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석 왜 사육사 죽였나…"한국호랑이에게 한국은 너무 좁다"

중앙일보

입력 2022.01.04 05:00

업데이트 2022.01.04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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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86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시베리아호랑이(한국호랑이) 호돌이의 모습. 서울대공원

1986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시베리아호랑이(한국호랑이) 호돌이의 모습. 서울대공원

1983년 2월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만장일치로 호랑이를 올림픽 마스코트로 선정했다. 한민족의 상징으로 꼽히는 동물이면서 민화나 설화를 통해 우리에게 친근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국내에선 호랑이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결국 올림픽 2년전인 1986년, 한국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5마리가 미국에서 건너왔다.

이후 36년간 한국호랑이는 54마리로 늘었다. 하지만 호랑이는 맹수인만큼 인간과 공존하기 어려운 동물이다. 행동반경이 400~1000㎞에 달해 좁은 국내 사육시설에 적응도 어려웠다. 타 동물원과 교류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근친교배를 한 문제도 있었다. 한국호랑이와 표범을 지키는 '한국범보전기금'의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국내 동물원으로 들어온 한국호랑이들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말한다.

한국호랑이에겐 한국이 좁다

이 교수가 말한 '한국호랑이의 비극'을 대표하는 두 마리 호랑이가 있다. 첫 번째는 2013년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사육사를 물어 죽인 호랑이 '로스토프'다. 당시 세 살이던 로스토프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서울시에 준 선물이었다. 서울대공원은 선물 받은 호랑이들을 공사 중인 호랑이사 대신 절반 정도 좁은 여우사에서 생활하게 했다. 이때 받은 스트레스가 로스토프가 사육사를 물게 한 원인으로 추정된다.

2013년 한국호랑이 크레인의 생전 모습. 동물자유연대

2013년 한국호랑이 크레인의 생전 모습. 동물자유연대

두 번째는 2001년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한국호랑이 '크레인'이다. 남매였던 아빠 '태백'과 엄마 '선아' 사이에 근친교배로 태어나 선천적 백내장과 안면기형을 가졌다. 튼튼하게 자라라는 뜻에서 지어준 이름과 달리 크레인은 목줄을 찬 채 사육사들의 손에 길러졌다. 관람객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아기 시절이 지난 크레인은 지방의 한 민영 동물원으로 옮겨졌다. 2007년 경영난을 맞아 방치됐고 동물단체에 의해 구조됐다. 2012년엔 고향인 서울대공원으로 돌아와 5년 뒤 여생을 마쳤다.

크레인 구조활동에 참여했던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사육 호랑이의 비극은 예견된 결과였으며 알려지지 않은 호랑이의 죽음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랑이 보전 원칙 지켜야

두 호랑이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선 호랑이종 보전을 보다 체계적으로 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서울대공원과 에버랜드 동물원은 지난 2019년 수년 간 노력 끝에 미국수족관동물원협회(AZA)의 인증을 받아 회원이 됐다. 근친교배를 막고 국제 기준에 맞는 사육환경을 갖춘 동물원만 가입할 수 있는 곳이다. 2018년엔 산림청이 경북 봉화군 백두대간 수목원 내 크기가 약 3만8000㎡(축구장 4개 크기)인 호랑이숲을 조성했다.

하지만 호랑이 사육환경이 여전히 열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7년 국회에서 동물원수족관법이 통과돼 시행됐지만 맹수 사육에 관한 규정이 느슨하다. 조희경 대표는 "국내 사육 시설에 비해 개체 수가 많아 좋은 시설에서 태어나도 열악한 동물원으로 옮겨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동물원을 허가제로 바꾸는 동물원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쉬고 있는 한국호랑이의 모습. 뉴스1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쉬고 있는 한국호랑이의 모습. 뉴스1

이항 교수는 우리가 지켜야 할 호랑이 보전 원칙을 세 가지로 꼽았다. 호랑이들의 혈통을 확인해야 하고, 근친 번식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야생에서의 한국호랑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이 교수는 "현재 우리는 3가지 중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호랑이종 보전의 큰 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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