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새해 철책 월북자…재작년 ‘점프귀순’한 기계체조 경력 30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탈북민이 자신이 월남했던 경로로 1년여 만에 월북하는 사태가 또다시 벌어졌다. 3일 국방부는 새해 첫날 밤 월북한 인사를 2020년 11월 이른바 ‘월책 귀순’의 주인공인 30대 남성 김모씨로 추정하고 관련 사실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일대의 CCTV 영상을 통해 월북자의 인상착의를 식별한 결과 2020년 11월 탈북 귀순한 인물과 동일인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앞서 강화도로 헤엄쳐 월남했던 탈북민이 3년여 만인 2020년 7월 해병대 2사단의 경계망을 뚫고 강화도에서 헤엄쳐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해 군은 곤욕을 치렀다.

“재입북 우려” 두 차례 첩보에도, 서울경찰청 아무 조치 안 해

지난 1일 김모씨가 철책을 통해 월북한 곳 인근에 위치한 강원도 고성 22사단 내 보존 GP(감시초소)의 모습. 2019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이 GP 내 병력은 전원 철수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김모씨가 철책을 통해 월북한 곳 인근에 위치한 강원도 고성 22사단 내 보존 GP(감시초소)의 모습. 2019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이 GP 내 병력은 전원 철수했다. [연합뉴스]

당시 군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이번에 똑같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 이번 월북 사건이 발생한 곳은 경계 실패가 잦은 육군 22사단 관할지여서 군내에서조차 “기강 해이가 심각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복수의 군 소식통에 따르면 김씨는 이번에도 사실상 같은 수법과 경로로 월북에 성공했다. 한 소식통은 “김씨는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 인근 GOP(일반전초) 철책을 두 번이나 제집 드나들 듯 넘나들었다”며 “내려올 때는 내륙 쪽인 GOP 서쪽 철책을, 올라갈 때는 동해안 쪽인 GOP 동쪽 철책을 넘어갔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1월 2일자 3면〉

관련기사

똑같은 길을 두 번씩이나 눈 뜨고도 내준 셈인데 국방부 관계자는 관련 질문에 “월책 경로 등에 대해선 현재 전비태세 검열단이 조사 중이어서 나중에 알려주겠다”고만 답했다.

월남 당시 김씨는 3m가 넘는 철책을 단번에 뛰어넘어 화제가 됐다. 김씨는 신장이 작고 체중 50여㎏의 왜소한 체구였다. 김씨는 귀순 이후 관련 기관 합동 심문 과정에서 “학교에 다닐 때 기계체조를 배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당국은 김씨의 진술을 검증하기 위해 두 차례 시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의 두 차례 월책 과정에서 경계 구멍은 심각했다. 월남 당시엔 경계망이 뚫린 사실을 뒤늦게 안 군이 병력을 동원하고도 14시간이 걸려서야 김씨 신병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군은 김씨가 철조망을 넘어간 사실을 세 시간 정도 뒤늦게 발견했다. 광망(철조망 감지센서) 경보 알림이 울리는 등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 정상 작동했는데도 CCTV 감시병이 이를 놓쳤고, 초동 출동한 병력도 “이상이 없다”며 넘어갔다.

심지어 사건 하루 전 원인철 합참의장은 각급 부대에 하달된 신년사에서 “평시 경계작전의 완전성을 갖춰 적의 도발을 억제할 것” “기본과 원칙에 충실할 것” 등을 강조했는데 이 같은 신년사는 무색하게 됐다.

북측서 데려갔지만 생사확인 안돼 

김씨의 생사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월북 당시 GOP에 설치된 열상감시장비(TOD)에는 북한에서 4명이 내려와 김씨를 데려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TOD상으로는 점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안내인지, 체포인지 등)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답했다. 군 관계자는 “총소리가 없었고 그를 모처로 데려간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철책 귀순 사건 당시 상황 및 광망 미작동 원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철책 귀순 사건 당시 상황 및 광망 미작동 원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은 2020년 1월부터 코로나19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을 전면 봉쇄했다. 국경에 접근하는 물체는 경고 없이 사격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실제 북한군은 같은 해 9월 서해 옹진반도 인근 해상에서 표류했던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모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우기까지 했다. 또 탈북민 김모씨가 2020년 7월 개성 지역으로 월북하자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최대 비상체계’로 전환하고 개성시를 3주간 완전 봉쇄했다.

군 당국은 대북 군 통신선을 이용해 2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북측에 김씨의 신변 보호를 요청하는 내용의 통지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국방부 관계자는 “북측은 통지문을 수신했다고 확인만 해줬을 뿐 우리 측의 신변 보호 요구에 대한 답신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이번 월북 사건이 정부의 허술한 탈북자 관리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7월 탈북민 정착기관인 하나원을 출소한 뒤 서울 노원구에서 청소용역업체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린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소식통은 “김씨는 남한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일종의 사회 부적응 상태를 보였다.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하소연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6월 서울 노원경찰서는 서울경찰청에 김씨의 재입북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취지의 첩보를 두차례 제출했는데도 서울청은 첩보분석회의를 열어 “구체적 징후가 부족하다”고 결론 내렸다.

국방부 관계자도 “김씨는 전반적으로 관리가 잘 되는 편이었다”며 “(월북 나흘 전인) 지난해 12월 29일까지 김씨와 연락이 됐는데, 이튿날부터 연락이 두절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김씨의 대공 용의점 파악에 주력하고 있지만 일단 부인하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김씨가 월남 1년여 만에 다시 월북한 점과 북한군이 사살하지 않고 그를 데려갔다는 점 등을 들어 위장 귀순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 “문 대통령, 참모 질책 안해” 

정부 당국자는 “남한 사회에 나온 후 청소용역 일을 하며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었던 것으로 안다”며 “정보에 접근할 만한 직업이나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간첩 혐의 등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한편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대통령이 경계 실패에 대해 참모들을 질책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질책이 있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