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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조총 이긴 활…조선 선비에 무너진 사무라이 왜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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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117)

임진왜란이 나자 곽재우(郭再祐‧1552~1617)는 의병을 일으켜 경남 의령군 의령읍 정암진에 지휘본부를 두었다. 호남으로 진출하는 전략적 요충지 낙동강을 지키기 위해서다. 파죽지세로 한양을 점령한 왜군은 군량미 조달을 위해 곡창지대 전라도를 호시탐탐 노렸다. 이순신의 활약으로 바닷길이 막히자 왜군 정예부대 2000명은 의령과 남원을 거쳐 전주로 침입할 계획이었다. 홍의장군 곽재우는 왜군이 전라도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정암진 나루터를 건널 수밖에 없다는 걸 간파하고 있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전투가 벌어진다. 정암진 전투 상황은 실학자 이덕무의 『홍의장군전』에 결정적 순간이 기록되어 있다.

경남 의령군 의병박물관에 세워진 곽재우 장군의 동상. [사진 의병박물관]

경남 의령군 의병박물관에 세워진 곽재우 장군의 동상. [사진 의병박물관]

“왜장 안고쿠지 에케이(安國寺惠瓊)가 전라도로 간다면서 곧바로 정암진에 이르렀으나 진창 때문에 행군할 수 없었다. 이에 조선인 포로를 시켜 얕고 단단한 곳에 깃발을 세우고 다음 날 아침 도하하려고 했다. 곽재우는 이를 염탐하고 한밤중에 왜군 깃발을 뽑아 진창 속에 꽂아 놓은 다음 복병을 깔아 놓고 기다렸다. 적은 진창 속에 빠졌다. 이때 복병을 일으켜 적을 궤멸시켰다.

이윽고 적의 후속 부대가 밀려오니 곽재우는 수하 병력이 적어 맞설 수 없음을 헤아리고, 힘세고 키 큰 사람 10여 명을 뽑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붉은 전포를 입히고 백마를 타게 한 뒤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 하늘에서 내려온 붉은 옷을 입은 장군)’이라 쓴 깃발을 세운 다음 나누어 산골 깊숙한 곳을 지키게 했다.

곽재우 의병이 대승을 거둔 임진왜란 정암진 전투의 상상도. [사진 의병박물관]

곽재우 의병이 대승을 거둔 임진왜란 정암진 전투의 상상도. [사진 의병박물관]

곽재우가 먼저 적진을 습격해 유인하니 적은 전군을 총동원해 추격한다. 조총은 총탄을 비 오듯 쏟아 내지만 곽재우를 끝내 맞추지 못했다. 흰 말을 탄 홍의장군은 수목 사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난다. 적은 놀라고 의심한다. 홍의장군이 신으로 여겨져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때였다. 곽재우는 드디어 숲속에서 나와 어지럽게 활을 쏘아 적을 전멸시켰다.”

남명 조식의 제자 곽재우는 신출귀몰하며 적의 혼을 빼놓았다. 왜군은 홍의장군의 전략 전술을 알지 못하고 달려들다가 큰 희생만 치르고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곽재우가 빗발치는 조총의 총탄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조총의 사거리와 재장전 시간 등을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오히려 활의 장점을 확신하며 이렇게 말했다.

경남 의령군 의병박물관에 전시 중인 장검과 말 안장, 갓끈 등 곽재우 장군의 유품. [사진 의병박물관]

경남 의령군 의병박물관에 전시 중인 장검과 말 안장, 갓끈 등 곽재우 장군의 유품. [사진 의병박물관]

“왜적이 믿는 것은 장검과 철환뿐이다. 화약은 반드시 떨어질 것이고 저렇게 쏘아대는데 철환이 보급되지 않으면 적의 정실(情實. 실제)을 가히 알 수 있다. 장검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두어 걸음 앞에서 맞붙어야 휘두를 수 있지만 강궁경노(强弓勁弩. 강하고 튼튼한 활)야 어찌 기다려 쏴야 하겠는가. 이런 이치로 헤아리면 우리 군사 한 명이 오히려 저들 백 명을 감당할 수 있고, 우리 군사 백 명이면 저들 일천 명을 당해낼 수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구지산에 자리 잡은 곽재우 장군의 묘소. 장군의 유언에 따라 봉분은 낮고 조촐한 게 특징이다. [사진 송의호]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구지산에 자리 잡은 곽재우 장군의 묘소. 장군의 유언에 따라 봉분은 낮고 조촐한 게 특징이다. [사진 송의호]

곽재우는 신병기 조총을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 재장전에 걸리는 시간 등을 분석해 그 약점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암진 전투는 바다에서 이순신이 이룩한 전공에 못지않게 곡창지대 호남을 지킨 임진왜란의 역사적인 승전이었다. 또 선비가 앞장선 의병은 사무라이 왜군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쟁의 변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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