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세직의 이코노믹스

실물 경제 못 살리면 어떤 경기부양도 소용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25년 전 IMF 사태의 교훈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올해는 우리 국민이 구제금융 사태를 겪은 지 25년째 되는 해다. 벌써 아득한 일이지만 ‘위기의 추억’이 여전히 새롭다. 1997년 11월 외환보유액이 바닥나는 외환위기 상황을 맞은 우리 정부는 결국 12월 3일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협약을 맺는다. 미셸 캉드쉬 IMF 총재와 당시 임창열 재정경제원 장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가 협약에 서명하는 장면은 TV로 전국에 중계됐다. 나라가 구제금융을 받는 충격적 상황을 ‘제2의 경술국치’라고까지 표현했다. 설립목적에 따라 외환위기 국가에 달러를 빌려주러 온 IMF에 놀란 국민은 당시 위기를 ‘IMF 위기’라고도 불렀다.

1997년 시작된 IMF 위기는 당시 국민의 삶에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위기의 충격으로 1998년에는 경제성장률이 -5.1%로 전년도보다 무려 11% 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위기 중 많은 기업이 망했다. 한 때 ‘대마불사(大馬不死)’라고 했던 30대 재벌 중에서도 대우를 포함해 절반이나 망했다. 종금사·단자회사 같은 제2금융권과 지방은행은 물론이고 제일·조흥·한일은행 같은 거대 시중은행도 간판을 내려야 했다. 많은 가장이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게 되면서 100만명 넘는 실업자가 새로이 양산되고, 실업률은 2%대에서 7%로 수직으로 상승했다.

최근 수년 경제상황 1997년과 닮아
성장률 추락 중 무리하게 돈만 풀어
생산성 끌어올려 실물 경제 살리고
성장률 제고에 주력해, 위기 막아야


부실 투자가 실물·금융위기 촉발

김세직의 이코노믹스

김세직의 이코노믹스

올 연말이면 그로부터 만 25년을 맞이한다. 어떤가? 지금, 한국 경제는 그 당시와 비교해 훨씬 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현재 경제 상황을 보면 아무도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25년 전 왜 위기를 맞이했나? 그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자. IMF 위기는 1997년 1월에 터진 ‘한보 사태’로부터 시작됐다. 한보건설의 정태수 회장이 세운 한보철강은 위기 이전 막대한 돈을 은행에서 빌려 제철소를 건설한다. 그러나 제철소에서 제품이 제대로 생산돼 나오지 못해 5조원 넘는 투자가 하루아침에 ‘실패 투자’로 판명 나면서 한보철강은 1월 23일 최종부도 처리된다. 이어 실패투자에 따른 삼미·진로·기아·해태·뉴코아 등의 부도사태가 줄을 이었다. 97년 위기는 결국 위기 전 몇 해에 걸쳐 이뤄진 투자 중 상당 부분이 부실투자, 실패투자로 판명이 나며 발생한 실물위기가 그 본질이었다.

97년 중반부터는 부실투자 기업들에 지원해준 은행의 막대한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실물위기가 금융위기로 발전한다. 이에 97년 9월 한국은행은 위기가 심각해진 제일은행과 종금사에 특별 유동성 지원을 하게 된다. 그러나 상황은 더 악화해 12월에는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이 결국 정부에 의해 인수돼 버리고, 27개 은행 중 14개의 은행이 국제결제은행(BIS) 자본비율 8%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된다.

10월 하순 이후에는 대규모 기업 파산과 은행 부실화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의 우려가 증가하면서, 외국 자금도 급격히 이탈해 나가기 시작했다. 11월에는 국내은행들이 외국에서 대규모로 빌렸던 단기자금을 다시 빌리는 차환(rollover)이 어려워지면서 가용 외환보유액이 60억 달러 수준까지 줄어든다. 이렇게 외환보유액이 바닥나면서 달러 부족으로 인한 외환위기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결국, 97년 IMF 위기는 실물위기에서 시작해 금융위기·외환위기로 차례로 이어지며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발생한 복합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인위적 과잉 투자가 위기 불러

그렇다면 복합위기의 도화선이 된 실물위기를 촉발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장기성장률 추락과 과도한 경기부양 정책 때문이다. 1990년대 초부터 한국경제는 김세직(2016)의 ‘5년 1% 하락의 법칙’에 따라 이미 성장 추락을 시작하고 있었다. 당시 장기성장률의 하락으로 인해 1992년 연간성장률도 6.2%로 크게 하락했다. 경기변동에 따른 연간성장률 하락의 경우와는 달리 장기성장률 하락에 따른 연간성장률 하락의 경우에는 총수요를 증대시키는 경기부양책이 위기 가능성만 높일 위험이 있다.

