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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접종자, 확산 위험 더 크다 단정 못해" 방역패스 판결 파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청소년 방역패스(백신접종증명·음성확인제) 확대 정책에 제동을 건 법원의 논리는 헌법상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이다. 권리 침해가 명백한데 정작 백신 미접종자가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를 확산시킬 위험이 훨씬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법원이 학원 및 독서실 등 교육시설에 대한 방역패스 효력 정지 결정을 내린 4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관계자가 방역패스 안내문을 제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이 학원 및 독서실 등 교육시설에 대한 방역패스 효력 정지 결정을 내린 4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관계자가 방역패스 안내문을 제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미접종자에 대한 지나친 권리 침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 첫 결정으로 정부가 백화점‧마트까지 방역패스를 확대적용하려는 시점에 나온 결정이어서 관련 소송 및 정부 정책 등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법원 “돌파감염도 있는데 미접종자 차별 위헌적”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종환)는 4일 전국학부모단체연합 등 시민단체가 지난달 17일 정부 조치가 부당하다며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최종 판결 전까지 청소년 방역패스의 효력을 일시 중지하는 집행정지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방역패스가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헌법상 모든 국민에게는 행복추구권, 직업선택의 자유, 자기결정권, 평등권(헌법 10조·11조 1항·15조 ) 등이 보장되는데 한창 진학, 취업 등 진로를 위해 공부해야 하는 이들이 백신을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원이나 독서실 등에 가지 못한다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수 있는데다 차별적이고 자기결정권도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침해를 감수하고 백신패스를 강제할만한 객관적‧합리적 이유는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백신 접종자에 대한 돌파감염도 빈발한 상황에서 백신 미접종자가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현저히 더 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청소년은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도 고려했다. 재판부는 “청소년의 경우 코로나19에 감염되더라도 중증으로 진행되거나 사망으로 이르게 될 확률이 다른 연령대보다 현저히 낮다”고 했다.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올라온 판매글. [사진 온라인커뮤니티]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올라온 판매글. [사진 온라인커뮤니티]

재판부는 감염률에 대한 수치를 근거로 들면서 백신 미접종자 집단이 코로나 확산 위험이 훨씬 크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짚었다. 코로나 확산세가 커지던 지난해 12월 2주차에 12세 이상 백신접종자 집단의 코로나 감염 위험이 약 57% 적다는 국내 통계 자료를 근거로 “미접종자가 코로나에 감염될 확률이 약 2.3배 크다는 정도여서 그 차이가 현저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12세 이상 전체 백신 미접종자 중 감염자 비율은 1000명당 1.5명, 같은 집단에서 백신 접종자 중 감염자 비율은 1000명 중 0.7명 정도로 각 집단의 감염 비율 자체가 매우 낮고, 그 차이도 크지 않다”고 했다.

재판부는 “코로나 치료제가 도입되지 않은 현 단계에서는 코로나 백신이 국민 개개인의 코로나 감염과 위중증 예방을 위해 적극 권유될 수는 있다고 보인다”면서도 “그러한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백신 미접종자의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은 충분히 존중돼야 하며 결코 경시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의사까지 동참한 백신패스 반대 소송, 영향은? 

‘자기결정권’ 등을 언급한 이날 판결은 백신 미접종자의 헌법적 권리백신 접종의 실효성에 대한 1차적 판단으로 향후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관측된다.

현직 의사 등 시민 1023명이 방역패스 실행의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 한원교)에서 오는 7일 첫 심문기일이 열린다. 조두형 영남대 의대 교수 등이 참여한 이 사건도 백신 미접종자들이 사회 생활시설을 이용할 때 심대한 제약을 받고, 백신 접종을 강요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다만 이 사건은 교육시설뿐 아니라 모든 시설의 방역패스 효력을 다룬다. 효력정지가 결정되면 마트나 백화점, 식당 등 사실상 일상생활 전반을 방역패스 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등학생 유튜버 등 국민 450여명이 “방역패스가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한 사건도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에 회부돼 심리 중이다. 이들 역시 이날 법원이 든 논리와 비슷하게 방역패스가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인 평등권과 행동의 자유,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교육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한다는 주장을 폈다.

다만 이날 법원 판결은 학원·독서실 등 교육 시설이라는 특수성이 있고, 상급심이 아닌만큼 재판부 별로 각기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언급된다.

 서울 한 학원가에 방역패스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 한 학원가에 방역패스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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