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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바이러스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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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한국과총 명예회장·전 환경부장관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한국과총 명예회장·전 환경부장관

코로나 팬데믹으로 논문도 급증했다. 세계 최대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 플랫폼인 스코퍼스(Scopus)에 따르면, 2021년 8월 기준 코로나 논문은 21만건, 저자는 72만여 명이었다. 덕분에 mRNA 백신 등 사상 초유의 성과가 있었으나, 대유행은 5차로 진입했다. 미국·영국·프랑스 등에서 확진자가 치솟는 가운데 일본의 상황은 특이했다. 지난해 7월 도쿄올림픽 때 급증하던 코로나 환자가 11월부터 하루 100명 아래로 급감한 것이다. 12월 말 7일 평균 기준으로는 일본 300명, 미국 38만여 명이다. 백신 접종률과 유형(화이자와 모더나), 검사건수, 자연적 집단면역, 낮은 비만도 등 추측은 무성했으나 ‘모르겠다’로 코로나 미스터리가 됐다.

2020년 야마나키 신야(2012년 줄기세포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교수는 일본인의 특이한 유전적 소인 탓에 코로나 감염자 수가 적다고 보고 ‘팩터 X’라 명명했다. 이화학(理化學)연구소는 일본인 60%가 지닌 특정 백혈구 항원(HLA-A24)이 단서인 것으로 추정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기에 걸린 뒤 생긴 면역으로 T세포가 코로나19 감염세포를 죽인다는 가설이다.

일본 코로나 미스터리와 팩터 X
17세기 대역병과 델타-32 변이
면역체계 연구로 미스터리 풀고
변이 대응할 범용백신 만들어야

이런 유형의 실험실 연구는 이미 2020년에 나왔다. 코로나19 완치의 1군, 그리고 코로나19에 접하지 않은 2015~2018년 채취의 혈액시료 2군에 대해 면역력을 비교한 결과, 1군은 100%가, 2군은 30~50%가 사스-코브-2를 인식했다. 2군의 경우 1960년대부터 감기로 자리한 네 가지 코로나바이러스와 2003년 사스를 겪었던 기억을 되살려, 항체는 사라졌어도 기억 T세포가 면역기능을 작동시킨 것으로 추정했다. 독일·싱가포르·네덜란드·한국 등에서 얻어진 이들 소규모 실험결과는 실제상황에서 얻어진 데이터가 아니었으므로 일반화되지 못했다.

소설 같은 미스터리 에피소드는 1665년 영국의 대역병으로 거슬러 오른다. 당시 영국 인구의 10%, 런던 인구의 25%를 잃었다는 페스트 대유행에서 중부의 외딴 마을 임(Eyam)에 페스트가 들어가자 마을 스스로 자가격리를 한다. 14개월 뒤에 보니 예상을 깨고 800여 명 주민 중 절반 이상이 살아있었다. 훗날 사료 조사 결과 주로 핸콕(Hancock), 블랙웰(Blackwell), 퍼니스(Furness) 가계가 생존했고, 그 후손들은 공통적으로 CCR5 유전자 중에서 32개 염기가 삭제된 델타-32 변이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Stephen J. O’Brien 교수). 변이의 발생 경로는 1346년부터 퍼졌던 페스트 창궐 지역과 일치했다.

한편 1981년부터 에이즈로 인한 동성애자들의 죽음이 알려지기 시작할 때, 아무 탈 없이 건재한 미국인 남성 동성애자가 자신의 유전자 검사를 자청한다. 놀랍게도 그는 CCR5 델타-32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조상은 유럽인이었다. 2018년 중국의 허젠쿠이 연구진이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에 선천적 면역을 지닌 쌍둥이 여아를 출생시켰다고 해 생명윤리 논란이 빚어졌는데, 그때 유전자가위 기술로 삭제한 유전자가 바로 CCR5였다.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 때도 병원체부터가 미스터리였다. 그 정체는 1997년에서야 알래스카에 묻힌 여성 시신의 폐조직으로부터 바이러스 RNA 조각을 채취해 분석한 뒤 H1N1 바이러스로 명명된다. 당시의 미스터리는 어째서 몇 주일 간격으로 1·2·3차 파동이 일어났나, 어째서 2차 파동에서 심각한 중증으로 악화됐나, 어째서 20대 청년들이 많이 희생됐나 등이었다. 훗날 여러 종류 바이러스의 융합에 의한 독한 변종 출현, 제1차 세계대전의 신무기인 독가스와 참호전, 영양실조와 결핵, 사이토카인 폭풍 등이 원인으로 추정됐다. 전례 없이 신경정신과 질환이 후유증으로 보고된 것도 미스터리였다.

지난 11월 말 남아공에서 발견된 오미크론 변이는 델타 변이와 겨루며 우세종이 되고 있다. 오미크론은 HIV를 치료하지 않아 면역이 약해진 상태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여러 달 동안 증식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은 바이러스의 스파이크에 32개 돌연변이가 일어나 항체의 공격을 피할 수 있게 돼  백신과 치료제의 중화효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전파속도는 델타 변이보다 3~5배 빠르지만 중증으로 번질 확률은 70% 정도 낮다. 그래서 코로나 팬데믹 종식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선 게 아닌가 하는 기대도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21세기 과학의 위력과 과학의 한계를 동시에 절감케 한다. mRNA 백신 개발로 새로운 역사를 썼으나, 당초 우려했던 대로 백신 불평등으로 인해 접종률이 낮은 지역에서 출현한 변이 바이러스가 높은 접종률의 국가들을 강타하고 있다. 면역체계 심층연구로 변이 유전자의 영향 등 미스터리를 풀어야 하고, 바이러스의 빠른 변이를 이겨내도록 변이율이 낮은 바이러스의 특정 부위를 겨냥하는 범용 백신도 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 앞으로 다시 올 팬데믹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지구촌의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이 백신 등 의료혜택을 받아 변이 출현 가능성을 낮출 수 있게끔 ‘모두를 위한 과학’으로의 국제규범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