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선판 난데없는 탈모논쟁…“건보 지원” “그러면 재정파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 공약’ 논란이 거세다. 그동안 미용 영역으로 간주돼 건보 영역 밖의 비급여 대상으로 분류돼 온 터라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야당에서는 “이럴 거면 쌍꺼풀 수술도 보험을 적용한다고 해라. 포퓰리즘의 전형”이라고 비판한다.

이재명 “신체 완전성 측면서 접근해야”  

이 후보는 5일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국가비전·국민통합위원회(비전위) 회의 후 탈모 건보 적용 질문을 받고 “진지하게 접근하면 좋겠다. 신체의 완전성이란 측면에서 건보 대상이 돼야 한다고 본다”며 “탈모는 재정적 부담 때문에 건보료를 다 납부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지원해 주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앞서 디시인사이드·탈모갤러리 등에서 반응이 뜨겁자 “이재명을 뽑는다고요? 이재명은 심는 겁니다”라는 영상을 올렸고 5일 오후에는 ‘청년 탈모 비상대책위원회 초청 간담회’를 열었다. 치료약뿐 아니라 모발 이식도 검토 대상이다. 7일께 공약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탈모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질환으로 올라있다. 원형·안드로겐 등의 네 가지 유형이 있고 병적인 경우에 한해 건보를 적용한다. 2020년 건보 적용 환자가 23만여 명(진료비 387억원)이고, 원형탈모증이 73%다. 남성형 탈모(안드로겐 탈모, 일명 대머리) 등의 일반적인 탈모(기능성 탈모) 환자는 극히 일부만 건보가 적용된다. 민주당은 전체 탈모 인구를 1000만 명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통계는 없다. 23만 명 중 2030이 40%를 차지한다.

연령별 탈모질환 진료 현황(2020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연령별 탈모질환 진료 현황(2020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은 탈모 치료를 업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경우로 간주해 비급여 대상으로 못 박고 있다. 딸기코·점·여드름 치료, 발기부전·쌍꺼풀수술·코성형수술·지방흡인·주름제거·치과교정 등도 마찬가지다. 일반적 탈모 치료에 공공보험을 적용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 현 정부 초기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청년 탈모 보험 적용을 추진하다가 이런 이유로 없던 일이 됐다.

탈모 치료제는 건보가 안 돼 석 달에 14만~16만원(프로페시아 기준), 모발 이식 2000모당 300만~500만원을 부담한다. 의사 출신 신현영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국민이 환호하는 건 탈모가 단순 미용 목적이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으로 봐달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탈모 당사자의 스트레스를 감안하면 치료약에 건보 적용을 검토해볼 때가 됐다. 모발 이식은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탈모 치료는 미용인데, 성형·미용은 건강보험 원리에 안 맞다. 공동체의 돈(보험료와 세금)을 급하고 필요한 질환에 쓰는 게 대원칙인데 무차별적으로 주겠다는 게 정의로운 거냐”고 지적했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건보 적용 여부는 정치인이 아니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복지부 산하 기구)에서 결정하는 건데, 공약으로 내는 그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했다. 서영준(충남대병원 피부과 교수) 대한피부과학회 보험이사는 “탈모는 질환과 미용의 경계선에 있다. 생명을 다투거나 삶의 질에 큰 문제가 되는 질환에 건보가 먼저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 “생명 다투는 질병 지원이 우선”

박은철(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보건바이오의료분과 위원장)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탈모를 급여화하면 우선순위의 대원칙이 어그러지는 것”이라며 “이 후보 논리라면 보톡스 시술, 성형수술, 지방흡인술, 쌍꺼풀, 유방확대술에도 보험을 적용해야 하나”라고 지적했다.

탈모질환 진료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탈모질환 진료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은 5일 논평에서 “4년 전 문재인 케어 때도 단순노화·남성형 탈모는 급여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탈모인들이 엄청난 관심을 보이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가 보다. 이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치다. 건보 재정 상황을 안다면 쉽게 꺼내지도, 추진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는 5일 SNS에서 이재명 후보를 비판했다. 안 후보는 “(이 후보가) 표를 찾아다니는 데는 재능이 있어 보이지만, 국정을 책임지려는 입장에서는 해결 방법이 건보 적용밖에 없을까”라며 “곧 고갈될 건보 재정은 어디서 만들어 오겠느냐. 결국 건보료 대폭 인상밖에 더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안 후보는 “과거 탈모는 유전적 요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환경이나 각종 스트레스 등 비유전적 요인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이제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만 건보 적용만이 해답이 아니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문재인 케어로 건보 재정이 2018년 적자로 돌아섰고, 문 정부 들어 보험료 인상률이 세 배 가까운 2.7%가 됐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렇게 올라도 2024년 누적 적립금이 고갈될 것이라는데 이 후보가 이 돈을 해결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안 후보는 탈모약 프로페시아(1정당 1800~2000원)의 첫 카피약 모나드의 가격을 대폭 낮추고(1정당 1500원→600~800원), 탈모 관련 연구개발 지원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