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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때도 보드게임, 아직도 "달달 떨며 만든다"는 20년차 추리예능 PD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고추리반' '대탈출' 등을 만든 tvN 정종연 PD. 사진 티빙

'여고추리반' '대탈출' 등을 만든 tvN 정종연 PD. 사진 티빙

"제가 몰입감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재밌어서 만든 건데 시즌 1을 많이 좋아해 주셔서… 시즌 3를 향해 가기 위해 열심히 하려고요"

티빙 오리지널 '여고추리반2' tvN 정종연 PD 인터뷰

지난해 12월 28일 ‘여고추리반2’ 제작발표회 직후 만난 정종연(46) PD는 “‘여고추리반2’ 마지막 회 녹화가 남아서, 녹화를 계속 생각하느라 아직 긴장이 덜 풀린 상태”라며 "시즌제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꼭 흥행을 담보할 순 없으니, 아직도 달달 떨며 만든다"고 말하며 웃었다.

정 PD는 2002년 Mnet PD로 입사해 2011년부터 tvN에서 ‘코리아 갓 탤런트’, 2013년 ‘더 지니어스’, ‘소사이어티 게임’ 등을 만들었고,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대탈출’ 4시즌을 만든 ‘추리‧게임 예능 전문’이다. OTT 플랫폼 티빙의 첫 오리지널 작품이었던 ‘여고추리반’에 이어 ‘여고추리반2’를 2021년 끝자락에 공개한 정 PD는 "드라마가 아니라서 출연자가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없는데, 그걸 예상해서 시나리오를 4~5개씩 만들고 리허설하는 데도 꼬박 하루가 걸리는 프로그램"이라며 "추리·게임 예능 말고 음악 예능도 좋아하는데, 어쩌다 보니 추리물을 더 많이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시청률 3%대지만, 연이은 시리즈물 비결 '팬덤'

'대탈출'은 꾸준한 팬덤과 함께 시즌4까지 만들어진 추리예능이다. tvN

'대탈출'은 꾸준한 팬덤과 함께 시즌4까지 만들어진 추리예능이다. tvN

정 PD가 만든 '더 지니어스' 시리즈는 시청률 최고 3.18%, ‘대탈출’ 시리즈는 최고 2.958% 등 시청률만 놓고 보면 ‘도깨비’(20.5%), ‘슬기로운 의사생활’(14.1%), ‘빈센조’(14.6%) 등 같은 기간 드라마에 비해 한참 낮다. 그러나 강력한 팬덤을 업고 꾸준히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tvN 관계자는 "늘 프로그램이 끝나면 티빙에서 검색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팬들이 추리를 공유하는 등 온라인에서 재생산도 활발한 편"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31일 공개된 ‘여고추리반2’도 공개 직후 반응이 왔다. 티빙 관계자는 "티빙 전체 콘텐트 중 공개 첫날 유료가입 기여 수치 1위는 시즌 1의 첫날보다 3.5배 높은 수치"라며 "시즌 2 공개 후 시즌1도 인기 콘텐트 탑10에 다시 올라왔다"고 밝혔다.

정 PD는 “원래 시청률이 프로그램 성과를 나타내기엔 부정확한 지표라고 생각했다”며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봐도 시청률이 사람들의 관심사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지난해 하반기 Mnet의 스트릿 댄스 경연 프로그램으로, 시청률 0.8%로 시작해 최고 2.9%로 마무리했지만 높은 화제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스트릿 댄스를 알린 프로그램이다.

DTCU(대탈출 유니버스)는 '대탈출' 시리즈와 '여고추리반' 시리즈를 합친 세계관을 일컫는 말로, 유튜브 계정도 따로 있다. 유튜브 캡쳐

DTCU(대탈출 유니버스)는 '대탈출' 시리즈와 '여고추리반' 시리즈를 합친 세계관을 일컫는 말로, 유튜브 계정도 따로 있다. 유튜브 캡쳐

정 PD는 “예능은 드라마보다 적은 돈을 들이기 때문에, 시청률이 좀 낮아도 수익은 크다”며 “나도 대단한 대박을 빵빵 터뜨렸던 사람은 아니지만 꾸준히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고, 한 해 12편만 만들어도 수익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청률, 순위권은 허상이고, 시청률의 시대는 아주 빠르게 끝날 것”이라며 “소소한 성공도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OTT는 '취향 라이브러리', 좁은 시청층 타깃 프로그램 필요"

