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년 인터뷰] 이창용 IMF 국장 "재정 여력 있으니 더 써도 된다? 부작용 간과한 무책임한 주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이창용 IMF 아태국장

이창용 IMF 아태국장

“2040년보다 더 빠른 시점에 국가부채비율이 100%를 넘어설 수도 있다. 재정 여력이 있으니 더 써도 된다는 주장은 앞으로 몇 년 뒤에는 하기 힘들 것이다.”

IMF 아태국장의 쓴소리 #"시장금리 올라가 민간투자 위축 # 경제위기 때 대처 힘들어져"

이창용(사진)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한국의 국가부채비율이 2030년 75%, 2040년 104%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2020년). 이 국장은 예산정책처의 전망보다 더 빨리 국가부채비율이 100%를 넘어설 것으로 봤다. 코로나19처럼 큰 위기가 올 때 반드시 써야 하는 재량적 지출 증가를 예산정책처는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국장은 “국가부채비율 40%를 마지노선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지나치게 경직적이지만 미국·일본처럼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비율이 100% 가깝게 단기간에 급증해도 아무런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부채가 급증하는 가운데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했고 이탈리아는 줄곧 국가부도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며 “우리도 선진국이 됐으니 국가부채를 크게 늘려도 문제없다는 주장은 너무 안이해 보인다”고 했다.

이 국장은 세계경제의 위협 요인으로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 미국 금리 상승의 파급 효과, 미·중 갈등 악화, 중국 경제의 둔화세를 꼽았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아시아에서 금융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아시아 경제의 회복세를 둔화시킬 수는 있다고 분석했다.

이창용 “매년 세수 0.5%씩 10년간 늘려 복지재원 쓰자” 

지난해 연말 미국 워싱턴 국제통화기금(IMF)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이창용 국장.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새해 들어 IMF 직원들도 대부분 다시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이 국장은 요즘 포퓰리즘 관련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고 했다. [사진 이광조]

지난해 연말 미국 워싱턴 국제통화기금(IMF)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이창용 국장.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새해 들어 IMF 직원들도 대부분 다시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이 국장은 요즘 포퓰리즘 관련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고 했다. [사진 이광조]

한국의 재정 여력은 충분한가. 국가부채의 급증세는 지속 가능한 건가.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의 생각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00%를 넘어서는 시기가 국내 전망보다 빨리 올 수 있다. 미국을 제외하면 선진국조차 국가부채 급증으로 고생했다. 부채비율이 높아져도 한국이 괜찮을지는 우리가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이 판단할 것이다.’ 지난 연말과 연초 두 차례에 걸쳐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이 국장과 화상으로 만났다.

2022년 세계경제가 궁금하다.
“IMF는 지난해 10월 세계경제가 2021년 5.9%, 2022년 4.9%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최근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지고 물가가 높아져 주요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되감고 있다. 1월 중순 발표될 전망치는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전망치도 낮출 것 같다.”
중국 경제는 어떤가.  
"지난해 10월 IMF는 올해 중국 성장률을 5.6%로 예상했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 성장세가 눈에 띄게 둔화돼 이달에 전망치를 상당 폭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경기 둔화가 심화될 경우 중국 경제가 5%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 의지에 달려 있다. 성장률 유지를 위해 재정·통화정책 기조를 완화할 수 있지만 그 경우 부채비율을 낮추려는 중장기 목표가 희생될 것이다.”  

새해 세계 경제전망

IMF, 경제성장률 4.9% 예상했지만

오미크론 확산에 전망치 낮출 듯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개도국에 충격을 줄까.
“아직 단정하기 이르다. 2013년 긴축발작(Taper Tantrum) 시기에 비하면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시장과 투명하게 소통하고 있고 경상수지, 외환보유액에서 아시아 개도국들의 상황도 나아졌기에 미국의 금리 인상이 아시아에서 금융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아시아 부채가 크게 증가한 것은 새로운 불안 요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만 해도 전 세계 부채의 23% 정도였던 아시아 부채는 최근 37%까지 증가했다. 급증한 부채비율을 고려할 때 국제금리 인상이 아시아 경제 회복세를 둔화시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IMF 2022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

IMF 2022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

한국도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재정을 많이 투입해 부채비율이 증가했다. 한국의 재정 여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2020년 말 미국과 일본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각각 128%와 247%인 반면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이 45% 정도이니 재정 여력이 있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 더 길게 보면 사정이 녹록지 않다. 국회예산정책처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부채 비율은 2030년 75%, 2040년 104%로 급증한다. 복지정책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더라도 급격한 고령화로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장성 기금 지출이 급증해 재정적자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전망은 앞으로 코로나 사태처럼 큰 위기가 다시 찾아왔을 때 자영업자 손실보상금과 같이 불가피하게 허용해야 하는 재량적 지출 증가를 고려하지 않은 숫자다. 이를 고려하면 2040년보다 더 빠른 시점에 국가부채 비율이 100%를 넘어설 수도 있다. 재정 여력이 있으니 더 써도 된다는 주장은 앞으로 몇 년 뒤에는 하기 힘들 것이다.”

