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서른셋, 아파도 병원 갈 수 없던 그녀…미소천사 세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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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요? 한 번도 안 가봤어요.”

서른세 살 윤세나 씨는 지금껏 혼자 병원에 가본 적이 없다. 건강해서가 아니다. 발달 장애가 있는 세나 씨는 한글을 겨우 읽고 쓴다. 수많은 진료과 이름도 낯설다. 최근에 아픈 곳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한참 머뭇거리다가 겨우 답을 뱉었다.

“코, 코, 코가 아파요.” 

콧물이 난 건지, 피가 난 건지, 간지러운지 등을 하나씩 묻고서야 겨우 감기에 걸렸던 모양이라고 유추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발달 장애인이 아픔을 제때 말하지 못해 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은 자주 벌어진다. 몇 년 전 복통으로 응급실에 간 중증 지적장애인이 증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수술 때를 놓쳐 사망한 사례도 있다.

발달 장애인 70%, 아파도 병원 못 가 

그래픽 남채린 PD

그래픽 남채린 PD

발달 장애인이 병원에 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말하는 게 어려워서’다.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발달 장애인 통합적 복지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정책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발달 장애 자녀가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에도 못 갔다고 답한 부모가 74.3%에 달했다. 그 원인으로는 “자녀가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어서”가 34%로 가장 많았다. 의사소통의 문제가 이들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있다.

세나 씨처럼 발달 장애나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들을 '느린 학습자'라고 한다. 대웅제약과 피치마켓이 진행하는 ‘참지마요’는 질병의 심각성을 모르거나 아픔을 표현하지 못하는 느린 학습자를 돕는 사회 공헌 활동이다.

질병표현을 돕는'참지마요' 의사소통 그림책. 대웅제약 제공

질병표현을 돕는'참지마요' 의사소통 그림책. 대웅제약 제공

대학생 멘토와 느린 학습자 멘티는 짝을 이뤄 4개월 간 의사·약사와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든 쉬운 글로 된 책과 AAC(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Card, 보완대체 의사소통 카드) 학습자료를 함께 읽는다. ‘참지마요’에는 2019년 시작해 2021년까지 총 1000여명이 참여했다. 지난해엔 코로나 탓에 주1회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중앙일보는 참가자 가운데 두 팀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 미니 다큐멘터리 ‘아프다고 말해요’를 제작했다.  

병원이 어려운 세나 씨의 홀로서기  

윤세나 씨가 충남 부여장애인복지관에서 원격으로 참지마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윤세나 씨가 충남 부여장애인복지관에서 원격으로 참지마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세나 씨의 짝꿍 대학생 최민지(22) 씨는 ‘느린 학습자’라는 말에 끌려 프로젝트에 지원했다.

“느리지만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담긴 따뜻한 말이잖아요. 어릴 적 장애인 친구 도우미로 활동하면서 이를 느낀 적이 있어요. 이들의 성장을 돕고 싶었어요. ”

비록 온라인으로 만났지만 둘은 금세 가까워졌다. 느린 학습자의 눈높이에 맞춰 제작된 그림책이 한몫했다. 동물·음식·취미 등을 그림으로 나타낸 활동지로 수다를 떨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아픔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본격적인 활동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참지마요 온라인 활동을 하고 있는 윤세나 씨와 박민지 씨.

참지마요 온라인 활동을 하고 있는 윤세나 씨와 박민지 씨.

세나 씨는 코피 나는 그림을 고르라고 하자 재채기하는 그림을 골랐다. 비뇨기과나 이비인후과 등 병원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조급해지면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는 그는 어려운 질문이 나오면 숨을 헐떡이며 울상을 짓기도 했다.

“그동안 세나 씨에게 병원의 문턱이 얼마나 높았을지 느껴졌어요. 무엇보다도 앞으로 혼자 있을 때 아프면 어쩌지 걱정이 커요.”
민지 씨의 고민도 깊어갔다. 4개월간 이어진 멘토링. 민지 씨는 마지막 활동을 앞두고 세나 씨를 직접 만나 특별한 미션을 전달했다.

1년에 700번 의료쇼핑에 빠진 덕문 씨  

박덕문 씨가 하룻동안 방문하는 병원과 약국 목록을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박덕문 씨가 하룻동안 방문하는 병원과 약국 목록을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참지마요’의 또 다른 참여자 박덕문(28) 씨는 반대로 병원을 너무 많이 가서 문제다. 덕문 씨에게 병원은 “의료쇼핑하는 곳”이다. 1년 동안 그가 병원에 간 횟수는 700여회에 달한다.

“아픈 데는 없고요. 아침 첫차를 타고 한의원부터 가고 (오후) 5시 돼야 하루가 끝이 나요.”

덕문 씨는 병원에 가는 날이면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분 단위로 스케줄을 짜고 뛰어다닌다. 지난 10월, 취재진이 동행한 날도 한의원·이비인후과·정형외과·피부과·약국까지 총 15군데를 빠짐없이 돌았다. 한의원에 가서는 “시간이 없으니 부항과 침만 놔달라”고 말했다. 약국에서 받은 약만 한 아름. 그는 “집에 약이 있지만 이건 다 알아서 먹을 것”이라고 했다.

병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건강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는 왜 병원에 집착하는 것일까. 간호대학에 재학 중인 멘토 임혜진(24) 씨가 나섰다. 덕문 씨는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자세한 이야기는 영상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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