여고추리반2. 시즌 1 출연자 5명이 그대로 '태평여고'에 전학가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티빙 캡쳐

여고추리반2. 시즌 1 출연자 5명이 그대로 '태평여고'에 전학가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티빙 캡쳐

‘여고추리반’으로 OTT 오리지널 예능에 발을 내디딘 정 PD는 “제작비는 tvN에서도 넉넉하게 써서 재정적으로 이전과 큰 차이는 없지만, OTT는 시청 목적이 보다 뚜렷한 시청자를 만날 수 있는 방식이라 더 정직한 승부가 된다고 본다”며 “심의에서 조금 자유롭고,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와 방식 등 시청자에 대한 정보가 정확해서 좋다”고 말했다. 그는 ”플랫폼은 연령대, 성별 등 좁은 시청층을 타깃으로 하는 여러 취향의 라이브러리를 갖춰놓는 게 필요하다”며 “뚜렷한 장점이 있으면 ‘가치 있다’고 보고 제작하는 경향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지윤 등 5명 "무조건 인성 보고 뽑았다"

‘여고추리반2’는 시즌 1에 이어 박지윤‧장도연‧재재‧비비‧최예나(전 아이즈원)가 함께 출연한다. 제작발표회에서 "다섯 명의 매력이 너무 대단해서, 여고와 추리를 빼고 이들만 무인도에 떨어뜨려 놔도 볼만할 것"이라고 극찬한 정 PD는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하되, 서로 부딪히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으로 멤버를 추렸다고 했다.

박지윤은 “자기 경험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어린 상대와도 호흡이 잘 맞아서”, 장도연은 “정상급 코미디언인데도 아랫사람을 누르는 콩트가 아니라 서" 좋았다고 했다. 재재는 “말할 필요 없이 너무 재밌고”, 예나와 비비는 각각 ‘호구들의 감빵생활’, ‘워크맨’에 출연한 모습을 보고 웃겨서 뽑았다고 했다. 그는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이라 무조건 인성을 크게 봤다”며 “다섯명의 관계성에 문제가 생기면 그걸로 끝이고, 이들이 아니면 멤버를 바꾸거나 추가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늘 막내 의견 듣는다, 빠르게 캐치하고 발맞추는 게 이 일"

 정 PD는 "아직 '추리 어드벤처'는 콘텐트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고추리반은 앞으로도 할 게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웹소설·웹툰 등을 활용하는 드라마와 달리, 소재 고갈에 대한 걱정도 있다. "부담이 안 되는 건 아니고, 힘들긴 하다”면서도 "역으로 '대탈출'이나 '여고추리반' 에피소드에서 다루지 못한 이야기를 웹소설이나 드라마로 만들 구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도 늘 신경 쓴다. 정 PD는 “대중의 취향과 기준은 항상 변하기 때문에 빠르게 캐치하고 발맞춰야 한다"며 "‘잘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망한다고 생각해서, 자막에 사용하는 언어도 막내들의 의견을 늘 반영하고 조심한다”고 말했다.

쉴 때도 보드게임 하는 워커홀릭

2002년 입사해 20년간 일한 정 PD는 "일하기 시작한 지 10년 만에 '코리아 갓 탤런트'를 하면서 커리어가 크게 바뀌었다. 좋은 일은 생각보다 빨리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난 시간을 돌이켰다. 그는 "할 수 있는 만큼 다 했다고 생각하는데, 대탈출·여고추리반은 아직은 좋은 폼으로 유지되는 것 같다"며 "명확히 하락세가 느껴지면 그만할 것"이라고 말했다.

촬영에서 90%가 결정된다고 생각해 촬영 전 준비에 온 에너지를 쏟고,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음악도 신곡 위주로 듣고 쉴 때도 보드게임을 사서 하는 등 그의 일상은 일과 관련된 일로 꽉 채워진다. "최근 2년간 거의 쉬지 못했는데도 내가 쉬면 프리랜서들은 밥을 굶어 오래 쉴 수가 없다"며 "찰나의 보람과 기쁨을 위해 고통이 길게 이어지는, 시간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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