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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다 썩었다…1300만명이 갇혀 덜덜" 제2의 우한일기 충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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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코로나19 확산으로 보름째 봉쇄 중인 중국 산시성 시안의 신청구의 한 어린이가 핵산 검사를 받으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4일 코로나19 확산으로 보름째 봉쇄 중인 중국 산시성 시안의 신청구의 한 어린이가 핵산 검사를 받으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오늘 밤 나는 아버지를 잃은 그 소녀에게 관심을 두고, 눈물 흘리며 낯선 방역 요원을 찾던 젊은 산모에게 관심을 쏟으라고 당국에 말하고 싶습니다. 굴욕당하고 상처받고 무시당한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은 원래 이런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4일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의 독립기자 장쉐(江雪)가 자신의 웨이신(微信·중국판 카카오톡)에 올린 ‘장안십일(長安十日, 장안은 시안의 옛 이름)’의 한 대목이다. ‘장안십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보름째 봉쇄 중인 1300만 인구 시안의 참상을 담았다. 지난해 12월 23일부터 3일까지 작성된 일기체 형식의 글은 SNS에서 ‘제2의 우한일기’로 불리며 화제가 되고 있다.

장 기자는 봉쇄령 발포 직전 지인으로부터 생필품을 사두라는 권유를 듣고 심각한 사태를 예감했다고 적었다.

“당시에는 ‘도시봉쇄’가 급박하게,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생각 못했다. (…) 그날 밤 집 앞에서 가로막힌 사람, 수퍼마켓에서 사재기하던 사람, 임산부, 환자, 대학원 수험생, 건설 노동자, 도시 부랑자, 시안을 지나가던 여행자 모두 이번 봉쇄가 가져올 재난을 과소평가했다.”

그는 “봉쇄 닷새 만에 ‘이틀마다 한 차례 외출해 장보기’가 폐기됐다”며 “출입 금지엔 예외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400명이 가입한 주택 단지 단체대화방에 젊은이가 ‘일주일째 컵라면만 먹고 있다. 입이 다 썩어간다. 라면 두 봉지만 남았다’고 말한다. 다른 한 명은 ‘생필품도 식량도 남지 않았다’고 외친다.”

장 기자는 “가장 비참한 곳은 낙후한 동네, 성중촌(재건축 직전의 철거 대상), 건설현장 등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의 사람들”이라며 “평소 직장에 출근하던 젊은이도 봉쇄 후 끼니 해결이 가장 어려운 사람 중 하나가 됐다”고 우려했다. 그는 “평소에 밥을 하지 않고 취사도구도 없이 사무실에서 지내던 사람들이 바깥 식당은 문을 닫고 배달도 멈춘 데다가 문밖에도 못 나간다”고 덧붙였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두려워하는 밑바닥 민심도 가감 없이 적었다.

“새해가 다가오자 내가 사는 단지 가가호호 봉인을 붙였다. 최신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르면 확진자가 발생하면 주민 모두를 별도 시설로 옮겨 코호트 격리한다고 들었다. (…) 단톡방 주민 모두가 부들부들 떨고 있다. 12월 31일 한밤중에 아파트 단지 전체가 별도 시설로 옮겨 격리된 미자차오(糜家橋) 단지가 우리 집 근처다.”

“이 도시에 ‘일시 멈춤’ 버튼을 누른 사람, 손에 권력을 쥔 사람이 과연 도시에 사는 1300만 명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 봤을까? 이 일이 하늘보다 더 큰 일이 아니면 과연 달리 어떤 일이 있을 수 있나.”

지난 2015년 독립매체 설방(雪訪)을의 수석기자 장쉐가 난징대학교에서 개최한 ‘명기자 강당’에 참석해 자신의 취재 경험담을 말하고 있다. [난징대 신문학원 사이트 캡처]

지난 2015년 독립매체 설방(雪訪)을의 수석기자 장쉐가 난징대학교에서 개최한 ‘명기자 강당’에 참석해 자신의 취재 경험담을 말하고 있다. [난징대 신문학원 사이트 캡처]

“바이러스로 죽지 않으면 사망이 아니다”

“1월 3일, 또 하루가 지나자 단톡방 사람들은 ‘드디어 또 하루를 지켜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렇게 ‘태평성세’를 살고 있다.”

‘장안십일’의 마지막 날인 3일 기록은 이렇게 시작했다. 이어 심장병으로 아버지를 잃은 소녀의 사연을 적어 내려갔다.

