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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철책 월북 사건, 탈북민 정책 되돌아보는 계기 삼아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새해 첫날 강원도 최전방의 22사단 GOP(일반전초) 철책을 통한 월북 사건이 발생하면서 대북 감시망의 허점이 또다시 노출됐다. 이번 월북 사건은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병력을 철수시킨 GP(감시초소) 인근에서 발생했다. [연합]

새해 첫날 강원도 최전방의 22사단 GOP(일반전초) 철책을 통한 월북 사건이 발생하면서 대북 감시망의 허점이 또다시 노출됐다. 이번 월북 사건은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병력을 철수시킨 GP(감시초소) 인근에서 발생했다. [연합]

군 경계 허점은 물론 탈북민 관리 문제 노출  

대한민국 정착 돕는 지원 체계 재점검해야

30대 남성 탈북민이 동부전선 최전방 철책을 넘어 북한으로 되돌아간 사건의 내막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철책 경계의 허점에서부터 탈북자 지원 및 관리에 이르기까지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철통같아야 할 최전방 철책이 같은 지점에서 1년 만에 또 뚫린 경계의 실패는 군 당국으로선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다. 엄중한 문책과 함께 책임 있는 지휘관과 당국자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 구두선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재발 방지책이 마련돼야 한다. 남북 군사합의로 평화가 실현된 것처럼 포장해 전방 감시초소(GP)를 폭파했던 현 정부 집권 기간에 이런 경계 실패가 유독 많았던 것을 국민은 단순한 우연으로만 보지 않는다.

문제는 경계의 실패에만 그치지 않는다. 누적 인원 3만 명이 넘는 탈북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잘 정착하고 있는지, 정부는 그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통일부 집계로는 2012년 이후 탈북민 중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이 30명이라고 한다. 북한 매체 보도 등을 근거로 확인한 것이어서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재입북 탈북민 중에는 북한의 공작에 의해 대남 비방 공세에 이용당한 경우도 있었고, 처음부터 대남 공작을 목적으로 한 위장 탈북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는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생활에 어려움을 겪다 다시 돌아간 사례들이다.

관계 당국은 허술한 관리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이번에 입북한 탈북민 김모씨도 평소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하소연해 관할 경찰서에서 재입북이 우려된다는 보고를 상급 기관에 제출했는데도 묵살당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탈북민을 가장한 대남 공작원이 전방 철책을 침투 및 귀환 루트로 삼고 남북을 드나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김씨의 탈북 동기도 석연치 않은 만큼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탈북민의 정착을 돕는 지원 체계도 허약하다. 탈북민들은 하나원 교육과정을 마치고 나오면서 소정의 지원금을 받는 것 이외에는 취업과 주거 등 한국 땅에서의 생계를 자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경쟁 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탈북민들이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굳어지고 있는데도 정부 지원은 제자리걸음이다. 남북대화를 우선하는 정부일수록 탈북민 지원을 도외시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2019년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지 두 달 만에 발견된 탈북 모자 고독사 사건 때에도 정부는 아무런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정부 정책의 문제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냉대와 차별적 시선도 탈북민의 재입북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 대한민국으로 온 사람들이 다시 그 길을 밟아 북한행을 선택하는 현실에 더 이상 눈을 감아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