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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미군 오산기지서 2시간…中 침공 땐 韓 차기정부 '격랑'

중앙일보

입력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인기 소설이자 미국 드라마인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 나오는 문구다. 드라마 속 스타크 가문의 가언이다. 드라마 속 ‘겨울’은 계절이면서, 겨울과 함께 닥치는 혹독한 현실을 상징한다. 스타크 가문은 ‘겨울이 오고 있다’고 되뇌면서, 늘 경계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겨울은 ‘왕자의 게임’ 세계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의 안보 상황에서도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한반도 안팎에서 삭풍이 불기 시작했다. 해외 분쟁의 파장은 한반도에도 미칠 수 있고, 멀게만 느껴지던 핵위협은 문턱에 다가섰다.

동아시아에 금세기 최대 위기가 엄습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개념으로 미ㆍ중 신냉전을 예견한 국제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일찌감치 대만을 일촉즉발의 화약고로 지목했다.

[안보의 겨울이 다가온다] ①대만 사태 #2022년 한반도 양대 안보 ·변수 분석

1995년 대만해협에서 벌어진 중국의 미사일 시위 같은 상황이 미·중 충돌로 발전할 수 있다면서다. 전문가들은 “대만 위기가 곧 한반도 위기”라고 경고한다. 팽팽하던 힘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을 오판한 북한이 무력 도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중 전략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5월 30일 중국 인민해방군의 침공에 대비해 대만군이 대만 남단 핑둥현에서 상륙 차단 훈련을 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미·중 전략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5월 30일 중국 인민해방군의 침공에 대비해 대만군이 대만 남단 핑둥현에서 상륙 차단 훈련을 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우려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와 관련이 깊다. 미군의 작전계획상 대만에 유사사태가 발생하면 가장 가깝게 배치된 주일미군과 괌 주둔 미군이 상황 제압에 나서게 돼 있지만, 이젠 주한미군 차출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최근 몇년새 중국의 군사력이 급격히 강화되면서 미국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존 하이튼 당시 미 합동참모본부 차장이 “대만해협을 무대로 한 가상의 전쟁(war game)에서 미국이 중국에 졌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밝힌 것도 이런 실상과 무관치 않다.

오산기지서 2시간 거리

대만 유사사태에 대해선 ▶중국의 대만 본토 침공 ▶진먼다오(金門島)ㆍ둥사(東沙) 군도 등에 대한 국지전 등 크게 두 가지 시나리오가 주로 언급된다. 진먼다오는 중국 본토에서 불과 4㎞ 떨어진 대만의 최전방 섬이고, 대만보다 홍콩에서 더 가까운 둥사 군도는 남중국해의 전략적 요충지다.

대체로 전문가들은 중국이 대만 본섬에 상륙해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은 매우 낮게 보고 있다. 반면 미 의회 등은 중국이 대만 본섬에서 멀리 떨어진 도서 지역에 대한 상륙 능력은 이미 갖춘 것으로 평가한다.

바뀌는 동아시아 태평양지역 안보 지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바뀌는 동아시아 태평양지역 안보 지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런 상황에 대비해 훈련을 가장 많이 하는 전력은 주일미군이다. 오키나와의 미 해병대(제3해병원정군, 1만7000여명)는 2018년 창설한 ‘일본판 해병대’인 육상자위대 수륙기동단과 함께 도서 탈환을 상정한 연합훈련을 자주 갖는다.

대만에서 상황이 발생하면 주한미군은 이같은 즉응 전력인 주일미군을 지원할 수 있다. 오산공군기지에서 대만까지 거리는 약 1600㎞로 항공기로 2시간이면 닿는 수준이다.

이런 지리적 이점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높일 수 있는 요소다. 이미 주한미공군의 U-2S 고고도 정찰기는 수시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로 날아가 감시ㆍ정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인태 최강 지상군 미2사단 차출 가능성

사태가 급박해지면 공군력 지원에만 머물지 않을 공산이 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최악의 경우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잘 훈련된 사단급 병력인 주한미육군(2사단)이 불가피하게 관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초대형 수송기 C-17 글로브 마스터Ⅲ는 병력(최대 134명)뿐 아니라 주한미군의 M1 에이브럼스 전차, 아파치 공격헬기 등 대형 장비를 실어나를 수 있다. 한ㆍ미 공군은 지난해 5월 오키나와에서 화물을 실은 C-17을 대구기지까지 이동하는 유사시 지원작전 훈련을 갖기도 했다.

지난해 6월 6일 미국 공군이 보유한 가장 큰 수송기인 C-17이 미 연방 상원의원 3명과 대만에 제공할 코로나19 백신을 싣고 대만 타이베이 쑹산 공항에 내리고 있다. 미국의 대사관 역할을 하는 미국대만협회(AIT)는 이들 상원의원의 인도·태평양 지역 방문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6월 6일 미국 공군이 보유한 가장 큰 수송기인 C-17이 미 연방 상원의원 3명과 대만에 제공할 코로나19 백신을 싣고 대만 타이베이 쑹산 공항에 내리고 있다. 미국의 대사관 역할을 하는 미국대만협회(AIT)는 이들 상원의원의 인도·태평양 지역 방문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해마다 비슷한 훈련을 하지만 C-17이 투입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 공군은 전 세계에서 220여대의 C-17을 운용 중이다.

