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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사의 표명도 해프닝…사퇴러시 쓰나미에 멈춘 尹열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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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김종인 “선대위 전면 개편”→신지예 사퇴→윤석열, 일정 중단→김기현·김한길 사퇴→선대위 총사퇴 건의.

새해 첫 업무일인 3일 대선으로 가는 국민의힘 선대위 열차가 멈췄다. 당내 자중지란 끝에 사실상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제외한 중앙선대위 지도부와 원내 핵심 지도부 전원이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불과 대선을 두달 여 앞두고 초유의 선대위 강제 해체에 직면한 모양새다. 이 정도의 충격요법이 아니고서는 윤 후보의 지지율 폭락 국면을 탈출하기 어렵기에 선대위 전면 쇄신 카드로 승부수를 던지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3일 오전 갑작스럽게 이후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로 들어오고있다. 김경록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3일 오전 갑작스럽게 이후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로 들어오고있다. 김경록 기자

국민의힘 선대위는 이날 오후 5시쯤 “쇄신을 위해 총괄선대위원장, 상임선대위원장, 공동선대위원장, 총괄본부장 모두가 윤석열 후보에게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고 알렸다. 김종인 총괄위원장이 오전 9시 선대위 회의에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드리기 위해 선대위의 전면 개편을 단행하겠다”고 말한 지 8시간 만이었다.

그나마 김 위원장의 경우 사의를 표명한 적이 없다고 선대위가 공지 내용을 바로 잡았는데, 쓰나미(지진해일)를 맞은 듯 하루종일 허둥지둥댔던 국민의힘 내부 혼란의 적나라한 단면이었다.

이날 국민의힘을 덮친 쓰나미는 김 위원장의 입에서 시작됐다. 이날 오전 선대위 회의에서 “선대위의 전면 개편을 단행하겠다”고 밝혔을 때 윤 후보는 한국거래소 개장식에 참석중이었다. 이후 윤 후보는 서민금융공약 발표 등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당사에 머물며 숙의를 거듭했다. 윤 후보는 4일도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이양수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이날 선대위 구상과 관련해 “(사의를 표명한 이들중 누구를)재신임 할지 안할지는 확정이 안됐다”고 말했다. 김 총괄위원장 외에 누가 남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윤 후보와 가까운 한 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개편되는 선대위가 국민에게 감동을 주려면 어느 선까지 자르느냐 하는 게 윤 후보의 현실적 고민일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변화와 단결' 의원총회에서 김기현 원내대표, 김도읍 정책위의장과 대화하고 있다. 2022.1.3 김경록 기자

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변화와 단결' 의원총회에서 김기현 원내대표, 김도읍 정책위의장과 대화하고 있다. 2022.1.3 김경록 기자

국민의힘은 하루종일 사퇴러시였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저부터 먼저 공동선대위원장직과 원내대표직을 내려놓겠다”며 김도읍 정책위의장과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도와 함께 사퇴했다. 김 원내대표는 사퇴의 이유에 대해 “정권교체를 해달라는 열망이 이렇게 높은데도 왜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냐고 국민이 질책하고 있다”며 “우리 모두가 완전히 쇄신해서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새출발하는 각오를 다져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우리 마음 속에 새겨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선대위’의 다른 한 축인 새시대준비위원회 김한길 위원장이 사의를 밝혔다. 앞서 이날 오전 먼저 사의를 밝힌 신지예 전 수석부위원장 영입을 언급하면서 “그에게 덧씌워진 오해를 넘어서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는 걸 이유로 들었다. 신 전 수석부위원장은 대표적인 페미니스트로 꼽히는 인물로 영입 이후 당내에 젠더 갈등 논란이 촉발되자 이날 사퇴했다.

