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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에도 주 6일 작업…바느질 장인 구혜자, 흰 저고리만 입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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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침선장 구혜자 선생은 올해 만 여든이 됐다. 여전히 현역으로 일한다. 일주일에 6일씩 바늘을 잡거나 후학을 가르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침선장 구혜자 선생은 올해 만 여든이 됐다. 여전히 현역으로 일한다. 일주일에 6일씩 바늘을 잡거나 후학을 가르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침선장(針線匠) 구혜자(80) 선생의 작업실엔 잿빛이 끼어들 틈이 없다. 알록달록한 궁중 예복이 빼곡하기 때문이다. 모두 선생 작품이다. 바늘 하나로 옷 짓는 일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침선장의 세계다.

정작 선생 옷차림은 수수하다. 자신은 물들지 않겠다는 뜻일까. 그래야 원색의 예복을 제대로 지을 수 있다는 걸까. 무심한 흰 저고리다. 선생이 말했다. “제 옷장에는 흰옷밖에 없어요. 언제까지 입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무슨 뜻일까.

침선장인 선생은 아무래도 궁중 예복을 많이 복원한다. 따라서 오방색이나 원색이 많다. 작품이 좀 더 돋보이게 하려고 흰 저고리, 검은 치마를 자주 입는다. 나이가 더 들면서 ‘흰 저고리가 더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까 걱정된다는 얘기였다.

선생은 1942년생이다. 새해가 되면서 만 80세를 눈앞에 뒀다. 그래도 금요일 하루 빼고는 일주일에 엿새를 일한다. 그런 선생 신상에 최근 변화가 생겼다. 본인이 자청한 일이다. 지난해 9월 ‘시간의 옷을 짓다, 동행’이라는 제목의 첫 개인전을 열었다. 침선 경력 40년 만의 일이다. 제자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어서였다. 갈수록 관심이 줄어들기에, 그렇게라도 해서 저변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지난달 초순에는 네이버 쇼핑라이브 ‘박경림의 사는 이야기’에 출연해 출산 준비물 세트와 찻잔·컵 받침 만들기 키트를 팔았다. 점잖은 무형문화재 이미지와 언뜻 맞지 않아 보일 수 있다. 선생은 “침선으로 만든 출산 준비물이 필요한 젊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이런 게 있다는 점도 알려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세트는 아기 옷·이불·싸개 등으로 구성된다. 손이 많이 가 다른 일 젖혀두고 매달려도 꼬박 한 달이 걸리는 일이라고 했다.

시선을 강탈하는 원색의 옷감은 어떻게 예복이 될까. 선생은 붉은색 요선철릭(腰線帖裏)을 집어 들었다. 허리 부분에 주름을 잡아 선을 표현하는 게 요선이고, 요선으로 상·하의를 결합한 옷이 철릭이다. 선생은 “옷이 큰 데다, 딱 맞아 떨어지는 옷감이 없어 처음에 명주로 작업했다가 ‘연화만초문(蓮花蔓草紋·연꽃과 덩굴 무늬)’ 천으로 다시 제작하다 보니 꼬박 3년 걸렸다”고 전했다. 세상에 둘도 없을 옷이다.

선생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으로 광해군 중치막 복원을 꼽았다. 중치막은 겉옷 안에 입는 솜옷이다. 광해군 중치막은 불상 안에 넣어 보관되다가 발견됐다. 깨끗한 상태여서 실물을 봤을 때 감동이 컸다. “섬찟했다. (색이 바래) 회색에 가까운데, 푸른 기운이 도는 게 매우 아름다웠다”고 회상했다. 구름 문양 천을 별도 제작하고, 겉감·안감 작업이 많아 바느질에만 3개월이 걸렸다.

선생은 시어머니한테 바느질을 배웠다. 부산 출신으로 경희대 국문과를 나온 그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재주가 없었다. 바느질이나 뭘 만드는 걸 좋아했다”고 젊은 시절을 회상했다. 1970년 결혼 후 시댁을 오가며 시어머니 바느질을 도왔다. 선생 시어머니가 제1대 침선장 보유자 고 정정완 선생이다. 1988년 시어머니가 침선장이 되면서 선생도 정식으로 바느질을 배웠다. 1995년 전승교육사가 됐고, 시어머니 별세 뒤인 2007년 침선장이 됐다.

선생은 침선을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옛 복식을 재현하려면 관찰부터 제작까지, 옷 한 벌에 최소한 6개월이 걸린다. “정식 입문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바느질을 연습했다”고 강조했다. “어떤 기능이든 하루 연습한 사람과 열흘 연습한 사람, 1년 연습한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다”며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바느질을 시작한 뒤로는 (침선) 전문서적만 봤다”고 했다.

여전히 현역인 선생의 일주일은 이렇다. 월·화·수·토요일엔 한국문화재재단 수업에 나간다. 목요일엔 침선장 이수자 교육, 일요일은 개인 작업이다. 금요일 하루만 쉰다. 최근엔 코로나19 사태로 밀린 수업을 보충하다 보니 하루 8시간을 수업할 때도 잦다. 선생은 그 와중에도 “무엇보다 기록이 중요한 것 같다”며 “시대별 중요 예복을 설명과 함께 치수, 제도법까지 곁들인 작품집을 낼 계획”이라고 했다. 그간 『한복만들기』 세 권을 냈고, 최근 네 번째 책을 탈고했다.

일상복도 유행을 타지 않는 단색 옷을 즐겨 입는다는 선생은 “옷은 단정하게 입어야 한다”며 ‘한복’이 여러 형태로 변형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전했다. 그는 “요즘은 너무 난해해 ‘한복’이라 할 수 없는 것도 많다”며 “한복을 모티브로 한 무대의상은 쇼를 위한 ‘의상’인데도 복식으로서 ‘한복’으로 알려지는 건 고민스러운 지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선생은 “그렇게라도 한복을 영위할 수 있다면 괜찮지 않나 싶고, 이게 밑거름이 돼 나중에 한복에 대해 교육할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제자들에게는 우리 옷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연구를 해보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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