한·미 연합작전에 밝은 군 소식통은 “과거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은 미 본토 등의 증원 전력 투입을 시현하는 장이었을 만큼 미군은 공수 능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며 “대만 사태가 본격화하면 언제라도 지상군을 투입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군 투입 땐 한반도 전력 감소 

과거 선례도 주목된다. 일각에선 주한미군의 대만 투입과 관련, 지난 2004년 이라크전 때 주한 미2사단 보병여단이 중동으로 파병된 사례를 거론한다.

당시 병력이 복귀하지 않으면서 주한미군은 현 수준인 2만85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다만 대만 유사사태의 경우 주한미군 감축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주한미군 전력 구성.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주한미군 전력 구성.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중국에선 베이징까지 불과 1000여㎞ 떨어진 캠프 험프리스(경기도 평택)를 두고 ‘중국의 심장을 노리는 비수’라며 두려워한다”며 “그런 주한미군을 굳이 한반도에서 빼는 것보다는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GPR(전 세계 미군의 준비태세 점검) 세부 계획과 연계해 한ㆍ미 연합 작전계획을 다시 짜는 것도 중국 대응을 위한 포석”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연말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한ㆍ미가 새 작전계획에 중국 대응 방안을 담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발언에 워싱턴과 미군 수뇌부의 시각이 담겼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한국군 요청 땐 함정 속으로

주한미군 감축보다 더 우려스러운 상황은 한국군에 대한 지원 요청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르면 한·미동맹은 명시적으로 북한뿐 아니라 지역 정세 불안정과 위협에 대응하도록 돼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군 고위 관계자는 “동맹의 본질은 위기 상황 발생 시 상호 원조”라면서 “원론적으로 한국이 미국의 요청을 마냥 거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지난 수십년간 북한을 가정한 한·미 연합 상륙훈련은 검증된 능력”이라면서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유사시 이런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길 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3년 4월 26일 한·미 양국의 해병대가 경북 포항시 송라면 독석리 해안에서 연합 상륙훈련을 하는 모습. 당시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 해병 3사단 등 한·미 해병대 3000여 명이 참가해 한달간 훈련을 진행했다. 중앙포토

지난 2013년 4월 26일 한·미 양국의 해병대가 경북 포항시 송라면 독석리 해안에서 연합 상륙훈련을 하는 모습. 당시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 해병 3사단 등 한·미 해병대 3000여 명이 참가해 한달간 훈련을 진행했다. 중앙포토

미군을 중심으로 한 다국간 연합훈련에서 이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일례로 지난해 7월 중순 한·미·일·호주 해군은 해상연합훈련 ‘퍼시픽 뱅가드21’을 실시했다. 이후 당초 미·호주 연합훈련으로 계획했던 ‘탈리스만 세이버21’에도 4개국 군대가 모두 참가했는데, 한국 해병대와 일본 육상자위대 수륙기동단 병력이 일부 참여했다.

이처럼 인도·태평양에서 가용가능한 동맹의 전력을 최대한 투사하려는 게 미국의 입장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이 원하는 수준으로 한국이 행동할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경제 보복은 물론 중국의 칼끝이 한반도로 향하는 심각한 안보 위기를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위기 틈 타 북 도발할 수도 

이뿐 아니라 북한이 대만 위기를 틈타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준비 태세를 살피기 위해 도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장에선 중국의 지원 없이 군사작전을 감행하긴 힘들 것”이라면서도 “코너에 몰리면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기 위해 무력 도발을 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설적이지만 이런 한반도 위기 상황을 지렛대로 활용해 미국의 대만사태 지원 요청을 회피할 수 있다고 본다”며 “양안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으면서 한반도 방어를 최대한 미국에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중 양국의 국내 정치 상황은 지금 당장은 대만 사태와 같은 큰 판을 벌일 국면은 아니다. 하지만 대만에 관한 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장하려는 중국의 집요함과 무력도 불사치 않겠다는 예측 불가능성이 문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만 사태가 5월 들어설 차기 정부에 “시험대가 아니라 단두대가 될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가 나온다. 김흥규 소장은 “그동안 우리가 익숙했던 패턴에 의한 대외관계 정책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며 “문제는 여·야 어느 쪽도 구체적인 안이나 정치적 결단을 내릴 혜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s trap)'은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가 국제질서에서 신흥 세력과 지배 세력이 총돌할 위험이 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앨리슨 교수는 지난 500년간 부상하는 신흥 세력이 기존 지배 세력을 위협한 16번의 역사적 사례를 분석했는데, 그 중 12번이 전쟁으로 이어졌다. 앨리슨 교수는 21세기 미·중 패권 경쟁이 이런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있다고 지속적으로 경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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