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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는 현장서 안 핀다…경찰 부실대응 부추기는 인사 관행

중앙일보

입력

“현장에 소위 ‘에이스’로 평가받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경찰관이 좋은 평가를 받아 승진하면 주로 내근직으로 가고, 현장에서는 더더욱 멀어진다는 경찰관 A씨의 하소연이다. 최근 경찰의 승진 인사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경비·정보 분야에서 근무한 한 경정의 경우 조직 내부에서 승진이 예상됐고, 이른바 ‘승진 코스’대로 총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지난해 11월25일 오후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과 관련해 관할경찰서인 남동구 논현경찰서를 찾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김창룡 경찰청장이 지난해 11월25일 오후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과 관련해 관할경찰서인 남동구 논현경찰서를 찾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A씨는 “생활안전계 등에서 근무하는 경찰이 승진 대상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경찰관들은 어려운 일이 많은 현장보다 내근직을 선호하고, 그렇게 배치되는 경향”이라고 전했다. 경찰 일각에서는 “국민과 제일 먼저 맞닿아 여러 일을 하는 현장 경찰과 내근하며 기획 등 업무를 맡는 경찰 중 누가 먼저 ‘무궁화’를 다는가”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현장대응력 강화 종합대책까지 냈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책임과 권한이 강화됐지만, 현장 대응 능력에 잇따라 논란이 일면서 근본적인 해법에 대한 경찰 안팎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인천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 등 현장 경찰관들의 미덥지 못한 대응은 잇따르고 있다. 새해에도 서울의 한 스포츠센터 대표의 엽기적인 막대기 살인 사건에서도 피해자 사망 이전에 경찰의 출동이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 김창룡 경찰청장은 전국 경찰에 서한을 보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는 필요한 물리력을 과감히 행사하라”며 ‘비상대응 체제’를 선언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엔 ‘현장대응력 강화 태스크포스(TF)’가 ▶적극적 법 집행을 위한 제도적 기반 강화 ▶실전형 교육훈련 내실화 ▶현장 맞춤형 안전장비 도입 및 범죄피해자 보호 시스템 개선 등의 대책을 내놨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모습. 연합뉴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모습. 연합뉴스

“에이스를 최전선으로 보내자” 전문가 제안

일부 전문가들과 치안 현장에서는 A경찰관의 지적처럼 경찰의 승진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생활안전계나 지구대·파출소 등 국민을 직접 만나는 현장 경찰관들을 승진 대상자 및 인사 고평가자로 배치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다.

치안의 최일선에 경험 많고 능력을 인정받는 경찰관들이 적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현장 대응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인사 평가 자체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4일 “제도·대책 시행 전 갭(격차)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라며 “초동 대응과 관련해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만큼 현장에서 상황을 적절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책임을 가진 인력 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형사사건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경찰 승진·인사 배치에 변화를 줌으로써 내부 인식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수한 경찰관들이 승진을 위해 치안 현장으로 향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훈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그간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것은 경찰이 독점해 왔고, 한 번도 도전을 받아본 적이 없다”라며 “어느 정도의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긴장과 위기의식이 없었다”고 짚었다.

경찰관 이미지 그래픽

경찰관 이미지 그래픽

“역량 이끌어 내” vs “제자리걸음 될 수도”

이런 제언에 대해 경찰 내부의 반응은 다양하다. 지방의 한 총경은 “궂은 일을 맡는 일선에 인사 평가 대상자를 보내 그들의 역량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방안으로 보인다”라며 “그간 기피 대상이 돼 왔던 곳이 오히려 선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또 다른 총경은 “승진 대상자들을 보낸다고 해서 긴급한 현장 상황 대응에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국 제자리걸음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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