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 부활' 노리는 日, 직업학교서 전문인력 육성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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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반도체 분야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과정을 고등전문학교에 신설할 방침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이 3일 보도했다. 한때 세계를 이끌었던 일본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위해 전문 인력 확충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요미우리는 3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2022년부터 일본 규슈(九州) 지역에 있는 8개 고등전문학교에 반도체 제조 및 개발에 관한 교육과정을 새롭게 신설한다고 전했다. 고등전문학교는 직업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5년제 고등학교로,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전문대' 과정이다.

대만 반도체기업 TSMC의 로고. TSMC는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일본 구마모토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도체 교육 과정이 규슈에 있는 학교들에 신설되는 이유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 때문이다. TSMC는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아 올해 규슈의 구마모토(熊本)현에 반도체 공장을 착공한다. 이 공장에서는 2024년 말부터 22∼28나노미터(1㎚=10억분의 1ｍ) 공정의 반도체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구마모토를 비롯해 후쿠오카(福岡)·나가사키(長崎)·오이타(大分)·미야자키(宮崎)·가고시마(鹿児島) 등 규슈 지방 6개 현의 8개 고등전문학교에 반도체 과정을 설치해 이 지역을 반도체 전문인력을 배출하는 거점으로 만들 방침이다.

반도체 전문 과정의 교육 내용은 문부과학성과 장래에 해당 인력을 활용할 반도체 개발·제조 관련 기업과의 협의를 거쳐 결정한다. 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을 파악해 현장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교육하는 것이 목표다.

日 반도체, 한국·대만에 기술 넘겨줘 몰락?

일본은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수요의 50% 정도를 공급한 반도체 강국이었지만 현재는 일본 국내 반도체 수요의 6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할 정도로 산업 기반이 약화한 상태다. 1990년까지 세계 반도체 업계의 톱10에는 NEC·히타치·후지쯔·도시바 등 6~7개의 일본 기업이 포진해 있었지만 현재는 10위 내에 하나도 없다.

일본 정부는 미·중 대립 등의 여파로 반도체 부족 및 공급망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상한 작년부터 반도체 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일단 주요 해외 반도체 업체의 국내 투자 유치에 나서 TSMC의 구마모토 공장 건립 비용의 절반인 약 4000억엔(약 4조 1000억원)을 일본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다.

1일 일본 도쿄 메이지진구에 새해 소망을 빌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서 참배를 기다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한편 일본 반도체 산업이 쇠퇴한 이유가 "한국과 대만 등에 전문 인력을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일본 시사주간지 슈칸신초(週刊新潮) 인터넷판인 데일리신초는 최근호에서 한때 세계 최강이었던 일본 반도체 산업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 계기로 1986년의 미·일 반도체 협정을 들었다.

당시 일본 정부가 '외국계 반도체의 일본 시장 점유율을 20% 이상으로 올리라'는 미국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면서 일본 업계가 불황에 빠졌고, 임금이 삭감된 전문 인력들이 한국이나 대만 등으로 빠져나가 기술을 이전했다는 것이다.

한 일본인 반도체 기술자는 데일리신초에 과거 연봉 3000만엔(약 3억1000만원·세금 제외) 조건으로 삼성전자에서 2년간 일했다며, 당시 일본 기업에서 급여를 20% 삭감당해 작심하고 한국으로 갔다고 말했다. 데일리신초는 또 다른 기술자의 말을 인용해 "1990년대 중반부터 많은 일본인 기술자들이 주말을 이용한 '토귀월래'(土歸月來·토요일에 갔다가 월요일에 돌아온다)의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한국과 대만에 일본 반도체 기술을 전수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