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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에 칼 빼든 공정위, 그늘집은 죄가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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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골프장 코스 중간에 마련된 그늘집. 요즘은 대부분 무인점포로 운영된다. 성호준 기자

골프장 코스 중간에 마련된 그늘집. 요즘은 대부분 무인점포로 운영된다. 성호준 기자

골프장의 그늘집은 존재 이유가 있었다. 국내 골프장을 포함, 20세기 후반까지 대부분의 골프 코스는 1번 홀에서 출발해 멀리 떨어진 9번 홀을 찍고 클럽하우스로 되돌아오는 루트였다. 아직도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 등 클래식 코스는 이런 원 웨이(one way)다. 예전엔 카트가 없으니 걸어야 했고, 냉장 용기도 부족해 음식이 상할 수 있으므로 중간에 간이 식당이 필요했다.

미국 골프장에는 스낵바나 맥주 등의 음료와 핫도그 같은 음식을 실은 이동 카트를 운영한다.

국내에선 코스 중간 간이 식당을 일본식으로 매점이라고 부르다 1960년대부터 그늘집이라는 용어가 보편화했다.

1990년대를 기점으로 인-아웃 시스템 코스가 늘었다. 9번 홀이 클럽하우스 옆에 있고, 1번 홀과 10번 홀에서 동시에 출발한다. 골프장의 수입 증대를 위해서였다.

4일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업무계획으로 “골프장 표준약관에 그늘집과 경기보조원(캐디)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약관상 불공정 조항을 시정하겠다”고 했다.

코로나 특수에 편승해 골프장 이용료가 많이 올랐다. 다들 어려운데 골프장이 폭리를 취한다는 원성이 높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정위 정책이 제대로 된 진단을 토대로 한 것인지 갸웃하게 된다.

요즘 그늘집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인건비 건지기도 힘들어 대부분 문을 닫았거나 무인점포로 운영된다. 가격이 비싸 외면 받은 게 가장 큰 이유다. 인-아웃 시스템인데다 카트를 타니 걸을 때만큼 배가 고프지도 않다. 요즘 그늘집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건 화장실뿐이다.

공정위는 클럽하우스 내 식당 혹은 스타트하우스와 그늘집을 혼동한 것 같다. 공정위의 말실수를 꼬투리 잡으려는 게 아니다. 클럽하우스 식당도 철퇴를 맞을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클럽하우스 식당이 매우 비싼 건 사실이지만, 요즘 강매는 거의 없다. 골프장 손님이 모자랄 때는 단체팀에 그린피를 대폭 할인해주고 대신 클럽하우스 식당을 이용하게 했다. 부킹 난이라 요즘엔 단체팀이 없다.

공정위가 주장한 캐디 선택제도 필요하다. 그러나 일괄적으로 강제하기는 어렵다. 카트 운전은 자동차 운전과는 다르다. 산악지형이 많은 코스에선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다.

규제해야할 대상은 카트비다. 골프장들은 2000만원에 불과한 카트를 슈퍼카 가격에 빌려준다. 독점을 활용한 배짱 장사로 수많은 불공정이 있을 거다.

1991년 8월 본지엔 ‘정부는 사치·낭비풍조로 비판받고 있는 골프장 운영방법을 고쳐 골프장 캐디제를 폐지키로 했다. 또 중간휴게소(그늘집)도 대폭 축소, 자판기로 대체키로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31년이 지나 비슷한 대책이 나왔다. 공통점은 둘 다 실효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다른 점은 당시엔 그늘집 등이 뭔지 제대로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실태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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