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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마스코트부터 만병통치약까지…호랑이의 해, 우리 문화 속 호랑이는?

중앙일보

입력

경북 봉화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산 호랑이. 전민규 기자

경북 봉화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산 호랑이. 전민규 기자

1982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의 큰 과제 중 하나는 올림픽 마스코트의 선정이었다. 조직위원회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마스코트 대상물 현상 공모를 벌였고, 최종 후보로 오른 것은 호랑이와 토끼. 조직위원회는 1983년 2월 집행위원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호랑이로 결정했다. 민화, 민담, 설화 등을 통해 전통적으로 민중과 친근감이 있고, 웅혼하고 씩씩하여 약진하는 민족의 기상을 살릴 수 있다는 이유 등을 들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 한민족의 상징은 왜 곰이 아닌 호랑이가 됐을까? 『삼국유사』는 환웅을 찾아간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해 동굴 안에서 쑥과 마늘을 먹었지만, 21일을 견딘 곰만 웅녀가 되었음을 전하고 있다. 환웅과 웅녀가 결혼해 낳은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해 민족의 시조가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호랑이는 언제부터 한민족의 상징이 됐을까?

1988년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 [중앙포토]

1988년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 [중앙포토]

◇호랑이가 상징이 된 것은 구한말
비록 호랑이는 인간이 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산신으로써 추앙받는 존재가 됐다. 한반도에 살던 조상들은 산을 신성한 곳으로 여겼고, 산에 사는 강인한 동물도 영물이라며 신성시했다. 가장 숭배를 받은 것은 산신·산신령·산군 등으로 불리던 호랑이. 『후한서』는 동이족에 대해 “그 풍속은 산천을 존중하고 호랑이에게 제사 지내며 그것을 신으로 섬긴다”라고 남겼다. 호랑이는 사악한 기운을 막아주며 지켜주는 벽사(辟邪)이자 수호(守護)의 상징이 됐다.

에버랜드는 14일 경기강화 마니산 첨성단에서 곰과 호랑이를 등장시킨 이색 채화의식을 벌였다. [중앙포토]

에버랜드는 14일 경기강화 마니산 첨성단에서 곰과 호랑이를 등장시킨 이색 채화의식을 벌였다. [중앙포토]

그러나 국가의 상징물로 떠오른 것은 한참 뒤다. 동양의 군주국가에서는 태양이나 용이 지도자를 상징하는 만큼 호랑이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그런 호랑이가 한민족을 상징하게 된 것은 국권이 흔들리던 구한말부터다.
학계에선 호랑이가 일본에 대한 저항과 조선을 상징하게 된 계기가 1908년 『소년(少年)』 창간호에 최남선이 그린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 그림부터라고 꼽는다. 이것은 일본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郎)가 1903년에 한반도의 형상을 토끼 모양으로 형상화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어 최남선은 1926년 동아일보에 '호랑이'라는 7편의 글을 연재하면서 호랑이 관련 각종 이야기를 정리하고 고조선 이전부터 호랑이가 민족의 토템으로 숭배받아 왔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조선의 표상”으로 규정했다.

『소년(少年)』 창간호에 최남선이 그린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 그림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소년(少年)』 창간호에 최남선이 그린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 그림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10만년 전부터 함께한 호랑이

수렵도, 고구려 무용총 주실 서벽, 5세기 후반 [중앙포토]

수렵도, 고구려 무용총 주실 서벽, 5세기 후반 [중앙포토]

'호작도(虎鵲圖)'라고도 불리는 조선 시대 까치호랑이 그림도 익숙하다. 가장 한국적인 그림으로 알려졌지만, 유래는 중국 원나라와 명나라였다. 중국에서 표범과 까치가 함께 그려지는 그림은 표(豹)와 보(報)가 발음이 비슷하고 까치가 새 소식을 상징하기 때문에 상서로운 그림으로 대접받았다고 한다.
중국에서 유행한 그림이 임진왜란 전후에 조선에 전해지면서 19세기부터는 각종 민화에 호랑이와 까치가 등장하는 경우가 급증했다. 특히 조선에서는 호랑이가 바보처럼 우스꽝스럽게, 까치는 당당하게 묘사됐다. 노은희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원은 "호랑이가 우리에게 친근한 캐릭터로 바뀌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백성을 괴롭히는 해독(害毒)으로 도적·귀신붙이와 더불어 호랑이를 들었다. '호환(虎患)'이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맹수인 호랑이는 두려움의 상징이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위용과 용맹함 때문에 사악한 기운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영물이었다. 모순적인 호랑이에 대한 시선은 오랜 기간 공생하면서 자연스레 문화에 흡수된 것이다.

리움미술관에 전시된 '까치 호랑이'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리움미술관에 전시된 '까치 호랑이'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미술사학자 존 코벨은 “무시무시한 맹수에 대한 존경심을 뒤집어 우스운 호랑이로 표현한 능력이야말로 한국 미술사의 한 정점을 이루는 것"이라고 극찬했는데 일각에선 19세기부터 급증한 민란과 함께 지배계급에 대한 풍자와 조롱을 담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편 호랑이와 관련된 물건도 많았다. 양반가의 남자아이들이 착용한 호건(虎巾), 무관들의 신분과 지위를 나타낸 호랑이 흉배, 약재로 쓰인 호랑이연고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 가정마다 상비약처럼 갖고 있던 호랑이연고는 소염·진통 기능으로 대중으로부터 사랑받았는데, 정작 호랑이 관련 부위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두통이나 신경통 등 다양한 증상에 쓰이면서 '만병통치약' 같은 이미지를 상징하는 차원에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한의학계에선 호랑이의 각종 부위가 고급 약재로 쓰였으며, 특히 호경골(虎脛骨·앞다리 정강이뼈)이 큰 인기를 얻었다.

19세기 양반가 남아들이 착용한 호건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19세기 양반가 남아들이 착용한 호건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실제로는 호랑이의 어떤 부위도 들어가지 않은 호랑이 연고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실제로는 호랑이의 어떤 부위도 들어가지 않은 호랑이 연고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호랑이와 관련된 민속신앙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주요 사찰의 삼성각이나 칠성각 등에는 호랑이와 산신이 등장하는 산신도가 걸려있다. 또한 십이지(十二支)에 해당하는 열두 동물들의 날 중 매월 첫 번째 호랑이 날은 가게를 열면 번창하며, 호환을 피하기 위해 아침 일찍 외출을 자제해야 한다는 민간 신앙이 있다. 단오에는 애호에는 쑥으로 만든 호랑이(애호)를 머리에 꽂거나 문에 매달면 잡귀를 막는다고 믿어졌다.

서울올림픽대회를 통해 민족의 상징으로 재부상한 호랑이는 평창 동계올림픽대회(2018)의 마스코트와 또한 도쿄올림픽대회(2020) 한국선수단의 캐치프레이즈 '범 내려온다'를 통해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됐다.

2021년 7월 17일 도쿄 하루미 지역 올림픽선수촌 대한민국 선수단 숙소에 '범 내려온다'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펼쳐져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21년 7월 17일 도쿄 하루미 지역 올림픽선수촌 대한민국 선수단 숙소에 '범 내려온다'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펼쳐져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이 기사는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상징사전·호랑이』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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