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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새 마음으로』…평범 이웃어른=비범 스토리, 이슬아 작가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신간 『새 마음으로』를 출간한 이슬아 작가. 서울 연남동 카페꼼마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멋들어진 리폼 블라우스에 넥타이를 맨 차림으로 나타났다. 장진영 기자

신간 『새 마음으로』를 출간한 이슬아 작가. 서울 연남동 카페꼼마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멋들어진 리폼 블라우스에 넥타이를 맨 차림으로 나타났다. 장진영 기자

이슬아 작가의 신간 『새 마음으로』를 읽으면 사람이 좋아진다. 작가가 가까이에 있는 이들의 삶의 현장으로 찾아가 인터뷰한 글을 엮어냈다. 새벽 3시반부터 삶과 죽음의 경계인 응급실 청소를 하는 이순덕씨, 인쇄소 기장이자 ‘사랑의 언어’를 찾는 행복한 남편인 김경연씨, 옷 수선의 장인 이영애씨 등, 우리네 이웃의 이야기들을 담았다.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비범한지를 작가의 담담한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느끼게 된다. 이들은 작가의 인터뷰 제안에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야”라고 손사래를 치다가도, 사진도 찍는다는 말에 수줍게 화장을 하고 고이 모셔만 뒀던 금반지를 하고 나왔다고 한다. 책 제목도 인터뷰이의 다음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빨리빨리 잊어버리고 해. 스트레스를 안고 꿍해있으면 나 자신이 너무 상해버리잖아. 새 마음을 먹는 거지. 자꾸자꾸 새 마음으로 하는 거야.”  

이 작가를 지난달 말,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만났다.

인터뷰집 부제가 ‘이슬아의 이웃어른 인터뷰’인데요. 왜 평범한 이들을 만나고 싶었을까요.  
“그분들의 개인사의 아름다움과 그분들이 해온 노동의 아름다움을, 충분한 분량을 들여서 담아내고 싶었어요. 저에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마이크가 있지만, 그분들에겐 없으니, 내가 그분들의 이야기를 잘 받아적자는 느낌이 있었어요.”
인터뷰 중간에 ‘우여곡절이 너무 많으셔서 제가 말문이 좀 막혔어요’라는 식의 자연스러운 질문이 좋았습니다.
“좋은 인터뷰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함께 흔들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인터뷰) 준비를 많이 하지만, 실제로 그분들 이야기를 듣다가 말문이 막힌 적이 많았어요. 제가 얼마나 모르는 게 많은지 생각했죠. ‘아 내가 너무 덜 살았구나’ 이런 생각도 했고요.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라는 밑천이 사실은 굉장히 얄팍하다는 거, 저 자신을 가공해서 글을 쓰는 데 대한 한계도 느꼈고요.”
'일간 이슬아' 온라인 포스터.

'일간 이슬아' 온라인 포스터.

그러나 이슬아 작가의 밑천은 결코 얄팍하지 않다. 그가 세상에 내온 글이 증명한다. 1992년생인 이 작가는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부터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 등을 내며 필력을 인정받았다. 포털사이트에서 그를 검색하면 “누드모델부터 기자에 이어 연재 노동자가 되다”는 소개 글이 뜬다. 월 1만원 구독료를 내면 매일 에세이를 써서 e메일을 보내는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 얘기다. 완수해낸 꾸준함이 대단하다는 인사를 건네자 그는 “선입금이 주는 힘”이라며 “독자분들이 감사하면서도 무서워서, 그땐 응급실에서도 글을 썼다”고 답했다. 외려 독자들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오래오래 써달라는 격려를 받고 이젠 “천재지변 또는 인재지변의 경우 휴재할 수 있습니다”라는 공지를 한다고.

글을 어떻게 그렇게 계속 쓰나요.  
“천재형 작가가 아니어서요(웃음). 많이 해서 빨리 나아지고 싶어요. 가끔 제가 써놓은 걸 보면 심장이 터질 정도로 답답해요. 빨리 다음 걸 써서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 있죠.”
진짜 쓰기 싫을 때도 있을 텐데요.  
“울면서 써요(웃음).”  
이슬아 작가는 책 뒷표지와 비슷한 핑크를 일부러 맞춰 입고 온 듯 했다. 장진영 기자

이슬아 작가는 책 뒷표지와 비슷한 핑크를 일부러 맞춰 입고 온 듯 했다. 장진영 기자

인터뷰집도 종종 내고 있는데요.  
“인터뷰할 때 공부를 제일 많이 하게 되는 거 같아요.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을 찾아서 인터뷰하게 되는 것도 있고요. 제가 가장 편하게 잘 쓸 수 있는 건 에세이인데요, 그런 글만 써서는 세계가 넓어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뷰집이나 서간집 등으로 장르를 넓히고 있어요. 메뉴는 다양한데 다 평타 이상하는 맛집같은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평범한 분들을 만나신 게 재미있었어요. 일본 드라마 중 ‘반경 5미터’에서 내 삶의 반경 5m 안에 있는 사람들의 스토리를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도 생각났어요.
“아마 이 책은 제 삶의 반경 1㎞에 있는 분들일 거에요(웃음). 제 기준에서 멋과 미를 갖춘 분들이죠. 섭외가 힘들었어요. 다들 ‘내가 뭐라고 나를 인터뷰해’라며 한사코 거절하시는 거에요. 나중엔 꼭 안고 ‘한 번만 해주세요’하기도 했죠.”

응급실 청소노동자 이순덕님 이야기는 참 찡했어요.  
“아픈 사람들을 보며 그렇게 계속 매일을 일하는데도 마음의 굳은살이 생기지 않으신다는 게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내가 나의 외로움과 괴로움에만 갇혀 있을 때보다 다른 이를 위할 때 좋은 글도 쓸 수 있는 거 같아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일을 일해오신 분들이라는 점도 좋았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몫의 일을 해내는 분들인 거죠. 가까이 계신 어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건 곧 한국의 근현대사이니까요. 책에서 봤던 단어들이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과 연결될 수 있는 거가 좋았어요.”
문학동네가 운영하는 북카페 카페콤마에서 이슬아 작가의 신간의 인기가 높다. 장진영 기자

문학동네가 운영하는 북카페 카페콤마에서 이슬아 작가의 신간의 인기가 높다. 장진영 기자

책 표지와 뒷면 핑크색이 참 예뻐요.  
“중장년 어른들의 책은 칙칙하게 만드는 게 싫었어요. 이분들의 얼굴 이외의 정보들을 모아서 좋은 미감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분들을 만나고 개인적으로 특히 와 닿았던 점은 뭘까요.
“자신을 돌보시는 방식이랄까, 자신을 아끼는 루틴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봉사를 다니는 것도 심리 치유인 거죠. 영혼의 양식이랄까요.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는지가 중요한 거 같아요. 우리 말이 참 재미있잖아요. ‘마음을 먹는다’고 표현하니까요.”

이슬아 작가의 확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시트콤을 염두에 둔 작품도 이미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아시아 최초의 가녀장제에 대한 글”이라며 “서른 살 딸이 부모를 고용해서 일을 꾸려가는, 사실 저희 가족 (출판사) 이야기를 토대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너무 잘 쓰고 싶어서 못쓰겠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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