국내 재정 상황

코로나 대응 과정서 재정 지출 급증

국가부채비율 100% 지점 빨라질 것

고령화 추세 등을 감안하면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급속도로 증가한다는 얘기는 별로 새롭지 않다. 과거 재정당국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던 국가부채 비율 40% 마지노선은 이제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국가부채 비율을 선진국은 60%, 개도국은 50% 이하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 왔다. 이론적 근거는 약하지만 과거 국가부도 사례를 통해 얻은 경험 법칙 중 하나였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선진국 국가부채 비율이 100% 넘는 수준으로 크게 증가하면서 적어도 선진국에 관한 한 이 준칙이 유명무실하게 됐었다. 높아진 국가채무 비율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의 양적 팽창 정책으로 이자율이 낮아져 정부의 이자 부담이 감소하자 적정 부채비율이 높아졌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선진국 금리가 크게 낮아진 현실을 반영해 모든 국가에 적용될 수 있는 공통된 기준을 찾기보다 개별 국가 상황을 반영해 적정 국가부채 비율을 찾으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상황에 적용해 보면 국가부채 비율 40%를 마지노선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지나치게 경직적이지만 미국·일본처럼 우리나라 국가부채 비율이 100% 가깝게 단기간에 급증해도 아무런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 주장하는 것도 무책임해 보인다.”

국가부채 증가 위험성

선진국 됐으니 빚 늘려도 문제없다?

이탈리아는 국가부도 위기 시달려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이 100%를 넘으면 생길 수 있는 위험은.
“국가부채가 빠르게 늘어나면 발행 이자율이 높아져 정부의 이자 지급 부담이 커진다. 은행·증권사·보험사·연기금 등이 신인도와 유동성이 높은 국채를 우선적으로 인수하겠지만, 그만큼 주식이나 회사채 매입이 줄어들어 시장 이자율이 상승하고 민간투자가 구축된다. 이러한 구축효과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진국처럼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주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중앙은행은 파산 위험이 없으니 매입한 국채를 탕감해 주면 어떠냐는 극단적 견해까지 나왔다. 그러나 중앙은행을 동원해 국채를 매입하면 유동성 증가로 인플레이션 및 부동산 가격 상승, 환율 평가절하 등 다른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 또 국가부채 비율이 높아지면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이 큰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정부의 대처 능력이 제한돼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줄 것이다. 민간 금융기관의 국채 보유량이 크게 늘어났을 때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 민간 금융기관의 건전성도 동시에 하락해 위기를 상호 증폭시킬 수 있다.”
중요한 문제다. 더 설명해 달라.
“미국의 국가부채 비율은 2010년 50% 수준에서 2020년 128%로 급격히 증가했지만 큰 부작용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보유한 특권 때문에 국채 발행이 늘어나도 투자자를 찾는 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이탈리아도 국제화된 통화를 보유한 선진국이지만 미국만큼의 특권을 누리지 못했다. 국가부채가 급증하는 가운데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했고, 이탈리아는 줄곧 국가부도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보면 우리도 선진국이 됐으니 국가부채를 크게 늘려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너무 안이해 보인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이 60~70% 이상으로 빠르게 증가할 때 국제금융시장이 한국을 미국·일본과 같이 취급해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 아니면 OECD 국가이긴 하지만 기축통화를 보유하지 못한 터키·멕시코와 같은 그룹이라 생각해 투자 자금을 회수할지가 더 중요한 문제다.”

한국의 갈 길

재정 지출 우선순위 명확히 하고  

부동산 잡으려 조세 동원 말아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나누어준 재난지원금을 처음부터 자영업자에 대한 손실보상금으로 선별해 사용했다면 같은 재정적자로도 더 효율적으로 위기 대응을 했을 것이다. 둘째, 중장기적으로 세수 증대에 대한 합의가 불가피하다. 현재 우리의 복지 수준이 선진국 평균에 비해 높은 편이 아니기에 복지지출은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 따라서 부채비율 증가 속도를 조절하려면 GDP 대비 23% 수준인 총수입 비중을 선진국 평균 수준인 30% 정도로까지 늘리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어느 정부도 세금 증가가 가져올 정치적 부담을 지려 하지 않을 것이니 그 부담을 미래로 분산시키기 위해 앞으로 10년간 매년 GDP 대비 0.5%씩 세수(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장기여금 포함)를 증가시키고 이를 복지지출 재원으로 연계시키는 방안을 제안해 본다.”
회의적이다. 유력 후보들이 연금개혁과 같이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공약은 내걸지 않는다.
“쉬운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도 10년이 넘는 논란 끝에 2014년에야 부가가치세 인상에 합의했다. 세수 증가 없이 국가부채 비율을 100% 이하로 관리하기는 어렵다. 특정 정부의 부담이 되지 않게 세수 증가를 다년에 걸쳐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아파트 가격이 안정되고 있다는 지표가 나오고 있다.
“특정 지역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고 거시경제 전체에 영향을 주는 조세·금리 정책을 동원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부동산 세제는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접근하고 부동산 정책은 서민주택의 안정적 공급이 주목적임을 명확히 해야만 이념이나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지역 균형발전과 다양성 강화를 위한 교육정책이지만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제안이 있다. 전국 주요 대학, 특히 수도권 소재 대학이 신입생을 선발할 때 비수도권 지역 출신 인재들을 일정 수준 이상 확보하도록 의무화하는 정책이다. 자녀 교육을 위해 수도권으로 이주하려는 수요가 줄고 오히려 유명 대학에 가기 위해 지방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려는 유인도 생겨 지방경제 활성화와 지방 명문고 부활도 기대할 수 있다. 서울 집값을 안정시키는 데도 종부세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이창용 IMF 국장

1960년생.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교수를 하다가 2008년 관료로 변신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G20 기획조정단장을 지냈다. ADB 수석이코노미스트로 3년간 일하고, 2014년 IMF로 옮겨 8년째 일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