 안 그래도 불안한 채권시장에 기름을 부었다. 수십조 적자 국채를 추가 발행(국가채무 증가)해 재원을 충당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 때문이다.

수입 금액 지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수입 금액 지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거시 경제 불안도 커지고 있다. ‘낮은 원화가치=수출 호조’는 옛말이다. 복잡하게 얽힌 공급망 구조 때문이다. 해외에서 원자재를 사들여서 가공해 수출하거나, 중간재를 국외로 넘긴 다음 현지에서 완성품을 만들어 직접 공급하는 방식이 국내 수출 제조기업 사이에 자리 잡았다.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그만큼 비싼 돈을 주고 원자재 등을 사와야 한다. 원화값이 하락하면 국산품 가격 경쟁력이 올라 수출에 긍정적이라는 단순한 공식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선진국의 유동성 흡수에 따른 신흥국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오히려 수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입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 불안도 위험 요소다. 원자재가 상승, 공급망 교란 등으로 이미 고공행진 중인 국내 물가를 더 자극할 변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액 증가율(전년 동월 대비 37.4%)은 수출액 증가율(18.3%)을 넘어섰다. 이로 인해 무역수지는 20개월 만에 처음으로 5억9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하는 등 이상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지난해 11월 수입 금액 지수는 전년 대비 42.8% 뛰어오르는 등 이미 비상 상황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연합뉴스

다만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의 조기 긴축이) 실물 경기에 미치는 충격은 제한적이며 유동성 모멘텀(동력)에만 일부 타격이 예상된다”이라고 평가했다.

상반기 고비를 지나면 외환시장이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허진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채시장에서는 경기, 인플레이션(고물가), 정책 요인 모두에서 금리 상승 압력이 지속할 전망”이라면서도 “하반기로 갈수록 미국의 성장률 둔화, 인플레이션 압력 완화, 그리고 신흥국 경기 모멘텀 개선 등이 반영되면서, 달러화는 주요국 통화 대비 완만한 약세 전환이 예상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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