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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통신자료 조회 남발도 '합법'… 법조계 "영장 거쳐야"

중앙일보

입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광범위한 통신자료 조회에 대한 ‘사찰 논란’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4일 오세훈 서울시장을 상대로 한 통신 조회 사실이 드러나는 등 공수처는 이날 현재 언론인과 야당 의원, 일반인 등 약 300명의 인원에 400건 넘는 통신 조회로 신상정보를 파악한 것이 확인됐다. 공수처를 비롯한 수사기관이 당사자 동의 없이 통신사로부터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을 제출받는 행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무분별한 통신 조회 관행이 헌법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며 기본적인 통신 조회도 법원이 발부하는 영장을 의무화하는 등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국회 법사위에 참석했다. 2021.12.30 [중앙포토]

김진욱 공수처장이 국회 법사위에 참석했다. 2021.12.30 [중앙포토]

영장 없이 가능한 '통신 조회'… 기본권 침해 소지

공수처는 “합법적인 수사 방식”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해 12월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왜 우리(공수처)만 가지고 사찰이라고 그러시나”라며 “법에 따라 통신자료를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공수처를 출범시킨 더불어민주당도 “윤석열 검찰 때 더 많은 통신 조회가 있었다”면서 엄호에 나섰다.

공수처의 해명처럼 불법 수사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장 없는 통신조회가 반헌법적 행위라는 문제 제기는 이전부터 있었다. 수사기관이 활용하는 통신 관련 자료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통신사실 확인자료’는 당사자의 통화·문자 일시, 착·발신 전화번호, 발신기지국 위치 등을 담고 있다. 주로 피의자나 핵심 사건 관계인을 조사할 때 파악하는데, 법원이 합당하다고 판단해 영장을 내줘야 조회가 가능하다.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문제는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확보 가능한 ‘통신자료’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가입·해지일자가 포함돼 있는데, 본인이 통신사에 먼저 확인 요청을 하기 전까지는 조회된 사실조차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통신자료 조회 근거인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의견(소수)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공수처는 인권 친화적 수사기관을 자임하면서도, 경각심 없이 무차별 통신조회를 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한 현직 간부는 “공수처가 ‘일단 떼보자’ 식으로 수사하는 것 같다”며 “개인정보 문제뿐 아니라 통신 조회 숫자에 비례해 업무량도 커지기 때문에 같은 사건에서 한 번 조회한 사람은 다시 하지 않는 게 수사의 기본”이라 말했다. 공수처의 경우, 동일인에 대해 많게는 5회까지 통신기록을 조회했다.

"사후 통지라도 해야 수사기관 견제될 것"

공수처 사찰 논란을 계기로 통신자료 조회 역시 영장을 의무화하자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통신자료 조회도 영장을 의무화해야 수사기관이 최소한으로 조회할 것"이라며 "수사기관이 통신 조회를 하면 당사자에게 자동 통보되게 바꿔야 한다. 수사 밀행성이 문제라면 사후 통지라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당사자에게 조회 사실을 자동 고지하는 등 수사기관을 견제할 장치가 필요하다”라며 “기본적으로 공수처의 수사 종결이 너무 늦어 각종 논란이 더 커진다. 형사소송법상 고소·고발 사건은 3개월 내에 끝내는 게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통신자료 조회에서 영장을 의무 규정으로 두면, 법원이 내실 있는 심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 명당 통화 상대가 많게는 수백, 수천 명에 이르는데 이들 모두에 대해 영장심사를 거치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수사 과정의 불가피함과 개인정보 보호 사이에 균형점을 맞추는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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