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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성희롱 왕따' 반전…'너덜너덜 사건' 잔다르크 됐다 [별★터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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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저는 ‘1번 변호사’였던 적이 별로 없어요. 한참 ‘너덜너덜해진 뒤’에야 사건을 맡는 경우가 많았죠.”

몇 차례 패소하고 누구도 변호하려 하지 않는 사건을 그는 ‘너덜너덜해졌다’고 표현했다. 그의 사무실엔 주로 성폭력 관련 민·형사 사건이 쌓여 있고, 성폭력 관련 명예훼손 및 무고 사건이 더해져 있다. 자신이 맡은 사건의 85%가 성폭력 관련이다. 사실관계는 예민하지만, ‘광’나지 않은 사건은 변호인이 바뀌는 일이 많기에, 그는 늘 ‘n번째’ 변호인이었다고 한다.

2019년 이은의 변호사(왼쪽)와 의뢰인 신유용씨가 나란히 '셀카'를 찍은 모습. 2019년 서울에서 고소인 조사를 받으러 전주지검 군산지청에 가는 길에 신씨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이은의법률사무소

2019년 이은의 변호사(왼쪽)와 의뢰인 신유용씨가 나란히 '셀카'를 찍은 모습. 2019년 서울에서 고소인 조사를 받으러 전주지검 군산지청에 가는 길에 신씨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이은의법률사무소

그러나, 그는 늘 ‘반전’을 꿈꾸고 결국 끌어낸다. 이제 어느덧 ‘성폭력 사건 전문 변호사’로 불리는 이은의(48)씨 얘기다. 코치에게 성폭행당했던 전 유도선수 신유용씨, 터키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한국인 경찰 영사에 소송까지 당했던 여대생 등 그를 거쳐 엉켰던 실타래가 풀린 사건들이 적지 않다. 이 변호사는 “외면당한 사건을 2~3번째로 뒤늦게 맡아도 뿌듯하다”고 했다. 범띠 해를 맞은 별난 범띠 변호사를 ‘별★터뷰’가 만나봤다.

시작은 나의 싸움이었다

대학에서 포르투갈어를 전공한 그는 대기업 해외영업 부서에 입사했다. ‘일 잘하는 대리’로 불리던 즈음, 불행이 닥쳤다. 18년 전인 2004년 부서장은 사무실을 오가면서 책상 뒤에서 이씨의 뒷목이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때론 브래지어 끈이 지나가는 등 부위에 손을 대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부서장의 성희롱.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성희롱 사실을 회사에 알렸다. 그러나, 대기발령 등 불이익이 돌아왔다. ‘프로답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꿋꿋이 버텼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부서 내 왕따’가 돼 있었다.

부모에게도 숨겼던 성희롱이 세상에 드러난 건 2006년 말이었다. 아버지 장례식에 찾아온 동료들이 “임원들이 곧 오니까 준비하라”고 알려줬다. 그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황망한 슬픔의 순간에 임원들 예우가 먼저란 말인가….”

아버지 장례식장에서의 결심 

‘빡친’ 그날 서른둘의 그는 결심했다. 가해자는 퇴사했지만,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않은 회사와 가해자 모두를 상대로 성희롱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기로 했다. ‘소송’이란 단어를 대학 교양과목에서나 접했던 그가 법과 인연을 맺게 된 순간이었다.

2007년 직장과 법정싸움을 벌이던 시기. 이은의(왼쪽)씨와 어머니. 사진 이은의씨 제공

2007년 직장과 법정싸움을 벌이던 시기. 이은의(왼쪽)씨와 어머니. 사진 이은의씨 제공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씨의 직장에 차별시정권고를 내렸다. 인권위는 이씨가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그 일을 회사에 알려 대기발령 등의 불이익을 받은 점을 인정했다. 가해자와 회사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에서도 법원은 각각 2009년, 2010년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변호사로 연 인생 2막

명예를 되찾고 퇴사를 택했다. 그사이 급변한 업무 환경에서 최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2010년, 12년 9개월간 몸담은 첫 직장을 떠났다. 노년의 어머니를 모시고 오랜 시간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생각에 로스쿨을 택했다. 전문직이 되면 나이 때문에 취업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전 직장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아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변호사 시험’이 있다는 것도 몰랐던 서른 여덟살 늦깎이 수험생의 도전이었다. 그때마다 이씨를 일으켜 세운 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고교 시절 수험생 딸을 위해 하루도 안 거르고 도시락을 가져다주고 하굣길 버스정류장에서 딸의 무거운 가방을 대신 메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이은의 변호사는 2014년 10월 서울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소를 차렸다. 사진 본인제공

이은의 변호사는 2014년 10월 서울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소를 차렸다. 사진 본인제공

“누군가의 희망이 되었으면…”

어머니는 이씨에게 “누군가의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말하곤 했다. 그 기도 덕분이었을까. 2014년 개업한 이씨의 변호사 사무실엔 발길이 이어졌다. 다만, 대부분 성폭력 사건 관련 피해자들이었다. ‘너덜너덜해진 사건’의 주인공은 사건과 비슷한 표정으로 그를 찾아왔다. 이 변호사의 ‘과거’를 아는 이들에게 변호사가 된 그는 ‘잔 다르크’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사내 성추행을 겪은 한 공기업 직원 A씨는 이씨가 로스쿨 재학생이던 시절부터 조언을 구했고, 이씨가 변호사가 되자마자 회사와의 민사소송을 맡겼다.

밤낮을 가리지 않은 신참 변호사의 분투는 성과로 이어졌다. 지난 2016년 서울중앙지법은 A씨가 모 공기업과 직장상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총 1억13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이 변호사는 “만약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을 때 처음 찾아온 이들이 성폭력 가해자였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며 웃었다.

로펌 미투 사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이은의 변호사가 지난해 5월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녹취록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로펌 미투 사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이은의 변호사가 지난해 5월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녹취록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폭력 사건 전문 변호사’란 호칭은 때론 부담스러운 꼬리표가 되기도 한다. 다른 분야에서도 변호사로서 성장하고 싶어서다. 실제로 3심에 걸친 법정 싸움에서 영유아체육교육업체 강사들의 근로자성을 인정받은 사건 등에서도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래도 당분간 계속될 ‘너덜너덜한 사건’의 의뢰인을 위해 그는 뛸 것이다. 인터뷰 막바지에 피해자들에게 이런 당부를 잊지 않았다.
“먼저 법이 처벌해주는 성폭력 범위를 알아야 해요. 무작정 SNS에 호소하는 건 위험해요. 피해자에서 피의자로 전환될 우려가 있거든요. 합법적 테두리 안 유리한 위치에서 싸우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꼭 전문가 조언을 받고 수사기관이나 재판에서 피해에 대해 명확히 진술해야 돼요.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 말해주지 않아요.”

별톡(별터뷰).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별톡(별터뷰).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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