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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정초의 일본 풍물…100년 역사 대학생 역전 경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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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64)

1월 2일과 3일에 ‘하고네 에키덴(箱根駅伝)’이라 불리는 대학생 역전 경주 ‘도쿄 하코네 간 왕복 대학 역전 경주(東京箱根間往復大学駅伝競走)’가 개최되었다. 정월 연휴에 펼쳐지는 풍물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쿄 오테마치에 있는 골인지점. [사진 니혼테레비 캡처]

도쿄 오테마치에 있는 골인지점. [사진 니혼테레비 캡처]

올해로 98회째다. 1920년에 시작되어 전쟁 때를 빼곤 죽 이어져 온 경기다. 도쿄의 오테마치(大手町)에서 출발해 가나가와현(神奈川県) 하코네(箱根)에 있는 아시노호수(芦ノ湖)까지 217.1km를 열 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이틀에 걸쳐 왕복한다. 시드권을 가진 10개의 대학과 예선을 통과한 10개의 대학, 총 20개의 대학이 출전한다.

첫날 다섯 개의 구간, 두 번째 날 다섯 개 구간이다. 첫날은 보지 못했고 3일 도쿄로 돌아오는 구간을 시청했다. 코로나 관계로 응원은 집에서 해달라는 당부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응원객들로 붐볐다. 100년을 넘기고 있는 경기다. 코스 주변에 사는 사람이라면 잠깐 나가서 응원해주고 싶은 심정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특히 지금 일본은 코로나 제5파라 불리는 위기 상황에서 벗어난 후, 감염자가 적어 잠잠한 상황이다. 그래서 가능한 일이지 싶다. 우승 행가레도 허가되었다.

처음 역전 경주를 봤을 때는 생중계로 이틀씩이나 대여섯 시간씩 투자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달리는 것일 뿐인데 뭐가 재밌는 거지 했다. 그 시간에 영화라도 한 편 보여주지.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역전 경주 방송이 켜져 있으면 빨려들 듯이 보기 시작했고, 지금은 꼭 보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한 한 보려 한다.

니혼바시 풍경. [사진 니혼테레비 캡처]

니혼바시 풍경. [사진 니혼테레비 캡처]

일 년에 단 한 번. 이날을 위해 전국 대학의 팀은 훈련한다. 역전 경주에서는 ‘다스키’라는 바통 대신 어깨에 두르는 휘장을 사용한다. 10명의 선수가 10개의 구간을 달리는 릴레이 경주이다. 다음 선수에게 다스키를 넘겨주는 것이 완주의 필수 요건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넘겨주지 못하면, 구간 완주를 기다리지 않고 다음 구간 선수가 출발하게 된다. 다음 선수가 뛸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완주로 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다스키를 잇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역전 경주의 목표는 대학마다 다르다. 끊이지 않고 다스키를 이어서 완주하는 게 목표인 대학, 시드권 안(10위 안)에 드는 것이 목표인 대학. 물론 최종 목표는 우승이지만 제각각의 목표가 있다. 예선에서 떨어져 출전을 못 하는 대학도 많기 때문이다.

역전 경주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은 미우라 시온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를 읽고부터이다. ‘하고네 에키덴’ 출전을 다룬 소설이다. 역전 경주에 대한 선수들의 로망과 심정, 피나는 노력을 조금은 알게 되어서인지 선수들 한 명 한 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스토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하고네 에키넨' 출전을 다룬 책 〈바람이 불고 있다〉. [사진 북폴리오]

'하고네 에키넨' 출전을 다룬 책 〈바람이 불고 있다〉. [사진 북폴리오]

2022년 우승팀은 아오야마가쿠인 대학(青山学院大学)이다. 강한 팀이다. 2021년은 고마자와(駒沢) 대학에게 우승을 빼았겼다. 아오야마가쿠인 대학이 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최강이라 불리는 팀이 지는 걸 보며 역전 경주의 재미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고마자와 대학은 3위였다. 상위권이니 전 우승자로서의 위상은 지킨 셈이다.

1, 2, 3 위가 정해지면 다음은 어느 대학이 10위 안에 들어서 시드권을 획득할 것인가에 관심이 쏟아진다. 시드권 안에 들면 다음 해에 예선을 치르지 않고 역전 경주에 진출할 수 있다. 추오(中央) 대학이 10년 만에 획득했다. 선수들이 골인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보낸다.

자 다음은 완주하는 선수들을 응원할 차례다. 기다리는 팀원들이 수고했다고 위로한다. 시드권을 놓친 팀의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스키를 잇지 못한 두 대학 선수들이 들어온다. ‘울지 마’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역전 경주를 보며 처음으로, 마지막에 들어온 선수와 그 팀원들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꼈다. 아무도 축하해 주지 않는 쓸쓸한 골인. 맞아주는 것은 팀원들뿐이다. 마지막 선수는 울 것 같다. 그러나 팀원들이 잘했다고 울지 말라고 등을 두드린다. 완벽하게 다스키를 잇는 팀이 되기 위해, 언젠가는 10위 안에 드는 팀이 되기 위해, 오늘의 속상함과 눈물은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번에 인상 깊었던 것은 다스키를 잇지 못하고 마지막 그룹으로 들어온 한 선수가 한 말이었다. “아 즐거웠다”. 이 한마디에 역전 경주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처음으로 출전한 대학의 선수였다. 하고네 에키덴의 코스를 달려보고 싶다는 꿈. 달리고 싶다는 목표. 드디어 출전해 달렸을 때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작업을 해야 하는데도 뒷전으로 미루고 역전 선수들의 분투를 지켜보지 않을 수 없는 지경까지 온 나. 이제 팬이라 해도 되겠다. 내일부터 한동안 우승팀 감독과 선수들이 텔레비전을 장식할 거다. 우승으로 이끈 비화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겠지. 그리고 2023년 제99회 대회를 향해 훈련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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