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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카자흐 시위 배후에 미국 있다"…미국 "미친 주장"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시위대가 경찰차에 불을 지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5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시위대가 경찰차에 불을 지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을 포함한 물가 급등에 반발해 카자흐스탄 국민 수천 명이 대규모 시위에 나선 것에 대해, 러시아 일부 언론이 “미국이 선동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 논란이 일고 있다. 백악관은 “미친 주장(crazy claims)”이라고 일축했지만, 내주 예정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회담을 앞두고 양국 간 긴장 국면이 고조되고 있다.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러시아의 일부 미디어와 비평가들은 “카자흐스탄에서 전국 규모의 시위가 촉발된 것은 다음 주 진행되는 러시아와 미국,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간 릴레이 회담을 앞두고 러시아의 주의력을 흩뜨리기 위한 외부 세력의 선동”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섰다. 외부 세력으로는 미국을 지목했다.

NYT “시위대, 물가 아닌 독재에 분노” 

현재 카자흐스탄은 수천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부 청사를 습격하고 경찰차에 불을 지르는 등 대혼란에 휩싸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위가 과격해지면서 경찰과 시위대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진압대원 8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 진압을 위해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평화유지군이 조만간 파견될 예정이다.

카자흐스탄의 이번 시위의 도화선은 연료비 급등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오랜 기간 독재정권 치하에서 억눌린 분노와 소수 정치·경제 엘리트에게 부가 집중된 부패한 사회 시스템에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실제로 카자흐스탄의 시위대는 “연료비와 물가를 낮춰달라”는 구호뿐 아니라 “대통령 선거권을 달라”고 외쳤다. 소셜미디어에는 알마티 인근 탈디코르간에서 시위대가 초대 대통령인 나자르바예프의 동상을 철거하려는 모습이 공유됐다.

지난 5일 카자흐스탄 시위대가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동상을 끌어내리고 있다. [트위터]

지난 5일 카자흐스탄 시위대가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동상을 끌어내리고 있다. [트위터]

시위대 분노가 표출한 나자르바예프는 소련 붕괴 직후인 1991년부터 2019년까지 장기집권했다. 통치 기간에는 반대파를 모두 제거하고 석유를 포함한 천연자원을 이용해 개인적 치부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퇴임 전 자신을 안보평의회 종신 의장으로 임명해 지금까지 국부(國父) 지위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퇴임 당시 현 대통령인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을 후계자를 직접 지명했다.

러시아 “미국 선동” 주장, 백악관 “완전한 거짓”

이번 시위에 외부 세력이 개입됐다는 주장은 토카예프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이번 시위를 ‘테러’로, 시위대를 ‘테러분자’라고 규정했다. 이어 “카자흐스탄은 외국에서 철저히 훈련받은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은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는 “미국 배후설”을 제기했다. FT는 “러시아의 일부 언론과 비평가들이 ‘지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가 있는) 서쪽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할 때인데, (미국이) 카자흐스탄을 선동해 동쪽을 불안하게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이번 시위를 '테러'로, 시위디는 '외국에서 훈련된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연합뉴스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이번 시위를 '테러'로, 시위디는 '외국에서 훈련된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연합뉴스

백악관은 “미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미국은 카자흐스탄의 시위대가 평화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당국은 침착하게 시위대를 진정시킬 것을 당부한다”며 “미국이 배후라는 러시아 일각의 미친 주장은 완전한 거짓(absolutely false)이며, 러시아가 수년 전부터 반복해온 가짜 정보 플레이의 일부임을 분명히 전달한다”고 말했다.

외신 “미국 배후설은 러시아의 전략”

외신은 러시아가 카자흐스탄 소요 사태에 ‘미국 배후설’을 제기한 이유는 내주부터 이어지는 미국‧유럽과의 회담에서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한 전략적 행보라고 분석했다. 협상을 앞두고 러시아가 유리하게 쓸만한 카드를 최대한 끌어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러시아는 15일째 야말에서 유럽으로 가는 가스 공급을 차단해 유럽의 가스 가격을 지난해 1월보다 5배 이상 올려놓은 상태다. 카자흐스탄 시위 사태도 미국과 서방의 책임으로 돌려 러시아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러시아와 국경 맞댄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러시아와 국경 맞댄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맞댄 서쪽 국경에 10만 병력을 집결시킨 채, 나토의 동진을 금지하는 법적 확약을 해달라고 미국과 나토에 요구 중이다. 반면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강력하고 단호한 제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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