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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 희생자 9000만원…6·25 이후 민간인 희생 첫 보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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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추념식 자료사진. [중앙포토]

제주 4.3 추념식 자료사진. [중앙포토]

제주 4·3사건 희생자 1명당 9000여만 원의 보상금이 지급된다. 사건이 발생한 지 74년 만에 관련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필요한 법적 절차가 마무리됐다.

개정 특별법, 4일 국무회의 의결 

행정안전부는 4일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공포안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발표했다. 해당 특별법은 희생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 기준안 등을 담고 있다.

‘4·3 특별법’은 지난해 2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보상 길이 처음 열렸으며, 당초 배·보상이 아닌 위자료로 명시됐었다. 이후 보상금 성격과 금액, 지급방식 등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탔고, 마침내 지난달 9일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포안 의결 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사건 중 최초의 입법적 조치라는 면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며 “70년 만에 정의가 실현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진상규명, 명예회복, 보상금 지급 등을 평화적으로 진행한 과거사 해결의 모범사례다. 유사 민간인 희생 사건의 입법기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개정 특별법은 오는 11일 자로 공포된다. 시행은 3개월 뒤인 4월 12일이다. 정부는 보상 업무를 위해 4·3 명예회복위원회에 ‘보상심의분과위원회’를 새로 둘 계획이다. 실제 보상은 상반기 중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미 올해 예산으로 1810억 원을 편성해놓은 상태다.

지난해 제73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 모습. 4.3 사건으로 부모님이 사망하고, 오빠는 행방불명된 손민규 어르신이 외손녀의 고가형 학생의 유족 사연 낭독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중앙일보 김성룡 기자]

지난해 제73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 모습. 4.3 사건으로 부모님이 사망하고, 오빠는 행방불명된 손민규 어르신이 외손녀의 고가형 학생의 유족 사연 낭독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중앙일보 김성룡 기자]

후유장해, 수형인 등도 보상금 지급 

보상금 지급액은 행안부가 용역을 통해 마련한 보상금 지급 기준에 근거한다. 희생자 1인당 9000만 원을 받게 된다. 희생자가 모두 금액이 같다. 그간 차별 지급에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됐던 제주사회의 목소리를 받아들인 조처다.

또 후유장해·수형인 등에 대해서는 장해 정도나 구금 일수 등을 고려해 9000만 원 이하 범위에서 지급할 방침이다. 단, 수형 중 사망의 경우 9000만 원을 지급한다. 유족 보상청구권도 마련됐다. 희생자의 제사를 지내거나 무덤을 관리하는 4촌의 직계비속(5촌)도 예외적으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유족으로 인정된 4촌이 장기간 보상지연으로 사망한 경우 직계비속의 보상청구권도 인정토록 했다.

이같이 범위를 확대한 이유는 4·3사건 유족이 연좌제를 우려해 부모, 배우자 등 당시 가족의 희생을 숨긴 경우가 많았던 점을 고려했다. 희생 부모를 대신해 친척의 호적에 입적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 송승문 회장을 비롯한 유족회 관계자들이 2년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3 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 송승문 회장을 비롯한 유족회 관계자들이 2년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3 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 최초 보상

4·3 단체 등에서는 개정 법률안 통과를 환영했다. 양조훈 4·3 평화재단 이사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제주 4·3사건은) 한때 이념 갈등으로 왜곡돼 금기시됐던 역사였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진실이 밝혀지고 국가보상까지 이뤄지게 됐다. 이 점에서 상당히 진전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번 특별법이)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민간인 희생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과거 아픔을 딛고 치유의 미래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여순사건 등 다른 과거사 문제 해결의 모델이 될지도 관심이다. 이번 보상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해 최초로 이뤄지는 것이어서다.

4·3사건은 광복 이후인 1948년 4월 3일 발생해 소요사태 등으로 무고한 주민이 대거 희생당한 사건이다. 발단은 1년 전인 1947년 삼일절 기념 제주도대회였다. 가두시위를 구경하던 어린아이가 경찰이 탄 말에 치여 다친 데 항의하던 민간인에게 경찰이 총을 발포했고, 6명이 사망했다.

이후 대규모 시위가 일었고 제주도 인구의 상당수가 좌파단체 동조자로 몰렸다.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최소 1만5000명이 사망하고 3631명이 행방불명됐다. 당시 내란실행, 국방경비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수형인은 2500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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