사퇴가 이어지는 사이 국민의힘 내부는 김 위원장으로 인해 몇 차례 휘청댔다. 먼저 윤 후보 ‘패싱’ 논란이 당을 강타했다. 익명을 원한 윤 후보 측 인사는 “전날 윤 후보가 김 위원장이 오찬과 만찬을 함께 하며 선대위 개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은 맞다”면서도 “개편의 폭과 시기까지 완벽히 조율되진 않은 것으로 아는데, 아침에 덜컥 김 위원장이 방아쇠를 당겼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선대위를 수정 개편하는 정도로 손질하려고 했는데, 김 위원장이 선제적으로 전면 개편의 불씨를 당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5시쯤 여의도 당사에서 윤 후보를 만난 뒤 기자들에게 “(윤 후보의)특별한 답은 없고 ‘사전에 좀 알았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얘기만 했다”고 전했다. ‘사전에 윤 후보가 몰랐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의논을 안하고 했으니까, 몰랐던 것”이라고 답했다. 윤 후보가 선대위 개편안을 거부할지에 대해선 “거부하진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하며 “지금 후보로선 갑작스럽게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조금은 심정적으로 괴로운 것 같은데 오늘 저녁이 지나고 나면 정상적으로 가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2년 신년인사회를 준비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2년 신년인사회를 준비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선대위 전면 개편 논의는 주말 사이 급하게 속도가 붙었다. 특히 전날 ‘소상공인 대출 금융지원 확대’ 공약 발표 영상을 본 김 위원장이 "내가 모르는 공약을 윤 후보가 참모에게 내용을 물어가며 발표하는 게 말이되느냐"고 크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이미 “모든 일정과 메시지를 관리하겠다”고 한 직후 터진 일이었다. 전날 윤 후보는 영세 소상공인·자영업자가 대출금을 임대료·공과금 납부에 사용하기로 하면 정부 보증으로 3년 거치 5년 상환의 대출을 실행하는 ‘한국형 반값 임대료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 공약 내용을 옆에 있던 참모에게 물어가며 발표하는 과정이 영상에 그대로 노출되기도 했다. 전날 윤 후보의 명성교회 예배 일정과 서울 종로구 음식점에서 낸 정책 메시지를 두고도 김 위원장은 “일관성이 없는 행보다. 더는 놔둘 수 없다”는 취지로 참모들을 질책했다고 한다.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누적된 선대위 운영 문제 속에서 해당 공약 발표에 대한 김 위원장의 지적이 있은 전후로 6명의 본부장이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며 “이후 두 사람(윤석열·김종인)이 같이 식사를 하며 선대위 전면 개편 문제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의원총회장에서 나온 김 위원장의 발언은 여야 정치권 전체를 뒤흔들었다.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김 위원장은 윤 후보와의 대화 내용을 소개하면서 "내가 선거 때까지 당신 비서실장 노릇을 하겠다. 총괄 선대위원장이 아니라 비서실장 역할을 할테니 태도를 바꿔서 우리가 해주는 대로만 연기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을 했다. 당장 윤 후보 주변에선 “그게 대선후보에게 할 소리냐”, “당 내홍의 책임을 묻자면 김 위원장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반발이 터져나왔다. 반면 민주당에선 "국민의힘과 김 위원장이 일반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드러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날 윤 후보는 공개적으로 표명한 건 ‘신지예 사퇴 표명’에 대한 입장이 전부였다. 그는 페이스북에 “제가 2030의 마음을 세심히 읽지 못했다. 애초에 없어도 될 논란을 만든 제 잘못”이라며 “젠더문제는 세대에 따라 시각이 완전히 다른 분야인데, 기성세대에 치우친 판단으로 청년세대에 큰 실망을 준 것을 자인한다”고 썼다. 이어 “앞으로 기성세대가 잘 모르는 것은 인정하고, 청년세대와 공감하는 자세로 새로 시작하겠다”며 “처음 국민께서 기대했던 윤석열다운 모습으로 공정과 상식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덧붙였다. 그러곤 하루종일 침묵을 지켰다. 윤 후보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구성원에게 정말 길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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