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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한방에 파리 7마리 잡은 자신감으로 왕이 된 재봉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76)

옛날에 한 선비가 밤중에 소변을 누러 변소에 갔다. 뭔가 불이 노란 게 한 마리 ‘다풀다풀’ 다가오더니 이 선비를 덮치려 하였다. 선비는 왼손은 바지춤을 잡은 채 오른손으로 짐승의 머리를 팍 눌러 버렸다. 짐승은 ‘뻐덕뻐덕’ 자빠졌고, 선비는 도로 방으로 들어가 잤다. (한국구비문학대계 7-14, 99-104면, 화원면 설화18, 힘자랑하려다 혼난 이야기, 김판암(남·81))

뭐 이런 게 와서 이러느냐는 시큰둥함 속에 정체 모를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자신이 방어하지 못할 것에 대한 염려나 주저함은 전혀 없다. 이 선비는 다음 날 아침에 그게 큰 호랑이였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자신감이 한가득 차올라서는 자기보다 힘 좋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은 마음에 힘겨루기를 해보겠다고 세상에 나아갔다.

꼬마 재봉사는 운 좋게 한 번 이긴 뒤 자신감이 차올라서는 자기보다 힘 좋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은 마음에 힘겨루기를 해보겠다고 세상에 나아갔다. [사진 pxhere]

꼬마 재봉사는 운 좋게 한 번 이긴 뒤 자신감이 차올라서는 자기보다 힘 좋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은 마음에 힘겨루기를 해보겠다고 세상에 나아갔다. [사진 pxhere]

이 선비에게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지려나 싶은데, 비슷한 장면이 그림 민담집에 실려 있는 ‘용감한 꼬마 재봉사’에도 등장한다. 자그마한 몸집을 가진 재봉사가 맛 좋은 잼을 사서는 빵에 잼을 발라두고 열심히 일했다. 그사이 잼 바른 빵 위에 파리들이 날아들어 귀찮게 하자 재봉사가 화가 나서 천 조각을 냅다 후려갈겼는데, 그 한 방에 파리 일곱 마리가 죽었다. 재봉사는 자신의 기운에 놀라 외쳤다.

“너, 굉장한 녀석이로구나! 온 시내에 이 소식을 알려야겠다.” 재봉사는 허리띠를 하나 만들어 커다랗게 ‘한 방에 일곱 놈’이라고 수를 놓았다.
“왜 도시에만 알린담! 온 세상에 알려야지!”

신이 난 재봉사는 몸에 허리띠를 감고 세상으로 나가기로 했다. 자기처럼 용감한 사람이 처박혀 있기에는 이 일터가 너무 작은 것 같았다. (그림 형제 지음, 김경연 옮김, 『그림 형제 민담집-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 현암사, 2021(8쇄), 140면.)

‘뭐 이런 게 와서 이러나’ 하며 강아지나 되는 줄 알았던 걸 눌러 버렸더니 호랑이였고, 천 조각으로 후려갈겼을 뿐인데 파리 일곱 마리가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이들에게 이전까지 자신들이 살던 세상은 급격하게 좁아졌고, 이들의 자신감은 금방 세계정복이라도 할 듯 부풀어 올랐다. 자, 이제 이들은 세상에 나아가서 어떤 일을 겪게 될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잘난 줄 알고 세상에 나서도 넓은 세상에서 그 정도 잘남은 잘난 것도 아니란 걸 금세 깨닫는다. 세상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진 pxhere]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잘난 줄 알고 세상에 나서도 넓은 세상에서 그 정도 잘남은 잘난 것도 아니란 걸 금세 깨닫는다. 세상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진 pxhere]

