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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스트롱맨' 간 대선이 걱정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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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선을 두 달 남짓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2 증시대동제'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대선을 두 달 남짓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2 증시대동제'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연말연시가 되면서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각국 중요 선거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세계 10대 강국으로 등극한 한국의 대선도 빠질 리 없다. 그럼 해외에선 이번 대선을 어떻게 볼까. 워싱턴포스트(WP), 미 외교협회(CFR) 등도 이 문제를 다뤘지만 가장 눈길을 끈 건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였다.

양당 후보 모두 강한 성격의 리더 #'그들'과 '우리'로 편 가를 수 있어 #포퓰리즘에 기대는 잘못 조심해야

FP는 '오징어 게임' 선풍을 한국 사회의 병폐와 연결해 분석한 지난해 10월 주한 미국 대사관의 전문을 인용하며 이번 대선을 다뤘다. 미 대사관 측은 오징어 게임이 계층화된 한국 사회의 우울한 현실과 젊은 세대의 절망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작품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이런 현실이 한국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도 분석했다. 특히 확확 바뀌는 20대 젊은 층의 표심이 대선 승패의 열쇠라는 게 미 대사관의 시각이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20대의 지지율은 한때 90%까지 갔다가 실업과 인플레 등으로 31%까지 곤두박질쳤다(갤럽 조사). 미 대사관이 특히 주목한 대목은 페미니즘에 대한 20대 남성들의 반감이었다. 이들 다수에겐 페미니즘은 그저 남성을 탄압하는 성 불평등을 뜻한다. 지금은 상황이 변했지만, 당시에는 민주당이 페미니즘에 대한 수용적 태도를 보이자 국민의 힘이 이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기도 했다. 페미니즘과 관련된 20대 남성의 정서가 이번 대선의 향방을 가를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럼에도 '정치적 남성성'이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터에 한국 대선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해외에서도 관심사다.
최근 수년간 지구촌에는 정치적 남성성을 강조하는 '마초주의(Machoism)'와 '스트롱맨 리더십(Strongman leadership)'이 힘을 얻어왔다. 2010년도 중반 이래 소수 의견 존중 및 타협과 같은 민주주의 원칙보다는 강력한 리더십을 선호하는 풍조가 세계를 휩쓸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중국 시진핑 주석, 지난해 퇴진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등 얼마 전까지 세계의 3대 군사 강국 모두를 강력한 지도자가 통치했다. 이들뿐이 아니다.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등도 이런 부류다. 반면에 민주주의 원칙을 중시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등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왜 이럴까. 이는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 속에서 강력한 힘으로 사회 정의를 이루겠다는 포퓰리즘이 먹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외친 '아메리카 퍼스트'가 단적인 예다. 강력한 국가와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데는 스트롱맨 리더십만 한 게 없다. 하지만 여기엔 큰 위험 인자가 내포돼 있다.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이언 브레머(Ian Bremmer)는 이렇게 지적한다. 대부분의 스트롱맨이 공정 사회를 만들겠다며 타도 대상을 '그들'로, 지지자들을 '우리'로 구별한 뒤 특정 세력을 적으로 삼는 잘못을 저지른다고.
 그간의 성향으로 볼 때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 모두 스트롱맨에 가깝다. 1945년 해방 이후 3년간 한반도 남쪽을 통치한 미군정 관계자들은 한국 정계를 들여다보곤 깜짝 놀란다. 한국 땅엔 오로지 공산주의자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좌우 할 것 없이 모두 "강력한 국가가 중심이 돼 사회 모든 분야를 개혁하겠다"고 외쳤던 탓이다.
어쩌면 수천 년 왕정에 익숙해 온 한국인의 DNA 속에는 강력한 국가를 원하는 유전자가 새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어느 쪽 스트롱맨이 집권하든, 조심하지 않으면 또다시 편 가르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하면서 화합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지난 4년여 임기를 돌아보면  '편 가르기 정치'에 능한 지도자란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두 후보는 포퓰리즘에 기대는 실수를 결코 되풀이해선 안 된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