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강제접종 밀어붙인 탓” vs “법원이 방역정책 심사”…방역패스 논쟁 가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미접종자 보호’ 명분으로 밀어붙였던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가 법원 제동(효력 정지 처분)으로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방역패스는 등장부터 형평성·차별 논란을 불렀는데, 미접종자 손을 들어준 법원의 첫 판단을 계기로 향후 정책 추진 동력이 약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법원 결정에 불복했지만 일정 부분 정책 보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종로학원 강북본원에서 관계자가 방역패스 관련 안내문을 떼고 있다. 뉴스1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종로학원 강북본원에서 관계자가 방역패스 관련 안내문을 떼고 있다. 뉴스1

즉시항고 정부 “방역패스 1차적 대응”

5일 정부는 전날 학원과 독서실, 스터디 카페 등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을 중단하라는 법원의 결정에 대해 즉시 항고하겠다고 밝히며 방역패스가 중요한 대응 수단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방역패스는 중증화, 사망 위험이 큰 미접종자 감염을 최소화해 보호하는 것”이라며 “방역패스 확대가 1차적인 (방역)대응 전략”이라고 말했다.

미접종자가 접종 완료자보다 중증화율은 5배, 치명률은 4배 높은 걸 근거로 들며 미접종자를 의료체계 압박 요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손 반장은 “미접종자는 18세 이상의 6%에 불과한 소수지만 지난 8주간 12세 이상 확진자의 30%를 차지한다”며 “중환자실 절반 이상을 미접종자 치료에 할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역패스에) 사회적으로 거부 움직임이 크다면 별다른 유행 통제 장치가 없게 되는 결과라 굉장히 곤혹스럽다”고도 토로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는 강력하지만 일상과 경제활동을 크게 제약하는 만큼 국소적 방역 조치인 방역패스를 확대하는 전략이 합리적, 과학적 방법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해외서도 방역패스 확대”

손 반장은 해외 사례를 들어 “유럽, 미국, 아시아 등 일상회복 과정에서 위기를 맞이한 거의 모든 국가가 1차 대응전략으로 방역패스를 대폭 확대한다”고도 밝혔다. 프랑스24 등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에서는 방역패스 발급 대상에 음성 확인자는 제외하고 코로나에 감염된 뒤 회복했거나 백신을 접종한 이들만 인정하는 식으로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처음 직장 내 패스를 의무화한 나라기도 하다. 오스트리아는 패스와 별도로 2월부터 접종 거부자에 과태료를 물리기로 해 사실상 백신 접종을 강제할 계획이다.

해외 백신패스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해외 백신패스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부는 백신의 감염 예방 효과를 57%로 제시하며 미접종자, 접종자의 감염 확률 차이가 기본권을 제한할 정도로 크지 않다는 법원 판단에 대해서도 적극 반박했다. 손 반장은 “(예방 효과는) 60~65% 수준을 왔다 갔다 한다. 미접종자가 100명 정도 감염되는 상황에서 접종 완료자들은 40명 내외 정도 감염된다는 것”이라며 “방역당국과 이쪽 분야 전문가들 입장에선 굉장히 큰 차이고, R 값(감염재상산지수)에 방역패스와 거리두기 등의 조치를 조합해내면 충분히 유행을 감소시킬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부 정책 수정 불가피 

기본권 제약 문제에 대해서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PCR(유전자증폭) 음성확진자 같은 예외조항이나 불가피한 사유의 접종 불가자들, 18세 이하 등의 예외를 설정해 운영하고 있다”고도 해명했다. 예외 대상이 협소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도 했다. 정부는 이날 소송대리인을 통해 집행정지 사건을 심리한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에 즉시항고장을 제출했다. 손영래 반장은 “본안 소송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5일 오후 수원시 권선구의 한 무인 스터디카페에 한 이용객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후 수원시 권선구의 한 무인 스터디카페에 한 이용객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항고심에서 재판부 판단이 뒤집히기는 어렵고 일부 정책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동찬 의료법 전문 변호사(더프렌즈 법률사무소)는 “누가 봐도 정당하다면 가처분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라며 “방역패스 자체가 문제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익적으로 예방 효과가 있는지를 정부가 입증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방역패스 강제력이 약하게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당·정·청은 현재 마스크를 쓰는 실내의 경우 방역패스를 예외로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건당국은 “방역패스의 확대 필요성에 대해서는 브리핑에서 충분히 설명했다”며 “관련 내용을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방역패스 적용 시설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방역패스 적용 시설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낙인찍기식 전략에 경종”

방역 전문가들은 법원 결정에 대해 “법원이 방역정책의 최종 심사 권한을 갖게 됐다”(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의학적, 과학적 관점 이해가 부족하다”(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고 비판했다. 정재훈 교수는 “전문가와 당국의 청소년 백신 접종 권고는 개인 건강 관점에서도 명백한 이득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독서실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대화, 식사할 일이 없어 위험도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며 “교회 등 종교시설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 걸 충분한 소통 없이 강행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간 소수 비판은 정당하다는 식의 ‘낙인찍기’를 방역의 주요 전략으로 채택해왔는데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욱 단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는 “기존 예방접종은 강제하지 않는데 기존 백신보다 장기적인 안전성 등 과학적 불확실성이 큰 것을 고려 안 했다”며 “미접종자에 대해서만 불이익을 부과하는 건 지나치다”고 말했다.

김준래 변호사(김준래 법률사무소)는 “사익이 모이면 그 또한 공익이 되는 것”이라며 “신체 손해는 회복할 수 없는 것이라 단순 사익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고 또 다른 공익으로 봐 그 부분도 고려해 나가야 하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