국가 예산 추이

국가 예산 추이

그런데도 정부는 당시에 강력한 경기부양책으로 잘못 대응했다. 장기성장률이 추세적으로 하락하면 이는 투자수익률이 하락함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높은 투자율을 유지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강력한 경기부양책으로 대기업과 재벌의 설비 투자와 건설 투자는 오히려 엄청난 규모로 증가했다.

그 결과, 투자율이 36~38%대의 매우 높은 수준에서 하락 없이 유지됐다. 이러한 ‘장기성장률 하락 속의 높은 투자율 지속’ 현상은 인위적 경기부양으로 인해 적정 수준 이상의 투자, 즉 과잉 투자가 일어났음을 시사한다. 이렇게 높은 투자율을 뒷받침하기 위해 은행대출은 1992년 이후 5년 동안 두 배나 증가하고, 30대 재벌의 부채비율은 520%까지 증가했다. 그 결과 제철업에 전문성이 전무한 한보 같은 회사도 제철소 건설을 위해 5조원이 넘는 막대한 돈을 은행에서 쉽게 빌릴 수 있었다.

‘5년마다 성장률 1% 하락’ 막아야

5년 1%P 하락의 법칙

5년 1%P 하락의 법칙

이렇게 인위적 경기부양에 의한 과잉투자가 이루어지면 생산성이 낮은 비효율적인 기업들까지 은행 빚을 얻어 투자에 참여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따라서 과잉투자 중 상당 부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부실 투자로 판명 나게 된다. 한보철강처럼 투자한 기계와 공장에서 팔릴만한 물건이 생산되어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짜 투자 혹은 실패투자다. 결국 장기성장률 하락에 대응해 이루어진 경기부양책이 초래한 과잉투자 중 상당 부분이 실패투자로 판명이 나면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곤두박질하는 실물위기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97년 위기의 교훈은 명확하다. 위기를 맞지 않으려면 평상시부터 과도한 경기부양의 유혹을 제어해야 한다. 이와 아울러 무엇보다도 장기성장률 추락을 저지해야 한다. 장기성장률이 받쳐주지 않는 상태에서 과도한 저금리나 재정확장을 통해 무리하게 돈만 푸는 것은 위험하다. 가계부채·기업부채만 위험한 수준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 이런 까닭에 5년 1% 하락의 법칙 저지는 우리 경제의 제1과제이자 강력한 위기예방 수단이기도 하다.

IMF 위기를 교훈 삼아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위기가 반복되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장기성장률 추락 속에 경기부양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97년 위기 이전과 2014년 초이노믹스 이후 현재까지의 상황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전세 및 준전세 보증금을 포함한 가계부채가 세계 1위까지 누적된 현 상황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IMF 위기가 터진 후 우리 국민은 위기를 스스로 헤쳐나가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을 한 엄청난 저력이 있다. 이러한 민족적 저력을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는 데 쓴다면 훨씬 더 효과적이다. 국민이 나서서 금 모으기 운동의 심정으로 ‘5년 1% 하락의 법칙 저지 운동’을 벌인다면 어떤 위기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버블 붕괴도 성장 추락에서 시작

1990년대 초 일본의 버블 붕괴는 장기성장률 추락과 과도한 경기부양이 경제위기를 불러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대표적 사례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추세 장기성장률이 하락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대 중후반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은 저금리 정책과 함께 부동산 경기부양을 포함한 강력한 경기부양 정책을 실시한다. 특히 1985년 미국 등 선진 5개국의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高)에 따른 경기 하락을 우려한 일본은행이 재할인율을 5%대에서부터 계속 인하해 1987년 2.5%까지 낮췄다.

금리 인하와 부동산 경기부양으로 도쿄 등 6대 도시 상업지구의 지가는 1983년에 비해 무려 5배까지 급등한다. 주가도 4~5배나 올랐다. 저금리 정책이 부동산과 주가를 엄청나게 밀어 올린 것이다.

이에 따라 1980년 후반에 연간 성장률이 추세 장기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5~6% 수준을 유지한다. 투자율도 33~34%대의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경기부양을 통해 투자와 연간성장률을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함으로써 성장 추락을 일시적으로 지연시키는 데는 성공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높은 연간성장률과 높은 투자율은 역설적으로 경기부양으로 인해 과잉투자가 위험 수준으로까지 누적되고 버블의 경고등에 빨간 불이 켜졌다.

버블은 결국 터진다. 1991년부터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일본의 장기성장률은 결국 0%대로 추락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