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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킹] 냄비 하나로 끓여내는 한겨울 추억의 음식, 김치밥국

중앙일보

입력

김혜준의〈건강식도 맛있어야 즐겁다〉  

서구화된 식습관이 일상화된 요즘, 당뇨를 관리하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당뇨는 일상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는 생활 질병입니다.〈건강식도 맛있어야 즐겁다〉에서는 레스토랑 브랜딩 디렉터, 푸드 콘텐츠 디렉터로 일하는 김혜준 대표가 어느 날 찾아온 당뇨를 관리하며 생긴 다양한 이야기와 맛을 포기할 수 없어 만든 당뇨 관리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당뇨로 고민 중이라면 김혜준 대표와 함께 식생활을 바꿔보세요.

⑥ 그릇을 물리치기 어려운, 한국인의 맛 ‘김치밥국’

멋스런 모양새와는 거리가 있지만, 한 그릇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기 좋은 김치밥국. 사진 김혜준

멋스런 모양새와는 거리가 있지만, 한 그릇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기 좋은 김치밥국. 사진 김혜준

공기가 차가워지는 시기가 오면 나는 쉽게 허기를 느끼곤 한다. 물론 인간은 추위에도 몸의 체온을 유지해야 하고, 이런 이유로 겨울에 우리 몸의 에너지 생산량은 다른 계절보다 많아진다. 과학적으로는 그렇지만, 그보다 나는 감정적 허기를 더 느끼는 듯하다. 나의 감정적 허기를 채워 주는 음식은 어릴 때부터 먹어온 ‘김치밥국’이다. 경상도 출신인 어머니께서 끓여 주시던 것으로, 아플 때나 추위가 거세지는 무렵에 꼭 먹고 싶단 생각이 든다. 이런 걸 보면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습관이나 철마다 반복되는 식생활의 루틴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치밥국은 아무리 예쁘게 담아도 모양새를 멋스럽게 살리기 어렵다. 대신 별다른 찬이 없이 김치밥국 하나만으로도 한 끼를 거뜬하게 채울 수 있다. 들어가는 재료도 익숙하다. 식은밥, 김치, 멸치 육수, 소면 또는 가래떡, 수제비 그리고 콩나물 정도다. 평소에도 자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는 재료들이다. 그리고 마무리에 들어갈 달걀 한 알, 김 부스러기, 참기름만 있으면 된다.

경상도 지역 사람들 외에는 많이 알지 못하는 음식이다 보니 가끔 SNS에 김치밥국을 올리면 정말 다양한 반응의 댓글들이 올라온다. 내게 그렇듯 ‘추억의 음식’이라는 글부터, ‘당장 해 먹고 싶다’는 댓글도 있고, 난생처음 보는 꿀꿀이 죽 같은 비주얼에 깜짝 놀라는 사람도 있다. 이런 반응들을 보고 댓글을 다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김치밥국은 갱시기죽, 갱죽이라고도 불리는데, 한때 가난을 상징하던 음식이었다. 쌀이 귀한 시절에는 보리밥을 넣고 퉁퉁 불도록 끓여 양을 늘려 먹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의 김치밥국은 ‘가난’보다 ‘추억’을 의미한다. 내게도 김치밥국은, 칼칼한 김치의 양념 맛과 구수한 멸치 육수 그리고 훌훌 넘어가는 탄수화물 재료들이 주는 포만감과 해장의 효과 덕에 오랫동안 추억의 맛으로 남아 있는 음식이 됐다.

이 추억의 맛은 특히 연말연시나 크고 작은 홈파티와 모임, 또는 차례를 지낸 후에 텁텁했던 속을 씻은 듯 내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칼칼하고 개운하며 시원함에서 오는 맛이 중독성 있다. 한국인이라면 쉽게 그릇을 물리치기 어려운 맛이다. 맛의 베이스가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김치’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익숙한 재료에 한국인의 소울 푸드 김치를 베이스로 만는 김치밥국. 사진 김혜준

익숙한 재료에 한국인의 소울 푸드 김치를 베이스로 만는 김치밥국. 사진 김혜준

게다가 김치밥국은 냄비 하나만 있으면 요리가 끝나버린다. 냄비에 물과 멸치를 넣고 구수하게 뽑아낸 국물에 김치와 콩나물 그리고 찬밥과 소면을 함께 바글바글 끓인 후에 달걀 한 알 풀어 후루룩 뒤적이고 그릇에 담아내면 된다. 그다음 구운 김을 봉지 안에 넣고 입구를 막아 마구 부스러트려 만든 김 부스러기를 올린다. 거기에 고소해 마지않는 참기름 한두 방울 곁들이면 완성되는 이 간단한 조리과정이 또 맘에 든다.

김치밥국의 온기가 국자를 통해 그릇으로, 숟가락에서 입으로 전달돼 체온이 뜨끈하게 달아오르고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할 때쯤이면 “얼큰하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만다. 잠시 외국 생활을 했던 20대 중반에 이 맛이 너무나 그리웠던 적이 있다. 함께 지내던 셰어하우스의 외국 친구들이 놀랄까 차마 만들어 먹지 못했던 그 애절했던 순간도 이제는 슬며시 웃고 지나가는 에피소드가 됐다. 김치밥국에 얽힌 추억이 없더라도 괜찮다. 한번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 분명 멈출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될 음식이니까.



Today`s Recipe 김혜준의 김치밥국  

“집마다 김치맛은 다르니 김치밥국의 맛도 다를 수밖에 없죠. 또한 기호에 따라 재료를 더해도 좋아요. 저처럼 당뇨 수치가 걱정이라면 흐르는 물에 김치 포기 사이의 소를 씻어 낸 후에 꼭 짜서 물기를 빼낸 후 끓이세요. 여기에 시원한 맛을 위해 생오징어 반 마리를 넣어요. 심심한 간을 위해 액젓을 넣지 말아야 해요.”

생오징어를 넣으면 시원한 맛을 더할 수 있다. 사진 김혜준

생오징어를 넣으면 시원한 맛을 더할 수 있다. 사진 김혜준

재료 준비  
재료(2인분): (묵은)김치 1/4포기, 멸치 다시팩 1개, 찬밥 1공기, 소면 50원 정도 굵기로 쥔 정도(기호에 따라 가감 가능), 대파 1/2대, 콩나물 50g, 청양고추 1개, 추가할 경우 생물 오징어 1/2 마리.
요리 마무리에 쓸 재료: 달걀 1개, 구운 김 큰 것 1장 또는 조미김 5~6장, 참기름 약간.
양념: 국간장 또는 액젓 1큰술, 고춧가루 1큰술.

김치밥국에 들어가는 재료. 사진 김혜준

김치밥국에 들어가는 재료. 사진 김혜준

만드는 법  
1. 대파와 청양고추, 오징어, 김치는 순서대로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
2. 미리 썰어 둔 김치를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 넣고 볶는다.
3. 육수를 미리 내어 두거나, 생수와 멸치 다시 팩을 함께 넣고 끓인다.
4. 찬밥과 오징어, 대파와 청양고추를 넣는다.
5. 육수가 바르르 끓어 오르기 전에 소면과 콩나물을 넣는다. 해장을 위한다면 콩나물 꼬리를 손질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 소면은 반 뚝 부러뜨려 끓이면 먹을 때 수월하다.
6. 소면이 익으면 미리 풀어 둔 달걀을 넣고 휘리릭 저어 준 후 불을 끈다.
7. 그릇에 담고 김을 부스러뜨려 위에 얹은 후 참기름을 더해 완성한다.
8. 기호에 따라 명란을 올려 살짝 익혀 먹기도 한다.

김혜준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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