“정오경 인터넷에 퍼진 ‘태양화화화(太陽花花花)’라는 소녀의 소식을 봤다. 소녀 아버지의 심장병이 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으로 이송했다. 병원은 ‘중위험’ 단지에서 왔다는 이유로 접수를 거부했다. 간신히 남았지만 몇 시간을 허비했다. 수술을 해야 했을 시간이다. 결국 손도 못 쓰고 돌아가셨다.…나는 샤오훙수(小紅書, SNS 기반 쇼핑몰)에서 아버지를 잃은 소녀를 찾았다. 기회가 있다면 소녀를 안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겪은 고난은 마땅히 기록해야 한다고, 헛된 경험이 되어선 안 된다고.…”

하지만 장 기자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3일 저녁 소녀의 이야기는 검열로 삭제됐다. 장 기자는 삭제되기 전 보았던 한 네티즌의 댓글을 기록했다.

“이런 엉터리 도시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지 않으면 사망으로 여기지 않는다.”

지난 2008년 쓰촨 원촨 지진 현장을 찾아 주민들을 취재하는 장쉐(江雪) 기자. [난징대 신문학원 사이트 캡처]

지난 2008년 쓰촨 원촨 지진 현장을 찾아 주민들을 취재하는 장쉐(江雪) 기자. [난징대 신문학원 사이트 캡처]

“시안은 승리할 수밖에 없다”

장 기자는 ‘장안십일’ 마지막 단락 제목을 “시안은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붙이고 이렇게 썼다.

“예전에 잘 알고 지내던 친구가 쓴 ‘제로 코로나가 좋다. 시안은 승리할 수밖에 없다. 다른 선택은 없다. 물러날 길도 없다’는 글을 봤다. 허풍이고, 상투어이자 빈말이다. 비슷하게 ‘우리는 모든 대가를 바쳐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우리’일까 아니면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일까 우리는 반드시 생각해봐야 한다.”

“사실은 이미 무척 분명하다. 며칠간 ‘음식 판매난’이 계속된다. 본질은 사람이 만든 재난(人爲災難)이다. 시안에 물자 부족은 없었다.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보낼 물류의 어려움일 뿐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티몰(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 징둥(京東, 중국 2위의 인터넷 쇼핑몰) 등 강대한 물류 시스템이 있다. 정부는 왜 사용하지 않나. 스스로 총명해서 자기가 문 앞까지 음식을 배달하라는 것인가?”라는 한 네티즌의 지적을 인용하며 당국 대처를 꼬집었다.

장쉐 기자는 산시성의 유력지인 화상보(華商報)의 탐사팀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지난 2002년 자신의 집에서 음란물을 보던 부부를 경찰이 무단 침입해 체포한 직권 남용 사건을 고발해 2003년 중국중앙방송(CC-TV)이 수여한 8대 풍운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의 신문사 간섭이 강화되면서 탐사팀이 폐지되면서 평론실(한국의 논설위원실)로 자리를 옮겼다. 평론실 역시 민주나 법제관련 글을 쓰지 못하게 되자 그는 2014년 탐사 보도 전문 매체 차이신(財新)으로 이직했다. 이후 독립해서 ‘설방(雪訪)’이라는 독립 매체를 창간하고 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 우파로 몰려 수난당했던 인물들의 삶을 추적 보도하기도 했다.

장 기자는 “눈으로 본 사실을 기록하고 싶을 뿐”이라며 “다행스럽게 아직 (당국으로부터) 경고를 받지 않았다”며 “(시안의) 봉쇄 상황을 계속 기록하겠다”고 말했다고 홍콩 명보가 5일 보도했다.

중국의 한 네티즌은 “우한은 팡팡(方方·67, 본명 왕팡·汪芳)을 배출했고, 시안은 장쉐를 발견했다”고 적었다. 장 기자의 ‘장안십기’를 2년 전 코로나19로 봉쇄된 우한(武漢)의 참상을 기록했던 작가 팡팡의 『우한일기』 속편에 비유하면서다.

다른 네티즌은 장 기자를 당(唐)나라의 시인 유종원(柳宗元)의 명시 ‘강설(江雪)’로 묘사했다. “온 산에 새 날지 않고/온 길에 사람 발자취 없는데/외로운 배엔 도롱이에 삿갓 쓴 노인/홀로 낚시질하는데 차가운 강엔 눈이 내린다(千山鳥飛絶, 萬徑人踪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한편 중국 보건당국인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5일 시안에 이어 저장성 닝보(寧波) 일부 지역도 코로나19 확산으로 봉쇄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전날 중국 본토에서는 시안 35명, 허난성 4명, 저장성 2명 등 총 4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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