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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방역패스' 제동…"다른 곳 불똥 튈라" 당혹스러운 정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학원·독서실·스터디 카페 등에 대한 방역 패스(백신 접종증명·음성 확인제)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 법원은 해당 시설에서의 방역 패스를 "미접종자 집단을 불리하게 차별하는 조처"라고 판단했다. 복지부는 "3종 시설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이 본안 판결시까지 중단된다"라고 밝혔다. 이로써 본안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미접종자들도 방역 패스 적용 없이 해당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학원·독서실·스터디 카페 등에 대한 방역패스 정책에 4일 법원이 집행정지(효력정지) 결정을 내렸다. 2일 서울 한 학원가에 방역패스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학원·독서실·스터디 카페 등에 대한 방역패스 정책에 4일 법원이 집행정지(효력정지) 결정을 내렸다. 2일 서울 한 학원가에 방역패스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이종환 부장판사)는 4일 전국학부모단체연합 등이“학원·독서실·스터디 카페를 방역 패스 의무적용 시설에 포함하는 것을 멈춰달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정책을 두고 "사실상 백신 미접종자 집단의 학원·독서실 접근·이용 권리를 제한하는 불리한 차별 조치"라고 명시했다. 또 12세 이상 전체 백신미접종자 중 감염자 비율은 0.0015%(1000명 중 1.5명), 12세 이상 전체 백신접종자 중 감염자 비율은 0.0007%(1000명 중 0.7명)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각 집단의 감염비율 자체가 매우 낮고 그 차이가 현저히 크지 않으므로, 그러한 두 집단의 감염비율 차이만으로 백신미접종자 집단이 코로나를 확산시킬 위험이 훨씬 더 크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봤다.

방역 패스에 제동이 걸린 정부는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법원 결정 2시간여만에 입장문을 내고 "정부는 성인 인구의 6.2%에 불과한 미접종자들이 12세 이상 확진자의 30%, 중증환자 사망자의 53%를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 시기에는 미접종자의 건강상 피해를 보호하고 중증의료체계의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방역패스 적용 확대가 필요하다"라며 기존 입장을 재차 밝혔다. 이어 "복지부는 본안 소송을 신속히 진행하고, 법원의 집행정지 인용 결정에 대해서도 법무부와 협의해 항고 여부를 조속히 결정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소송 당사자가 복지부 장관과 질병청장"이라며 구체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복지부 고위관계자는 "학원 뿐 아니라 방역패스 전반적으로 불똥이 뛸 것으로 예상돼 당혹스럽다"고 했다.

복지부는 이날 오후 늦게 법원 결정문에 인용된 접종자·미접종자 감염자 비율 통계에 대해 "12월 20일 보도자료 통계를 인용했으나 백분률 계산에 오류가 있다"라며 "(접종자와 미접종자 각각) 0.15%, 0.07%가 맞다"라고 법원 결정문 오류를 지적했다. 이어 "한주간의 발생통계를 비교해서 전체 상황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인용한 통계는 1주간 발생상황으로 미접종자가 2차접종완료군 대비 감염될 위험이 2.3배 높다(감염예방효과 57%)는 것을 나타낸다"라고 반박했다. 복지부는 또 "전파는 감염이 안되어서서 예방하는 것(감염예방효과) 이외에도 감염되더라도 백신 2차접종자에서 전파 위험을 낮추는 것까지 고려되어야 한다(영국자료 기준 2차접종 완료자는 미접종군 대비 전파위험도 35%~65% 낮춤)"라고 부연했다.

학부모 단체와 학원가는 반기는 분위기다. 소송을 낸 김수진 전국학부모단체연합 상임대표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지만 정말 받아들여질지는 몰랐다"면서 “법원 판단에 감사하고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의 원고측 대리인 법무법인 강함의 함인경 대표변호사는 “백신접종의 공익적 측면이 크다 하더라도, 자발적인 백신 접종을 유도함으로써 위중증률 등을 통제하는 것이 방역 당국이 우선적으로 해야할 최소침해적 조치라는 재판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자녀들의 백신 접종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졌던 학부모들도 한시름 놓게 됐다. 중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 정모(45ㆍ경기 안양시)씨는 “백신 부작용 걱정에 아이 접종 미뤄왔다. 학원 방역 패스때문에 큰 고민이었는데 다행스럽다. 좀 더 고민해보고 접종할지 말지 결정하겠다”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결정에 현장에선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 학원 관계자는 “방역 패스 적용한다고 과연 아이들에게 실익이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었다”며 법원의 결정 자체를 반기면서도 "불과 조치를 시행하기로 결정한 뒤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결과라 당황스럽기도 하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3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전국학부모단체연합 회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소아·청소년 백신접종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월 3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전국학부모단체연합 회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소아·청소년 백신접종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의 입장도 분분하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아직 가처분이기 때문에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면서도 "청소년의 경우 방역 패스를 적용 전에 백신 접종 이득이나 안전성 등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을 통해 설득하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 교수는 "이번 결정은 청소년 접종과 관련한 부분"이라며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방역 패스 적용은 전 세계적으로 필요성이 인정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김동현 한림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법적인 판단보다는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 교수는 "백신패스는 미접종자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PCR 음성확인서나 예외 조항 등 다른 방법이 대안으로 제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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