선비는 길을 나서서 한 주막에 들렀는데 한쪽 다리와 팔을 못 쓰는 남자가 제법 굵은 나무토막을 한 손으로 짝짝 쪼개면서 불을 때는 걸 보게 되었다. 이 남자가 아궁이에 불을 다 때놓고 뒤뜰로 가는 것을 보고 선비도 나무토막을 쪼개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나무토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남자가 그 모습을 보고 선비에게 그런 힘 갖고 힘 겨룬다며 다니지 말라고 하고는 이야기를 하나 해 주었다. 이 남자는 삼 형제 중 셋째였는데, 큰형은 자신보다 힘이 백 배는 더 셌고, 둘째 형도 소문난 장사였다. 남자가 아직 어렸을 때 삼 형제는 도적질하며 다녔다. 어느 날 산길에서 소 판 돈을 짊어지고 가던 상주와 마주친 형제가 돈을 빼앗으려 하자 상주는 어깨를 슬슬 풀더니 순식간에 큰형의 발목을 잡고 바위에 패대기쳤고, 둘째 형도 덥석 쥐어 저 멀리 던져버렸다. 그리고 이 남자도 마저 잡으려고 덤비다가 아직 어린 것을 보고는 앞으로 힘을 쓰지 못하게 하겠다면서 한쪽 어깨와 한쪽 다리뼈를 부러뜨렸다. 이 사람이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그래서 못쓰게 되었다면서 자기 형들도 그 상주에게 그렇게 죽었으니 함부로 힘자랑하지 말라고 하였다. 선비는 그길로 집에 돌아와 그냥 조용히 살았다.

선비는 힘자랑을 하고 싶었지만, 한쪽 팔과 다리도 못 쓰는 사람이 한 손으로 쪼개는 나무토막 하나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남자보다 더 힘센 형제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너무도 쉽게 제압해 버린 더 힘센 놈이 있었다. 세상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겠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잘난 줄 알고 세상에 나섰지만 넓디넓은 세상에서 그 정도 잘남은 잘난 것도 아니었다. 교훈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좀 우울하다. 이런 서사를 가지고 살 때, 그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잘 발휘된다면 함부로 까불지 않고 제 분수에 맞게 편안한 삶을 사는 쪽으로 갈 수 있겠지만, 살짝만 방향이 틀어지면 세상에 나가봐야 내 실력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자괴감의 늪으로 몰고 갈 수도 있겠다.

호랑이도 아닌 파리 일곱 마리를 한 방에 보낸 기념으로 세상에 나선 꼬마 재봉사는 거인 셋과 일각수, 사나운 멧돼지 등을 매번 ‘한 방에 일곱 놈’을 내세우며 재치 있게 맞섰다. 원체 당당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세우다 보니 천 조각 ‘한 방’은 어느새 ‘한칼’이 되기도 했고, 단지 파리 일곱 마리를 뜻할 뿐이었던 ‘일곱 놈’은 ‘일곱 사람’이 되기도 했다. 왕의 군대도 저렇게 자랑스럽게 허리띠에 새기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다고 믿기도 하였다. 왕이 재봉사를 군대에 들이려 하자 기존의 군인들이 그걸 탐탁지 않아 했다.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이었음에도 재봉사의 등장에 사람들이 긴장했다는 것은 재봉사의 말을 믿었다는 뜻이겠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며 어깨와 얼굴에 힘 빡 주고 사람들과 거인, 괴물들을 상대했을 재봉사의 표정을 상상해 보니 귀엽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1938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Brave Little Tailor 포스터. [사진 imdb]

1938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Brave Little Tailor 포스터. [사진 imdb]

미키마우스를 주인공으로 하여 디즈니에서 이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적도 있다는데 더욱 그 당찬 표정이 그려지는 듯하다. 이런 인물이라면 끝이 나쁠 수가 없다. 재봉사는 결국 왕이 내주는 과제들을 모두 해결하고 공주와 결혼한 뒤 왕이 되었다.

1938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Brave Lttle Tailor 스크린샷. [사진 IAD Toonstar95]

1938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Brave Lttle Tailor 스크린샷. [사진 IAD Toonstar95]

자신감에 차서 세상을 향해 나아갔던 두 인물의 행보가 닮은 듯 꽤 다르다. 둘 다 자신의 힘을 믿었다는 것은 동일한데 결말에서 한 인물은 평범해지고 다른 한 인물은 왕이 되기까지 했다.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확신이 설 수 있겠다. 선비는 더 힘센 누군가에 의해 자기 힘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의구심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너졌다. 재봉사는 ‘한 방에 일곱 놈’을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도 다 믿게 하였다. 재봉사가 본래부터 영리하고 용감하며 재빠른 자질을 갖추었던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 살다 보면 어떤 일을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른다. 그때 파리 일곱 마리 죽인 정도일지언정 자기에게 힘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면 비로소 그 자질이라는 것도 내 안에서 모습을 갖추는 것은 아닐까 싶다. 재봉사는 우연한 기회에 만난 장면을 놓치지 않고 바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그 힘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확신을 갖고 밀어붙였기에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며, 일단 꼬마 재봉사가 되어 보겠다는 꿈을 꾸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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