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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주안의 시선

보안사 민간인 사찰 소환한 공수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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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현장풀)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0일 서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의원총회를 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 앞에서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발언을 하자 야당 의원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현장풀)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0일 서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의원총회를 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 앞에서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발언을 하자 야당 의원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여당 “사찰 아니다”며 판결 인용

언론ㆍ야당 사찰 의혹을 받는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을 국회에 불러놓고 민간인 사찰의 상징인 국군보안사령부(기무사 전신)를 소환한 건 뜻밖에도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이다. 나흘 전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야당은 언론인 140명, 국민의힘 의원 80% 이상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공수처를 중앙정보부에 비유했다. 공수처의 행위는 얼핏 독재 정권의 정보기관을 연상시키지만, 수사대상이 검사ㆍ판사 등 공무원으로 한정된 점을 고려하면 군 수사 정보기관인 보안사와 비견된다.

여당 소속인 소 의원은 공수처를 감싸기 위해 보안사 판례를 들고 왔다. 그는 판결문에 적시된 ‘미행, 망원 활용, 탐문 채집’ 등을 언급하며 이쯤은 돼야 불법 사찰이라고 김 처장을 두둔했다. 가해자를 비호하는 입장에 서면 그 대목이 눈에 띌 수 있다. 그러나 통신 내역이 수집된 피해자의 눈에는 다른 문구가 더 굵은 글씨로 보인다.

판결문 곳곳서 공수처 행각 연상

소 의원이 언급한 사건은 1990년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다. 보안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ㆍ언론인ㆍ재야인사 1303명의 정보를 수집, 관리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누구나 짐작은 했지만, 보안사가 잡아떼온 민간인 사찰을 보안사에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내부 자료를 들고나와 폭로했다. 노 전 대통령 등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소 의원이 인용한 판결문이 작성됐다.

1ㆍ2ㆍ3심 재판부는 일관되게 군을 수사하는 보안사가 왜 민간인 정보를 수집했냐고 질타한다. 보안사는 "군 관련 사항에 관한 임무를 수행하려면 당연히 민간인에 대한 자료의 수집ㆍ처리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며 "이런 목적을 위해 보안사 수사과에서 수집ㆍ정리한 것으로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보안사가 직무 범위를 벗어나 민간인의 정보를 수집ㆍ관리했다고 지적했다. 사찰 대상에서도 유사성이 목격된다. 정치인ㆍ언론인ㆍ교수ㆍ재야인사 등이었다. 보안사가 수집한 항목 중 인적사항ㆍ가족사항ㆍ교우ㆍ직장 위치 등의 정보는 통신 관련 수사로 파악이 가능하다.

김 처장은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언론인 등의 어떤 정보를 파악했는지 공개를 거부했다. 다만 국회 답변 과정에서 문자메시지와 단톡방이 포함된 정황이 드러났다. 공직자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적법하게 진행했다는 반박은 31년 전 보안사 주장을 빼닮았다.

미행ㆍ탐문 등을 해야 사찰이라는 소 의원의 주장은 시대 변화를 간과했다. 1990년엔 휴대전화를 안 썼다. 사찰 대상의 교우 관계를 파악하려면 뒤를 밟거나 주변에 캐물어야 했다. 지금은 단톡방이나 문자메시지, 통화 내역을 보면 전부 파악이 가능하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체포 직전 창밖으로 던진 것도, 정진웅 차장검사가 독직을 무릅쓰고 상급자인 한동훈 검사장에게 몸은 날려 빼앗으려던 물건도 휴대폰이다. 출범 1년도 안 돼 기자 140명 이상의 통신 자료를 턴 공수처가 어떤 도표를 그리고 무슨 꿍꿍이를 하는지 알 도리가 없는 언론으로선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짓밟혔다는 분노가 치솟는다. ‘언수처’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겠나.

“수사 중” 회피 말고 전모 밝혀야

정치적 중립과 인권 수사를 앵무새처럼 외쳐온 김 처장은 꼭 1년 전 공수처 준비단에 처음 출근했다. 생소한 법조인인 그를 공수처장으로 추천한 인물은 이찬희 당시 대한변호사협회장이다. 이 전 회장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인품이나 능력, 자질, 모든 면에서 상당히 우수하신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김 처장에 대해 "부유하지 않은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을 부양하면서 자수성가한 인물"이라며 "어머님께서 쓰러지셔서 6년 동안 의식불명의 상태로 병간호하고 있다"고 개인사도 설명했다. 심지어 "아들 둘 교육 때문에 대치동에 가서 살고 있다"는 사실까지 꿰고 있었다. 이후 고교 후배인 여운국 차장이 발탁되고 주변 인물들이 공수처 검사 등으로 줄줄이 입성하면서 이 전 회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김 처장 수사 경험이 조폐공사 파업유도 특검팀의 특별수사관뿐이라는 지적엔 "2개월이지만 특수 사건 한 건만 다루기 때문에 한 사건에서 충분한 경험을 가질 수 있다"고 강변했다.

김 처장은 직후 관훈포럼에 나와 “공수처가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건을, 그렇게 해서 중립성 논란을 자초하는 그런 일은 피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런 허풍들이 생각보다 빨리 진면목을 드러냈다. 돌이켜보면 이날 가장 섬뜩했던 김 처장의 발언은 다음 한마디였다.

“임기(3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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